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시대가 만든 운명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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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역사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는 한다. ‘구제도의 모순’이라고 일컬어지는 중세 신분제도 안에서의 배고픔과 차별을 견디지 못한 민중들은 목숨을 바쳐 프랑스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공포정치를 지나 다시 나폴레옹을 황제로 받아들였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으로 등장한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루지만 그 결과는 독재정치였고, 독일의 나치즘 하에서 무수한 학살을 당한 유대인들은 현재 자신들의 역사를 반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의 아이러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도도한 역사의 물결은 바꿀 수 없다. 그리고 변화는 민중들 안에서 먼저 일어난다. 그런 변화를 감지한 지도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지만,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결국 시대에 커다란 짐을 지우고 비참한 결말을 맺는다. 이 책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바로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8세기 후반의 조선. 영조가 죽고 마침내 왕의 자리에 올라 민중을 위한 열린사회, 웅대한 나라 조선을 꿈꿨던 정조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역사의 흐름을 반대로 되돌리려 했던 노론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어내며 역사의 한 가운데를 통과한 정약용을 통해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정약용의 일생(中 특히 정조와의 관계), 둘째 정조암살설, 셋째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당시 남인들 포함)의 사상. 그 중 1권은 정약용의 출생과 정조 사망 전까지 정약용의 활약을 그린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정약용과 사도세자의 연결고리를 단단히 하여 정조까지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런 연결은 남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핏대를 세우는 노론에게 정약용은 훗날 ‘천 사람을 죽여도 정약용을 죽이지 못하면 아무도 죽이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론에게 최대의 정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정약용이 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간 이후 벼슬이 동부승지, 형조참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정조의 사람을 쓰는 방법이다. 정조는 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사도세자를 죽인 자들을 바로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며, 오히려 정승의 자리에 올려 정사를 논한다. 그것은 저자가 말한 대로 피눈물을 흘리는 초인적인 인내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남인들을 키운다. 정약용은 영의정까지 오르는 체제공과 함께 정조에게 가장 든든하고 믿을 수 있는 신하이자, 밤 깊도록 학문을 논하고 농을 하는 동지였다. 하지만 그런 지위에 오르기까지 정조는 정약용의 사람됨과 학문을 한 눈에 알아보지만 바로 기용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시험하고 과제를 주며 단련시킨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감싸주고 때로는 스승님처럼 혼을 내고 가르치며 정조는 정약용을 자신의 사람이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재상으로 만들어갔고 정약용은 정조의 기대에 부흥한다.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함께 실현할 신하로서 남인들을 그렇게 조금씩 키워갔다.

 

탁월한 식견을 가진 왕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정직하고 능력 있는 신하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는 과거의 모순을 조금씩 고쳐가고 서서히 발전하고 있었다. 만일 정조가 그 때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정약용과 이가환 등 정조에 의해 키워진 신하들이 곧 정승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정조의 꿈을 품은 계획도시 화성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조 사후의 역사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낙향한 정약용에게 조용히 내각 서리를 보내 곧 부르겠다는 따뜻한 전갈을 보냈던 정조는 얼마 안 있어 승하하고 말았다.

 

이 책이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는 정조암살설은 정조의 임종을 지킨 사람이 다름 아닌 정조의 정적 정순왕후였다는 것과(조선시대 임금의 임종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여자는 지켜볼 수 없는 것이 법도였음에도 정조는 정순왕후와 단 둘이 있는 가운데 죽었다.) 정조는 의술을 배워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료할 정도로 극도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했고, 수렴청정 반교문이 반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순왕후는 정조 사망 당일 불법으로 인사권을 행사해 자신의 주변인들을 승진시켰다는 점 등을 증거로 들고 있다. 정조암살설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주장대로 정조가 암살되었다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조선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열린사회를 지향했던 군주 대신 당색에 사로잡혀 오직 당론만을 쫓았던 노론에 의해 퇴보하기 시작했기에 정조의 죽음에 안타까움과 의문이 더해지는 것이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권은 정조 사후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이 남인들을 제거하기에 혈안이 된 노론에 의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남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사상이 주를 이룬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시대의 천재 이가환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단지 반대당파에 속한다는 이유로 천재를 죽이지는 않는가?” 이승훈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몰지는 않는가?” 정조는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는 나처럼 부친을 죽인 적당과 타협하며 미래를 지향했던 정치가가 있는가?” 정약전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정약용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는 않는가?”    1권 p.13-14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을 반추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이 물음들에 있다. 이 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열린 사회, 열린 사고를 지향했던 사람들이,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파를 죽였던 자들에 의해 사지에 몰려야만 시대를 정약용을 통해 복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윤휴는 성리학이 아닌 유학의 본질인 공자의 유학을 공부하고자 했고 자신만의 학문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그는 그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성리학이 아닌 다른 학문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천주교는 조선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남인들이 천주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성리학이 아닌 학문은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남인들이 죽거나 유배를 간 이후 조선은 노론의 세상이 된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힘 한번 써 보지 못하는 순조 이후 조선은 세도정치에 휘둘리다 1910년 나라를 잃고 만다.

