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사의 건강백신 - 전 국민 건강 블로그 <뉴욕에서 의사하기>의 레알 건강 토크
고수민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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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나는 저자 고수민님의 이력이 참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그냥 의사가 아닌 뉴욕의사 라는 점이 눈에 들었다. 여기서 뉴욕의사라는 말은 현재 뉴욕에서 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의사라는 말이지만, 책을 읽어보면 뉴욕의사라는 그의 수식어가 와 닿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 헤드레스트 높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헤드레스트 높이를 비교해가며 설명하거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의 비만 문제에 대한 이야기,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한국에서의 관점과 미국에서의 관점을 같이 언급해줘서 함께 접할 수 있다보니 건강에 대한 지식이 더욱 폭 넓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프롤로그 속 저자의 말처럼 4년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수련 생활을 통해 저자는 질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요통과 당뇨를 가지고 있다면 예전에는 개개의 질환을 치료하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볼 줄 몰랐지만, 이 환자 전체를 놓고 곰곰 생각해보니 두 가지 질병의 연결고리로 복부 비만이 있었고 이 문제가 당뇨병과 요통을 다 악화시키는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그 복부 비만의 기저에는 반복되는 다이어트 실패와 비만에 대한 잘못된 이해, 심리적 우울이라는 원인이 겹쳐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의 종합적인 시각이 담기도록 최대한 노력했다고 하는 저자의 말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질병은 한 가지 요인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에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느껴진 발바닥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을 찾았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진단하시길 내 병명은 ‘족저근막염’이었다. 말 그대로 족저근막에 염증으로 통증이 유발되는 병인데, 발바닥에 통증이 있으니 나는 당연히 발바닥의 문제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의사 선생님은 발바닥 통증이 단순한 발바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나 종아리 근육에 문제가 있어서 발바닥에 통증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며 허리랑 종아리에는 별다른 통증이 없는지 확인하셨다. 확인 결과 허리와 종아리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는데도 발바닥 통증이 이어졌던지라 나는 순수한 족저근막염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나는 그 후로 어딘가 아프면, 일차적으로 왜 아픈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차적으로 다른 곳에 문제가 있어서 아픈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 일로 질병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덕분에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질병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생활, 직장인, 질병, 여성 등 분야별로 언급되어 있는데 건강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의 글이라 그런지 술술 잘 읽혔던 것 같다. 특히 나와 연관이 많은 생활과 직장인 부분은 부담 없이 읽었고,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질병에 대한 정보와 당연히 알아야하지만 모르고 살았던 여성 건강에 대한 부분까지도 끝까지 막힘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건강에 대한 정보만 제시되는 딱딱한 책이 아니라, 언제든 담백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워진 건강에세이여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인 여럿에게 추천했는데, 특히 책과 거리가 먼 엄마가 가장 좋아하셨다. 이런 책이라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며 말이다. 나 역시도 완독하긴 했지만, 잘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다보니 살아가면서 두고 두고 찾게 될 책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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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3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3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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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낙이와 순대를 만난 건 작년 7월이었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2권을 종이책으로 접한 후로 나는 2권 이전의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2권 이후의 이야기들을 기다리며 챙겨보게 되었다. 친구가 여전히 애완견 푸치를 키우고, 동생이 유기견 보호센터에 봉사활동을 나가 유기견을 돌보는 가운데에서 나는 주말마다 동물농장을 챙겨보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이웃 블로거의 블로그에 자주 놀러가 두부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망고라는 이름의 고양이 사진을 엄마미소 짓고 챙겨보곤 했다. 나의 이러한 소소한 행동들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만이 독서가 아니라 서점에 방문해 책을 구경하고, 책을 선물하기 위해 책을 고르고, 때로는 서평을 읽고 지인에게 책 추천을 받는 것 모두 독서라고 말할 수 있듯이 말이다. 물론 책을 구경하는데 그친 사람과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은 사람과의 차이가 있듯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직접 키우는 것과 나만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된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2』中)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만화를 읽어준 독자에게 감상을 바라지 않고, 그냥 옆에 있는 반려동물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시면 좋겠거니 하는 생각은 하고 있다는 책.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 나는 나만의 사정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뾰롱이와 헤어질 텐데 그렇게 정이 들었으니 헤어질 일을 생각하면 무섭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헤어짐이 무서워 사랑하지 않는 건 아까운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평생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따라서 기쁨과 보람도 느낄 수 없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아쉬움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는 기쁨이 더욱 크리라고 생각한다. (p.255)

