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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 종이, 자연 친화적일까? 세계를 누비며 밝혀 낸 우리가 알아야 할 종이의 비밀!
맨디 하기스 지음, 이경아 외 옮김 / 상상의숲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종이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의 일상을 쫓아가 보자.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휴지를 쓴다. 차나 커피를 마시려면 티백이나 필터가 필요하다. 시리얼도 포장지에 담겨 있다. 낮에는 공부나 일을 하면서 엽서, 전단지, 지하철 표, 일기장, 서류, 공책, 복사지, 스티커를 쓴다. 저녁에는 극장에 가서 표를 사고 종이 봉지에 담긴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물건을 사면 상표, 가격표, 영수증이 생긴다. 집 안을 둘러보라. 키친타월, 각종 고지서와 광고지, 한쪽에 쌓여 있는 신문이 보이지 않는가! 세상에는 새로운 오락거리와 신기술이 넘쳐 나지만 종이의 무궁무진한 쓸모를 따라올 적응의 귀재는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p. 13
그동안 종이를 아낀다는 것은 일종의 돈을 절약한다는 의미였다. 이면지를 쓰고, 프린트를 하기 전에 한 번 더 틀린 글자가 없나 살펴보고,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둘둘 말아 사용하지 않고, 손을 씻은 후에는 손수건을 사용하고, 종이컵 대신 머그컵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집에서든 사무실에서든 다른 무엇보다 비용을 절감하자는 측면이 컸다는 것이다. 물론 무분별하게 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뜻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종이 사용을 줄임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동안 나무에 또 지구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기 시작했다. 종이를 사용하는 건 단순히 자원을 낭비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잘못 인쇄된 프린트 한 장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릴 때, 화장지로 손의 물기를 닦아 내고, 뜯어보지도 않은 고지서가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묶여 나갈 때, 지구의 허파가 되고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생명을 주었던 숲은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숲이 사라진 땅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땅이 돼버리고 만다.
현재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원목의 42퍼센트는 종이의 원료인 펄프가 된다. 이들 원목은 어디서 나고 자란 나무를 벌목한 것일까? 종이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대부분의 원목은 원시림에서 벌목 되었고, 지금도 계속 원시림을 벌목하고 있다. 그중에는 대체 불가능한 산림도 있다. ... 자연스럽게 형성된 숲의 생태계가 파괴되면 자생 동식물의 삶의 터전도 사라진다. 단일 수종에다 외래종을 심은 나무농장에서는 원시림에서 볼 수 있는 생물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이가 수많은 생물의 삶의 터전을 훼손한 결과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p. 29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종이의 라이프 사이클을 추적한다. 원시림에서 나무가 베어지는 현장부터 벌목된 나무가 제지 공장으로 실려가 물과 섞여 펄프가 되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종이가 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사람들이 쓰기 편하게 각종 크기로 재단되고 팔려나간다. 화장지가 되던, A4종이가 되던, 영수증이 되던 저마다 소용이 다한 종이는 분리수거가 되어 재생용지로 다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세계 최대 폐지 수입국인 중국으로 전 세계에서 폐지를 보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이용하게 된다.
이제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떠 화장실에 갈 때부터 잠이 들 때까지 하루 종일 한 사람이 사용하는 종이는 셀 수도 없다.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전 세계가 단 하루 동안 사용하는 종이를 생산하려면 1,20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많은 나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물론 답은 원시림이다.
우리는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곳을 보호하려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인도네시아 등 남반구의 많은 나라의 숲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베어졌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곳에 조성되어 있는 숲은 사실 숲이 아니라 원시림을 베어낸 후 다른 나무에 비해 더 많은 펄프를 얻기 쉬운 단일종의 나무를 심은 나무농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그리고 북반구와 남반구의 열대림과 온대림을 휩쓴 제지산업은 이제 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쪽의 아한대 지역에도 손을 뻗고 있다.
