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희대의 스캔들 메이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집 『길모퉁이 카페』를 나는 조금 힘겹게 읽었다. 1975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집이기 때문에? 아니다. 1975년에 처음 출간된 소설집이라고 하기에 『길모퉁이 카페』속 문체는 2013년에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옮긴이의 글 속 옮긴이의 말처럼 70년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벌어지는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단편들도 많았다. 이것도 아니면, 250쪽에 남짓한 분량에 열아홉 편이라는 단편집이었기 때문에? 아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장편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단편과 장편의 차이는 호흡의 문제일 뿐 단편은 단편대로의 매력이 있고 장편은 장편대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장편만큼이나 단편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이유로 『길모퉁이 카페』를 힘겹게 읽었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열아홉 편의 단편이 ‘결별’을 테마로 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열아홉 편의 단편을 읽어내는 게 힘겨운 일은 아니지만 결별을 이야기하는 열아홉 편을 읽어내기란 녹록치 않았기 때문에.

단편집의 매력 중 하나는, 하나의 단편을 끝내고 이어지는 단편으로 들어가는 호흡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인데, 다른 독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통 이어지는 단편보다는 앞서 읽은 단편의 여운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분량이 어떠하건 간에, 등장인물의 심리를 이해하건 이해하지 못했건 간에 나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맞이하는 ‘결별’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프랑수아즈 사강 특유의 가볍고 시니컬한 문체 덕분에 소설 속 그들에게는 나름 거창했을 결별이 나에게는 사소하거나 소소한 이별로 다가왔으므로 나는 그들의 결별에 대해 더욱 더 생각했다. 거기에 덧붙여 소설 속에서는 생략된, 그들이 결별하기까지의 그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열아홉 편으로 채워진 250쪽이 못되는 이 소설집을 읽어내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모든 게 잘되고 있어. 밀밭이나 귀리밭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뭐라는 거야?”

“머리 위에서 살랑거리는 줄기들과 함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진정해.”

“죽어가는 사람에겐 늘 진정하라고 하지. 정말 그럴 때야.”

“그래, 그럴 때지.”

마르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남자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손을 잡고 죽어갔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여자가 아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둘이 함께하는 행복이란…… 쉽지가 않네…….”

그리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이제 그에게 행복 같은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p.62-63,「누워 있는 남자」)

 

어쩌면 소설 속 그들이 결별한 이유는 소설 속 구절처럼 ‘둘이 함께하는 행복이 쉽지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뜨거운 연인이 사랑의 언약을 속삭이는 길모퉁이 카페가 때로는 누군가의 사랑이 붕괴되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이 마감되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한 때는 열렬히 사랑해서 둘이 함께 행복했으나 어느 날, 이런 저런 이유로 둘이 함께하는 행복이 쉽지가 않아졌기에 그들은 결별했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결별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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