 

역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고, 안타까운 순간도,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다행스러운 순간도 있다. 역사를 단지 지나간 과거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볼 수 있고, 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시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이가환, 이승훈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지금 천명을 받아들이는 세상인가? 아니면 다산의 사상을 불 속에 처넣고 태워버리는 세상인가? 우리 사회는 정약용이 도를 펼칠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서용보, 이기경, 홍낙안 등이 득세하는 세상인가? 우리 사회는 다산이 꿈꾸었던 그런 나라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오늘 정약용은 이런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2권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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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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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꽃이다. 사상의 뿌리, 정치․ 제도의 줄기, 경제․ 사회의 건강한 수액이 가지 끝까지 고루 펼쳐진 다음에 비로소 문화라는 귀한 꽃은 핀다. 지금 한국 문화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실을 살펴보면 주체성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야 한다. 문화는 선인들의 과거를 성실하게 배워 발전적 미래를 이어가는 재창조 과정이다. 문화의 꽃은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가 김홍도 시대에 못지 않은 훌륭한 사회를 이룰 때에만 피어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다워져야 한다.

 

 내 책장에는 많은 양의 책은 아니지만 비교적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다. 한 곳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기보다는 팔랑귀마냥 이게 좋다 그러면 이쪽을 기웃거리고, 아니다 저게 좋다더라 하면 또 저쪽을 기웃거린 탓이다. 어쨌든 소유하고 있는 책들은 책장 한 칸에 같은 분야의 책들을 묶어 정리하는 편인데, 한 권 두 권 뜸하게 사들이던 미술관련 책들이 어느 순간 한 칸을 넘어서 옆 칸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처음 접한 미술 책은 이명옥의 ‘팜므파탈’이었다. 이 책을 읽고 예술이라는 건 뭔지, 미술의 세계는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술이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뒤이어 읽은 몇 권의 책으로 얻게 된 얄팍한 정보와 미천한 안목으로 반고흐전이다, 모네전이다, 클림트전이다 하는 등등의 전시회를 찾아다니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제야 접한 이 책은 나를 부끄럽게도 하고 자랑스럽게도 한다. 또 미소 짓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책의 표지를 보고서도 그렇다. 바늘보다 가는 붓으로 수천, 수만 번의 붓질로 완성한,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수양을 쌓은 마냥 조선의 호랑이를 그려낸 김홍도의 그림은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지만, 이런 그림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기는커녕 격에 맞지도 않는 일본식 표구로 되어 있는 사진에는 가슴이 싸해지기도 하다.

 