 

모든 사랑이 그러하지만, 반려동물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헤어짐이 무서워 사랑하지 않는 건 아까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낭낙이와 순대를 만나고 알게 되었다. 여기에 탁묘 뾰롱이와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속 모든 반려동물들 덕분에 말이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서로 닮아가고, 반려동물은 반려동물이니까 주인을 닮아가고, 나도 모르는 사이 섞이고 스며들어 비슷해져 가고, 어느 날이라도 나의 반려동물이 아주 상냥하고 다정하게 느껴질 적엔 나도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여겨도 된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진심을 쏟는 만큼 나도 반려동물들처럼 사랑스럽고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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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 -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
마이클 에니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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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아라하는 팩션 소설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을 꼽는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기록된 자 김홍도와 기록되지 않은 자 신윤복. 이 두 사람에게는 몇가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첫재, 두 사람은 도화서 화원 생활을 함께했던 동시대인이다. 둘째, 두 사람이 똑같은 주제를 두고 그린 그림이 여러 장 발견되고 있다. 셋째, 두 명의 천재화가 중 김홍도에 대한 자료는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는 반면, 신윤복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인 건, 기록은 사라졌지만 그림만은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 남아 있는 그의 그림에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 탄생한 작품이 『바람의 화원』이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이라는 팩트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내 흥미를 유발했고, 무엇보다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게 읽혔기 때문이다. 팩트로만 끝나기에는 아쉬운 그들의 이야기를 픽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계속해서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팩션 소설의 매력을 통해 나는 김홍도와 신윤복, 그리고 그들의 그림을 아끼게 되었다. 이렇게 팩션 소설은 역사를 아는 이에게는 역사를 넘어 그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하고, 작품을 통해 몰랐던 역사를 접하게 만들어 역사에 관심을 쏟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록 반짝 관심이라 할지라도.

『바람의 화원』이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면, 이번에 읽은 『포르투나: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는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읽게 해준 작품이었다. 시대 그 자체로도 매료되기에 충분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빛나는 이성과 문화의 시대,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두 거물, 인류가 낳은 대표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현재까지도 큰 영향력을 과시하는 고전 『군주론』의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한 팀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한다면? 생각만 해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고, 기대이상의 이야기였다.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는 소재 중 하나인 후안 보르자 살인사건이 역사 속에 미제로 남아 있는 실제 사건이라는 것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니콜라 마키아벨리 등 실존했던 인물들이 소설 속 캐릭터로 등장해서 그런지 생생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 속 그들이 하는 말들은 작가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캐릭터 그 자체는 실존 인물이었으니까. 또, 르네상스 시대라는 나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시대를 거부감 없이 읽게 만든 작가의 역량도 참 좋았다. 전반부에서 다미아타 시점으로 쓰여서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고 기구한 운명에 함께 슬퍼하게 만들면서 소설에 집중하게 만들고, 후반부부터는 풍부한 지식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마키아벨리의 시점으로 쓰여 몰입하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뒤돌아봤을 때, 르네상스 시대에 생소했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르네상스의 역사와 정치를 조금은 알게 된 내가 되어있었다. 나는 단지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ㅎㅎ 그리고 나는 아마도 언제 어디선가 르네상스를 접하면 이 책을, 이 책 속의 사건을,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힘을 합쳤던 그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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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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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스캔들 메이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집 『길모퉁이 카페』를 나는 조금 힘겹게 읽었다. 1975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집이기 때문에? 아니다. 1975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집이라고 하기에 『길모퉁이 카페』속 문체는 2013년에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옮긴이의 글 속 옮긴이의 말처럼 70년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벌어지는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단편들도 많았다. 이것도 아니면, 250쪽에 남짓한 분량에 열아홉 편이라는 단편집이었기 때문에? 아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장편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단편과 장편의 차이는 호흡의 문제일 뿐 단편은 단편대로의 매력이 있고 장편은 장편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장편만큼이나 단편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이유로 『길모퉁이 카페』를 힘겹게 읽었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열아홉 편의 단편이 ‘결별’을 테마로 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열아홉 편의 단편을 읽어내는 게 힘겨운 일은 아니지만 결별을 이야기하는 열아홉 편을 읽어내기란 녹록치 않았기 때문에.