러시아와 캐나다가 보유하고 있는 숲은 각각 전 세계 숲의 26퍼센트와 25퍼센트에 이르지만, 선택적 벌목으로 원시림을 보호하는 정책을 폈던 러시아는 과거와 달리 푸틴이 집권한 뒤 돈을 벌기 위해 벌목을 권장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목숨을 건 원주민들의 저항이 있고서야 겨우 4%정도의 숲을 원주민들의 땅으로 인정했을 뿐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의 저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원시림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들에게 수많은 동식물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카시아나무 농장만 가지고 있으면 보여 줄 것이 없겠죠... 지금과 같은 속도로 벌목 되고 나무농장이 세워지면 얼마 못 가 리아우에서 원시림은 사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지대에 있는 토탄지대는 바다에 잠기고 고지대의 비옥한 흙은 사막이 될 겁니다. 이미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요. 우기에는 홍수가 나고 건기에는 가뭄으로 타는 지역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매해 반복되는 재해지요. p. 144
물론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출판사인 레인코스트 북스사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재생지로 찍기로 결정했고, 한 번의 인쇄로 나무 39,000그루를 살렸다. 고지서를 종이가 아닌 이메일로 바꾸고, 은행 ATM기에서 명세서를 받을 지 받지 않을지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종이 사용을 줄임과 동시에 기업은 비용을 절감했다. 하지만 이미 현실은 우려의 수준을 넘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무차별적인 제지 산업은 원시림의 종말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현재 중국에서 전통방식으로 생산되는 종이는 나무 펄프를 사용하지 않다는 것을 예로 든다. 짚, 사탕수수에서 버리는 부분과 꾸지나무 껍질을 사용해서 만들며 그들은 모두 장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제지 공장은 기계화로 일해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잃게 한다.
장인은 사라지고 현재 5.000개 이상의 중소규모 종이공장에서 2.000명 가량이 종사하는 중국의 종이 산업은 현대식 제지공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한 공장에서 500명 정도의 직원이 수천 배 많은 종이를 생산해 낸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 낸 종이는 쓰레기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원시림의 파괴로 인해 아주 오래 전부터 원시림을 이용해 삶을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난 것뿐만 아니라, 더 이상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제지 산업은 매해 고용 직원이 급감하고 있다.
1982년 640만 헥타르였던 원시림이 1996년에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벌목이 진행되면 2015년에는 원시림이 50만 헥타르도 남지 않을 것이다. 30년 후에는 리아우 주 면적의 78퍼센트를 차지하던 원시림이 6퍼센트로 급감할 것이다. 세계 최대의 펄프공장 두 개가 이 지역에 위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p. 151
문제는 다양성과 정의의 상실이다. 단일종의 나무농장이 아닌 원시림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나무가 빽빽이 있는 자체가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나무와 새로운 나무 죽은 나무가 더불어 존재해야 만이 숲을 이루고 그 안에서 다양한 생명이 살 수 있다. 이끼가 끼고 죽은 나무를 기반으로 사는 벌레가 있어야 벌레를 먹고 사는 짐승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풀이 있어야 초식 동물이 생존할 수 있으며 육식 동물이 살아갈 수 있다. 오직 펄프를 얻기 위해 단일종만을 심는 나무농장은 그 어느 것도 살 수 없으며 죽은 땅과 같다.
사람 역시도 마찬가지다. 원시림에서 사람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산다. 약초를 캐기도 하고,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채취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한다.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자연에서 얻는 것으로 다양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원시림이 벌목되면 사람은 나무를 벌목하거나, 제지 공장에 취직해 기계적으로 종이를 만드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그마저도 고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며 사람을 위해서 희생되는 게 마땅한 자연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멈추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마치 모든 소리가 표백되고 정적만 남은 것 같았다. 어느 방향을 봐도 똑같은 나무들이 줄맞춰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커다른 녹색 잎사귀는 햇빛을 들이마시고, 숨겨진 뿌리는 지하수를 빨아들이고 거기에다 모든 소리를 흡수해 버렸다. 새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지겨운 모기의 윙윙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원숭이 요란한 울음소리도, 쉭쉭거리는 뱀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 일행과 아카시아나무들뿐이었다. p. 127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12가지를 제시하고 있지만 부록으로 덧붙여진 정은영님의 글에서는 9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지구의 숲을 지키는 즐거운 종이생활
- 집에서, 일터에서 쓰는 복사용지를 재생종이로 바꾸기
- 휴지는 재생종이 휴지로 바꾸기
- 공책, 메모지, 다이어리 등 재생종이 문구를 사용하기
- 이면지나 자투리 종이로 나만의 공책이나 메모지를 만들어 쓰기
- 명함, 청첩장, 알림장, 보고서 등 인쇄물을 재생종이로 만들기
- 비닐봉지나 종이가방 대신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 챙기기
- 티슈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 일회용 종이컵 대신 사무실에서는 머그컵을, 외출할 때는 텀블러는 가방에 챙기기
- 출판사에 재생종이로 출판할 것을 요구하기
일회용 컵 대신 머그컵은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우선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습관부터 들여야 할 듯하다. 그리고 선물 받았지만 빨기 귀찮아서 집에 두고 다녔던 손수건도 다시 꺼내야겠다. 이면지 사용은 물론이거니와 파지도 다시 보고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사용하려는 노력도 해야겠다.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것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 숲이 없다면 삶도 사라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