단순히 외향만을 닮게 그려낸 것이 아니라 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우리 초상화의 가치, 다른 색으로 조금 더 쳐진 가지의 길이, 긁혀진 소나무조차 그냥 그려진 것이 아니며, 꽉 차있는 것보다 오히려 비어있음이 무릎을 치게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화가의 예술적 경지임을 말해주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서양의 문화를 동경한 채 우리의 것을 등한시했던 우리 모두에게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일깨우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한국의 미 특강’ 이라는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한국의 문화에 대해 깊게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실제로 청중들을 앞에 두고 강의 했었던 내용을 보충하여 엮은 책이다. 그래서 오히려 딱딱하지 않고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술술 읽힌다. 미술에 대해서 깊은 지식이 있을 리 없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으니 내용도 어려울 리가 없다. 아주 쉽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면서도 깊은 무게감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식견을 높여준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우리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오른쪽에서부터 그림을 보다 도무지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없는 당혹감에 부딪치고야 마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혼자서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가 지리도 잘 몰라서 한참을 헤매는 바람에 박물관 전체를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냥 내려와야만 했었다. 이제 그 국립중앙박물관을 반드시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오주석의 책을 읽었고, 그 때 내가 김홍도의 그림을 너무도 잘 못 보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그림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문화,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 특히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우리인 까닭, 바로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빼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인 ․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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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비룡소 클래식 16
루이스 캐롤 지음, 존 테니엘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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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내 기억은 매우 단편적이다.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 TV에서 노란 머리색을 가진 한 여자아이가 말하는 토끼를 따라간다거나, 동물들과 대화를 나눈다거나 하는 등의 몇 가지 장면들로만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거 어떤 여자애가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서 이상한 모험을 하는 그런 거 아니야? 물론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이제서야 읽게 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정말 이상했다. 사실 동화라는 것을 접할 때는 어떤 편견이라고 해야 할까,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게 있다. 서양 동화는 대체적으로 공주와 왕자가 나온다. 주로 시작은 아주아주 먼 옛날에...이다. 공주는 어떤 저주로 성에 갇히게 되거나 어떤 못생긴 동물로 변하거나 아니면 얼음처럼 차가워서 여러 남자들의 구혼을 거절하거나.. 등등. 물론 멋진 왕자님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공주와 왕자는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산다. 동양 동화.. 그러니까 우리나의 전래동화는 주로 권선징악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은 착한 사람을 구박하지만 나중에는 착한 사람이 하늘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어쨌든 동화라는 것은 교훈을 주기 마련이다. 착하게 살자 라든지, 여자는 예뻐야 한다 라든지, 외모가 아닌 마음을 봐야 한다 라든지..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였을까. 오.. 앨리스.. 너는 정말 정말 이상했다.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괴테나 세익스피어의 저작만은 아니다. 우리가 어릴 때 읽는 동화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없는. 그럼에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리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시공간을 초월해 읽히고 또 읽히는.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누구나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하나로만 해석되고 결론지어지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다지 길지도 않은 이 이상한 동화는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독서모임에서 동화를 읽어보자고 누군가 제안했을 때 내가 떠올렸던 책은 '오즈의 마법사'였다. 사실 오즈의 마법사 역시 어릴 때 읽었나 안 읽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확실한 건 그 유명한 '오버더레인보우'를 멋지게 부른 주디 갈란드 주연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틀림없이 봤다는 것이다. 내 머릿 속에서 오즈의 마법사는 영화로 각인되었지만, 그 멋진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비로운 동화로 남아있다. 그런데 내 입이 미처 열리기 전에 누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말했다. 그 분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영화로 봤고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지만, 그 순간 뭔가 번쩍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너무 늦은 나이에 읽게 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이상한 이야기만큼이나 내게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오.. 앨리스, 너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거니?

 

세 살때 엄마가 읽어주는 신데렐라, 초등학교 때 내가 직접 읽는 신데렐라, 그리고 어른이 되어 읽는 신데렐라. 느낌이 어떨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동안 나는 왜 어릴 때 이 책을 읽지 못했던가 하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 없었던 건 자꾸만 등장 인물 하나 하나, 대사 한 줄 한 줄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못된 버릇(?) 때문이었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가게 된 건 우연히 발견한 토끼때문이었다. 주머니가 달린 조끼를 입은 토끼를 따라 굴 속에 빠지게 되는 앨리스는 한참을 떨어지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들에 나는 어느샌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앨리스가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건 어린이의 정신적 성장을 의미하는 걸까? 쥐에게 자꾸 고양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동물들은 왜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걸까? 울기만 하던 아이가 돼지로 변한 이유는 뭐지? 여왕은 왜 자꾸 소리를 지르고 목을 자르라고 하는 걸까? 가짜 거북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 이야기가 계속되고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나는 새로운 의미찾기를 하고 또 하고 있었다. 그러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앨리스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인다. 동물들이 말을 하는게 이상하지만 대화를 주고 받고,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게 이상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져서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상황에 알맞는 크기로 만든다. 어떤 상황이 와도 결코 당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동화니까. 어떤 편견도 고정된 지식도 강박관념도 없는 그저 신나는 모험과 상상의 세계일 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앨리스와 같은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 맞춘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찾기는 머리 아픈 걸 좋아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낸 골치아픈 물음일 뿐이다.