단편집의 매력 중 하나는, 하나의 단편을 끝내고 이어지는 단편으로 들어가는 호흡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인데, 다른 독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통 이어지는 단편보다는 앞서 읽은 단편의 여운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분량이 어떠하건 간에, 등장인물의 심리를 이해하건 이해하지 못했건 간에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맞이하는 ‘결별’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프랑수아즈 사강 특유의 가볍고 시니컬한 문체 덕분에 소설 속 그들에게는 나름 거창했을 결별이 나에게는 사소하거나 소소한 이별로 다가왔으므로 나는 그들의 결별에 대해 더욱 더 생각했다. 거기에 덧붙여 소설 속에서는 생략된, 그들이 결별하기까지의 그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열아홉 편으로 채워진 250쪽이 못되는 이 소설집을 읽어내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모든 게 잘되고 있어. 밀밭이나 귀리밭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뭐라는 거야?”

“머리 위에서 살랑거리는 줄기들과 함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진정해.”

“죽어가는 사람에겐 늘 진정하라고 하지. 정말 그럴 때야.”

“그래, 그럴 때지.”

마르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남자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손을 잡고 죽어갔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여자가 아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둘이 함께하는 행복이란…… 쉽지가 않네…….”

그리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이제 그에게 행복 같은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p.62-63,「누워 있는 남자」)

 

어쩌면 소설 속 그들이 결별한 이유는 소설 속 구절처럼 ‘둘이 함께하는 행복이 쉽지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뜨거운 연인이 사랑의 언약을 속삭이는 길모퉁이 카페가 때로는 누군가의 사랑이 붕괴되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이 마감되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한 때는 열렬히 사랑해서 둘이 함께 행복했으나 어느 날, 이런 저런 이유로 둘이 함께하는 행복이 쉽지가 않아졌기에 그들은 결별했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결별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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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 서른, 드라마는 없다 - 방황하는 청춘을 위한 찌질하지만 효과적인 솔루션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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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혜린 작가의 신작 <낼모레 서른, 드라마는 없다>를 읽었다. 작가의 전작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를 읽진 못했지만 표제와 부제가 주는 느낌이 심상치 않았고, 무엇보다 소담출판사 카페에서 연재되었을 때 작가의 말을 읽고 나는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말은 한 귀로 흘려들어라. 그들은 성공했다. 고로 모든 고난과 역경이 아름답게 보일 거다. 나도 성공만 하면, 그런 소리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욕심만 부리지 말고 눈을 낮춰 작은 회사부터 들어가라! 실패 없인 성공도 없다! 도전하라! 조건 보지 말고 진짜 사랑을 해라! 외면보다 내면을 가꿔라!

빌어먹을. 고생이 그렇게 좋으면 너희들이나 실컷 사지 그래? 작은 회사에서 월급 못 받으면 누가 대신 주나? 도전했다 망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나 주니, 너희들이? 전셋값이 매년 1억 원씩 오르는 이 땅에서 감히 사랑을 들먹이는 거야? 그깟 내적인 아름다움, 백날 가꿔봐야 들여다보기나 하느냐고! (p.7)

 

아직 낼 모레 서른인 나이는 아니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인상 깊게 읽었던 20대 초반을 지나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선 어느 날, 나는 이와 같은 책을 찾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청춘은 아프다고. 그래, 맞다. 아프다. 그런데 ‘졸라’ 아프다. (p.5)

 

다시 말하자면, 20대 초반이 청춘은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는 나이라면 20대 후반은 그 청춘이 작가님의 말마따나 ‘졸라’ 아픈 나이랄까. 졸라 아프지만 커리어우먼은 없고, 로맨스는 없고, 화려한 싱글은 없음을 알기에 마냥 아플 수만은 없는 나이. 이 책은 그러한 나이를 살고 있는 여자를 위한 책이다. 커리어 우먼, 로맨스, 화려한 싱글은 없다는 3개의 주제로 나눠져서 쓰인 이 책은 상사의 고함에 대처하는 방법, 핫한 성희롱에 대한 쿨한 대처 등 커리어우먼으로 살기 힘든 직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하남, 업계 관계자등 직장인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이어트와 강아지, 월세 등 화려한 싱글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나는 책의 구성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상사와의 맞팔’에 대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실화 같은 이야기 한 편이 먼저 등장하고 ‘부하 사찰 대처법’이라는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간다는 점.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언니가 대화하고 있다. A언니가 직장에서의 연애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면, B언니는 A언니의 이야기에 대해 공감과 함께 솔직한 충고를 해준다. C인 나는 그런 두 언니의 사이에서 누구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다가도 B언니의 유머에 빵 터져서 웃기도 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님의 유머가 더해져 마냥 팍팍하지만은 않은 그런 ‘언니의 충고’가 담긴 책.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다.

