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 -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
마이클 에니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라하는 팩션 소설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을 꼽는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한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 기록된 자 김홍도와 기록되지 않은 자 신윤복. 이 두 사람에게는 몇가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첫재, 두 사람은 도화서 화원 생활을 함께했던 동시대인이다. 둘째, 두 사람이 똑같은 주제를 두고 그린 그림이 여러 장 발견되고 있다. 셋째, 두 명의 천재화가 중 김홍도에 대한 자료는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는 반면, 신윤복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인 건, 기록은 사라졌지만 그림만은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 남아 있는 그의 그림에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 탄생한 작품이 『바람의 화원』이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이라는 팩트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내 흥미를 유발했고, 무엇보다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게 읽혔기 때문이다. 팩트로만 끝나기에는 아쉬운 그들의 이야기를 픽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계속해서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팩션 소설의 매력을 통해 나는 김홍도와 신윤복, 그리고 그들의 그림을 아끼게 되었다. 이렇게 팩션 소설은 역사를 아는 이에게는 역사를 넘어 그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하고, 작품을 통해 몰랐던 역사를 접하게 만들어 역사에 관심을 쏟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록 반짝 관심이라 할지라도.

『바람의 화원』이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면, 이번에 읽은 『포르투나: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는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읽게 해준 작품이었다. 시대 그 자체로도 매료되기에 충분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빛나는 이성과 문화의 시대,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두 거물, 인류가 낳은 대표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현재까지도 큰 영향력을 과시하는 고전 『군주론』의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한 팀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한다면? 생각만 해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고, 기대이상의 이야기였다.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는 소재 중 하나인 후안 보르자 살인사건이 역사 속에 미제로 남아 있는 실제 사건이라는 것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니콜라 마키아벨리 등 실존했던 인물들이 소설 속 캐릭터로 등장해서 그런지 생생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 속 그들이 하는 말들은 작가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캐릭터 그 자체는 실존 인물이었으니까. 또, 르네상스 시대라는 나에게는 다소 생소했던 시대를 거부감 없이 읽게 만든 작가의 역량도 참 좋았다. 전반부에서 다미아타 시점으로 쓰여서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고 기구한 운명에 함께 슬퍼하게 만들면서 소설에 집중하게 만들고, 후반부부터는 풍부한 지식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마키아벨리의 시점으로 쓰여 몰입하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뒤돌아봤을 때, 르네상스 시대에 생소했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르네상스의 역사와 정치를 조금은 알게 된 내가 되어있었다. 나는 단지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ㅎㅎ 그리고 나는 아마도 언제 어디선가 르네상스를 접하면 이 책을, 이 책 속의 사건을,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힘을 합쳤던 그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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