 

황금빛 오후 내내 / 한가로이 물 위를 흘러가네. / 어설프나 어린 어깨는 / 부지런히 노를 젓고 / 어린 손들이 부질없이 / 길을 안내하느라 애쓰네

아, 잔인한 세 사람이여! / 이렇듯 꿈결같이 몽롱한 시간에 / 조그마한 깃털 하나도 날려 보낼 수 없을 만큼 / 나지막한 숨결로 이야기를 해달라니! / 그러나 가엾은 목소리 하나가 / 어찌 세 혀를 이기리오.

오만한 맏이가 먼저 나서서 / "시작하세요!" 명령하고 / 둘째는 상냥하게 / "재미있는 걸로요!" 부탁하고 / 셋째는 일 분마다 이야기에 끼어드네.   p. 7~8

 

오! 앨리스... 너는 순수한 어린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귀여운 아이. 환상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그런 작고 어여쁜 아이. 토끼를 따라 끝없는 동굴에 빠진 앨리스가 어떻게 될 지, 누구를 만날지 몹시 궁금한 호기심에 가득찬 아이. 오... 앨리스.. 눈을 반짝이며 조용히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야!

 

그러다 갑자기 모두들 입을 다물고 / 환상 속으로 빠져드네. / 저 땅 속 낯설고 신비로운 이상한 나라에서 / 새와 짐승과 다정하게 재잘거리며 / 헤매고 다니는 꿈의 아이를 쫓아 / 그것이 정말 사실인 듯.

이제 상상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 이야기도 다 말라 버리고 / 이야기꾼은 지친 목소리로 / "나머지는 다음에"하면 / "지금 해주세요, 지금요." / 행복에 겨운 소리가 메아리치네.  p. 8~9

 

자! 동화를 읽을 때는 동화를 읽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마치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듯이 읽어서야 되겠는가. 의미찾기와 교훈 발견하기를 중단하고 이야기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3살 때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글을 깨우치고 난 후 내가 스스로 읽는 동화,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가 같은 내용임에도 그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경험과 연륜, 사회를 보는 눈과 깊이가 쌓이고, 당시의 주변 상황 때문이기도 혹은 번역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몸이 커가고 머리가 굵어질수록 동화를 동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리하여 이상한 나라가 생겨났네. / 이렇게 서서히 하나씩 하나씩 /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 이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네 / 우리의 즐거운 뱃사공들은 노를 저어 / 저물어 가는 노을 속에 집으로 돌아가네.

앨리스! 너의 부드러운 손으로 / 동심이 가득한 이 이야기를 가져가 / 추억의 신비로운 가닥 속에 놓아 두어라. / 어린 시절의 꿈들이 엮이어 있는 그곳에. / 멀고먼 나라에서 꺾어 온 / 순례자의 시든 꽃다발처럼   p. 9

 

오! 앨리스.....이제야 너를 알겠구나.

너는 그저 작고 귀여운 어린 아이일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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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5-1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화는 동화로.. 앨리스에 각주가 엄청 달린 책을 사가지고 저는 계속 분석해야 한다고만 느껴서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즈의 마법사>는 저도 봤지만 이건 안 읽어봤거든요. 얼음무지개님, 리뷰 좋아요. 현빈 책인데, 히히히 현빈이 읽어도 절대 읽어지지 않던 책이었어요. 무지개님땜에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얼음무지개 2012-05-14 22:54   좋아요 0 | URL
저는 시크릿가든이라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현빈에 의해 소개된 책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구요..ㅎㅎㅎ 책의 마지막 문장쯤을 보는데 갑자기 동화를 읽는 내내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제 자신이 한심해져서 문득 동한 마음으로 쓴 리뷰입니다. 리뷰라고하기에도 뭐하네요..^^물론 깊이있게 읽으려면 엄청난 각주가 필요하겠지만 어떤 책이든 내가 느껴지는 대로 읽을 필요도 있지요..특히 그것이 동화라면요..ㅎ
 
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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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데 이 책을 선택한 건 제목때문이었다. 이슬람 정육점. 교차점이 있을 수 없는 제목 아닌가. 무심코 스쳤다 눈에 들어온 책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슬람 정육점이란 제목은 정말 이슬람인이 정육점을 경영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은유적인 표현일까. 매우 모순적인 제목과 달리 표지는 꽤 유쾌해 보였다. 만화 주인공들처럼 모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목의 비밀이 밝혀졌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하산이(그는 터키 출신의 무슬림이다.) 실제로 정육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식당을 30년째 운영하고 있는 안나 아주머니조차도 그에게 어떤 고기가 좋은 고기인지 알려달라고 조를 정도로 좋은 고기를 골라내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제목 안에 어떤 대단한 은유적인 표현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약간의 기대는 그렇게 무너졌지만, 소설의 내용은 제목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이었다. 이슬람 정육점. 그것은 평생을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의 또 다른 말이자, 그 상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다.