 

얼마 전 종영한 문근영, 박시후 주연의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문근영이 연기한 캐릭터 한세경이 이런 대사를 외친다.

  

“가난하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어, 근데 이제 알았어. 아무리 열심히 성실히 노력해도 가난하다면 그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화를 내야하는 거야. 훌륭한 사람들은 이럴 때 세상을 바꾸지, 근데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난... 나를 바꿀 거야... 너처럼 살 거야...(이하 생략)”

 

그래서 우리의 한세, 세경이는 청담동으로 향한다. 비록 누구 하나 환영해주지 않았지만 세경이는 묵묵히 걸어갔다. 어느 날은 시계토끼를 찾고, 어느 날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울었고, 어느 날은 간장을 맞기도 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없어서 자신을 바꾸는 것을 택한 세경이. 이 책의 ‘작가의 말’처럼 보란 듯이 살아남기 위해 이 세상의 부조리와 어서 빨리 손잡았을 세경이. 나는 그런 세경이가 될 수는 없어서, 이 책을 다시 읽기로 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좀 더 와 닿는 나이가 되었을 때, 작가님 보다는 언니로 부르고 싶은 혜린 언니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말이다.

 

 

 

* 인상 깊었던 구절 *

 

두 가지 길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당신이 그 일에 미치지 않았음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득할 자신이 있나. 없다면, 소시민이 되 자신을 보고 한숨부터 푹 내쉬기 전에 자신의 꿈이 진짜 꿈인지 백일몽인지부터 체크해야 할 것이다. 미치지 않았다면, 별수 없다. 소시민으로 사는 즐거움을 찾을 수 밖에. (p.39)

 

효과가 없을 것 같나. 일단 한번 해보시라. 경쟁이 힘겨운 건, 절박함 때문이다.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이것도 게임 1라운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잘' 이기고 '잘' 싸우는 방법이 보인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평범한 여직원인 나도 여전사들 못지않게 섹시하다고 느낀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거리 두기'라는 거, 한번 믿어보시라. (p.56-58)

 

방법이 없다. 그냥 버텨라. 참고 또 참아서 끝까지 살아남아라. 그리고, 선배가 된 후 생각해봐라. 후배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그때에도 '신입 사원에게 발언권을 똑같이 줘야 하며, 그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잡무는 다 같이 나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당신을 존중하겠다. (p.77)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윗사람은 늘 바뀌고, 라인은 언제나 요동친다. 아직 라인을 못 탔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단, 피라미드 구조를 파악하는 걸 게을리하진 말아라. 결정적 순간은 아무 예고 없이 훅 닥쳐온다. (p.99)

 

나에게 반하지 않은 남자에게 목을 맬 이유는 전혀 없지만, 내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고 싹둑 잘라내지도 말 것. 어장 한 칸 정도는 못 이기는 척 내주는 게 현명하다. (p.156)

 

당신이 연애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만 직시한다면,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는 데 성공한다면, A의 존재 따위, 당신의 연애 라이프에 아무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A와의 소중한 우정을 잘 지켜내시라. 그런 친구, 또 없다. (p.163)

 

서른은 무조건 중요한 나이다. 내면의 목소리? 그딴 뜬구름을 잡을 때가 아니다. 30대 여성들과 절친한 내가 확실히 말하건대, 서른에는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이루어놔야 한다.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맘대로 인출할 수 있는 돈이 3,000만 원을 '훌쩍' 넘을 것. 죽었다 깨어나도 이건 안 되겠다면, 내 맘대로 고를 수 있는 신랑감 후보가 세 명은 돼야 한다. (p.308-309)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같이 보면 좋을 드라마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20대라면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30대라면 김미경의 <언니의 독설>

 

같이 보면 좋을 드라마 :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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