 

그러니까 얘야, 네가 겪어보지 못한 운명이란 없단다. - 이 불쌍한 녀석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길 - 네가 태어날 때 너만 태어난 게 아니라 너의 운명도 함께 태어났거든." 그날 운명은 나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방심했던 탓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낯선 이가 찾아오면 숨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하산 아저씨를 보고도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까맣게 모른 채 너른 개활지에 홀로 핀 들꽃처럼 서 있었던 거다.   p. 18

 

주인공 소년은 고아원에서 어느 날 하산아저씨에게 입양된다. 벌써 몇 번이나 다른 고아원에서 길러진 소년에게 낯선 아저씨(그것도 외국인)의 입양이 처음엔 해외입양인 줄 알고 두려웠지만(고아원 아이들 사이에 해외입양은 입양된 집 아이를 위해 장기가 적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므로) 곧 자신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대통령 사진이 없는 동네에 익숙해진다.

 

돼지고기를 난도질하는 무슬림, 식당을 운영하면서 온 동네 사람들의 배고픔뿐만 아니라 허기진 마음까지 채워주는 안나 아주머니, 말은 더듬지만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는 유정, 자신이 벌써 몇 번째 거듭 태어났다는 맹랑한 녀석, 월세를 못 내 야반도주한 6명의 식구들이 살던 곳에 이사 온 매일 군가를 부르는 대머리아저씨, 세상의 온갖 개를 불러와 욕을 하는 쌀집 아저씨, 안나 아주머니 식당에 얹혀사는 그리스 병사인 야모스 아저씨 등등등. 사실 그런 익숙함은 바깥이라는 세상이 고아원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고아원보다 더 이상했다.


야모스 아저씨는 전쟁터의 병사들은 누구나 자신이 천국에 갈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지금 견디는 이 세상이 지옥이기 때문이라고.     p. 27


신은 치사해.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내버려두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 제트기로 실어다 지옥에 처넣어버리거든. ... 정말로 이 세상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다면 이 세상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야 하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지녀야 돼. 그런데 나는 아무런 욕망이 없어. 그래서 죽지 못해. 억울해. 내가 태어나고 싶어한 것도 아닌데, 대체 누가 왜 내 엉덩이를 걷어차 이 세상으로 처넣은 걸까?   p. 44


가난과 상처. 이 책의 주제는 이 두 단어로 압축된다. 하산은 가난과 사랑은 바지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아서 내버려두어도 언젠가는 뚫고 나오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뚫고 나오는 가난에 사람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그 상처는 어떤 이는 구성지게 군가를 부르게 만들고, 어떤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분홍 코끼리로 만들어 버렸으며, 또 어떤 이는 자식을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된다. 원하지 않았지만 강제로 처넣어진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저마다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고 애를 쓴다. 그리고 그 주요한 원인은 전쟁이었다.

 

작가는 한국전쟁 전사자 명단에서 하산과 야모스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터키와 그리스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그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작가에게 말을 건넸고, 작가는 이 소설을 완성한다. 작가에게 이 소설은 어떤 의무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도 지금 이 글은 어떤 의무감이다. 이 책을 읽은 이상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그런 어쭙잖은 의무감. 


한국전쟁 당시 전 세계에서 이 땅으로 온 그들은 어떻게 이곳으로 왔으며 전쟁 이전과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가.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기억하는 전쟁은 다르다기보다는 이제는 틀리다고 해야 할 정도다. 서로 네가 틀렸다고 한다. 각종 이슈에 등장하는 군복 입은 할아버지들과 구닥다리 같은 말만 하는 것 같은 전쟁 영웅들. 한 땐 비장했던 반공구호들이 웃음거리가 되어 버릴 만큼 세상은 달라졌다. 하지만 전쟁의 한 가운데서 사람들은 몸부림을 쳤으며,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내가 맞든 네가 틀리든 전쟁이 남긴 것은 가난과 죽음, 온 몸에 남은 상처들 뿐. 다른 나라에서 온 병사들 역시 전쟁이 남긴 유산은 어김없이 물려받는다. 하산과 소년은 똑같은 상처를 몸에 지니고 있다.


“운명은 면식범이다.”   p. 17


운명은 우리가 이 세상에 처넣어질 때 같이 왔다. 그리고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린다. 운명이라는 녀석을 믿는 순간 녀석은 최초이면서 최후의 발길질로 간단하게 우리를 끝장낸다. 전쟁은 하산과 야모스를 이 땅에 보냈고, 소년은 하산에게 입양되었다. 하산은 왜 늙은 나이에 소년을 입양했을까? 이 땅은 그에게 빼앗기만 했을 뿐 준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단다. 모든 상처는 아무리 치료를 잘 해도 흉터가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은 사람들로 이뤄진 가시덤불이라서 지상에 단 일 초를 머물더라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단다.” p. 111

 

주인공 소년은 여느 성장소설에서 보듯 하산 아저씨에게 입양되었다고 해서 따뜻한 보살핌으로 못된 아이가 점점 착한 아이로 달라진다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을 깨닫고 새로운 사람으로 환골탈태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슬람 사원 근처에서 다국적인들이 살아가는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모든 게 허구라는 게 명백함에도 한 가지 진실만은 놓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도 한 없이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 따뜻하지도 않지만 삭막하지만도 않은. 그리고 늘 그렇듯 이별은 다가온다.


가난한 동네에 재개발의 열풍이 불고 하산은 재개발과 돈의 논리에 밀려 정육점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아랫동네부터 점점 기계들에 의해 무너져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던 하산은 결국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는 너무 늙었다.


그는 11월 10일을 기다렸다.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하지만 하산 아저씨에게는 중요한 날이었다. 그가 누군가를 추모해야 하는 날이었으므로.

...

“보자마자 알았다. 그 흉터가 무엇인지. ... 그건 총상을 입었음을 증명하는 흉터다.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생길 수 없는 흉터야.”

...

“언젠가 너는 알게 될 거다. 네게 상처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p. 235~236


책 전체에 줄을 그을 만큼 마음에 쏙쏙 박히는 말들이 등장인물들의 입으로, 주인공 소년의 생각으로 표현되지만 그보다 꼭 남겨야 할 말은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이 땅에는 전쟁이 있었고, 코리아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른 채 먼 타국으로 파병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곳에서 죽었다. 그들에게 감사와 명복을 빈다.


그에게 이곳은 신이 없는 땅이었다. 맨 처음 파견군으로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그는 동료들과 함께 울었다. 내가 왜 그랬냐고 묻자 그는 신이 없는 땅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였다고 했다.

“이국의 병사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갔단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수없이 많은 나라의 수많은 군인들이 묻혔지. 인류 가운데 제일로 밤일을 잘하는 앵글로-색슨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그런 출중한 능력을 지니지 않고서야 어찌 지구 곳곳에 퍼져 있을 수 있겠니? 앵글로-색슨이 더럽히지 않은 대륙과 대양은 이 지구에는 없단다-안데스에서 커피나 마시던 게으름뱅이에 허풍쟁이들이었던 콜롬비아인들, 춥다고 참호에 난로를 피워놓고 꼼짝도 안 하던 멍텅구리 태국인들, 그놈들과 전혀 분간이 안 되던 필리핀인들-오 신이시여, 더러운 이교도 놈들을 입에 올리는 걸 부디 용서해주시길-정원에서 튤립이나 기르면 꼭 어울릴 것 같던 네덜란드인들, 사내다움이라곤 전혀 없이 수탉처럼 꽥꽥대던 프랑스인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잔뜩 기가 죽어 지내던 겁쟁이 벨기에인들, 코딱지만 한 곳에서 장난감 같은 총을 들고 왔던 룩셈부르크인들, 유태인처럼 밤을 아침이라고 생각하던 고집쟁이 에티오피아인들도 있었지 ...... 어디까지 했지? 그래, 맙소사! 입만 열면 고약한 물담배 냄새와 계피 냄새가 나는 더러운 터키 놈들도 있었지. 보스포루스 해협에 오줌이나 갈겨대던 녀석들이 사내랍시고 우우 몰려왔지. 만약 이곳이 한국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총을 겨눈 건 그놈들이었을 게다. 우리 그리스인들이 튀르크들의 엉덩이를 크레타에서 치면 그놈들은 단번에 에게 해 위를 날아서 카파도키아에 곤두박질친단다.”   p.120-121



ps. 나는 왜 자꾸 이 책을 알라딘 정육점이라고 발음하는지 모르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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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지 않는 아이
펄 벅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바란 대로 건강하고 멀쩡하게 태어나지 못했더라도, 몸이나 정신이, 아니면 둘 다 부족하고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더라도,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아이에게도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삶의 권리가 있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서 부모가 그 행복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있는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는 당신 자신과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다.] p.80

 

'이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결심을 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 오랜 고민만큼이나 세상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책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나오지 않았어도 되는 책이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 작가의 문학적인 결정체도, 오랜 연구나 학문의 결과도 아닌,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뚫고 나온 책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세상에 이 이야기를 내놓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자신과 같은 슬픔을 가진 이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해. 그보다는 자신의 딸과 같은 아이들이 결코 이 세상에 쓸모없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기 위해. 자신의 딸과 같은 아이의 생명도 가치가 있으며, 헛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펄벅이 딸아이와 처음 마주보았을 때 그녀의 딸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정말 특별하게 예쁜 아이였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면 사람들은 아기가 정말 예쁘다거나 푸른 눈이 영리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 아이의 지능이 언제쯤부터 멈추었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튼튼하게 자라던 딸아이는 세 살이 되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슬픈 진실을 마주하기까지 펄벅은 이런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된다. 어딘가에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아이를 고쳐 줄 사람을 찾아 전 세계를 헤매고 다닌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세상에 있는모든 의사를 찾아다닌 펄벅은 미국의 한 병원에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직시하게 된다. "아이는 영영 낫지 않을 겁니다. 고작 해야 네 살 이상으로는 자라지 않을 거예요."

 

펄벅은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자랐다. 1917년 중국에서 결혼했고, 1920년 딸 캐롤을 낳게 된다. 딸 캐롤은 페닐케톤 요증(PKU)를 안고 태어난 정신지체아였다. 오늘날에는 미리 예방이 가능한 병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후 펄벅은 이혼을 하고 정신지체인 딸을 키우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 '대지'라는 작품으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고, 평생 80여편의 작품을 썼으며, 7명의 아이를 입양하고, 펄벅재단을 설립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혼혈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은 아이들을 입양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까지 그 이면에는 자라지 않는 아이 캐롤이 있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속에 묻고 있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슬픔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 p. 56

 

1950년 펄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가 발간되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유명인의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이 담긴 내밀한 고백은 같은 슬픔을 가진 채 어찌할 바를 모르던 부모들에게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실 펄벅은 책 발간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캐롤의 존재에 대해 말한 적이 거의 없었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냉정하고 완벽했다. 아이에게 자신이 없더라도 평생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시설에 보낸 후에도 펄벅은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쓴다. 장애는 결코 부모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펄벅은 자신이 얼마나 깊고도 영원히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를 고백한다. 그것은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슬픔이 곧 삶이 되는 그런 슬픔이다. 하지만 펄벅은 캐롤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도 고백한다. 길고도 고단한 여정을 거쳐 펄벅은 인간성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며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유하고 좋은 가문에서 자란 펄벅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참지 못하는 오만한 태도를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과 같은 아이들도 지능과 감정은 무관하기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기쁨에서 뿐 아니라 슬픔에서도, 건강에서 뿐 아니라 질병에서도, 뛰어난 재능에서 뿐 아니라 장애에서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역경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 아이들의 삶은 힘겨운 것이기는 했지만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도 이유는 모릅니다. 아주머니도 왜 이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는지는 모르시지요? 아이의 존재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언제까지고 어머니가 아이를 감싸고 보호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 아이도 사람이고, 자기 몫의 조그만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p.97

 

'자라지 않는 아이'의 마지막 글을 장식하고 있는 '마사 M. 재블로'는 '인류의 가장 큰 진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내딛은 조그만 발걸음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진짜 진실을 말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산을 움직이고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1950년 캐롤을 세상에 내놓은 펄벅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장애인에게, 장애아를 둔 부모에게 이전에는 없었던 공감과 이해 그리고 위안을 주었다. 자신의 고통을 알고 지지와 희망을 주는 펄벅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같은 경험을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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