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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 서른, 드라마는 없다 - 방황하는 청춘을 위한 찌질하지만 효과적인 솔루션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월
평점 :
최영희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혜린 작가의 신작 <낼모레 서른, 드라마는 없다>를 읽었다. 작가의 전작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를 읽진 못했지만 표제와 부제가 주는 느낌이 심상치 않았고, 무엇보다 소담출판사 카페에서 연재되었을 때 작가의 말을 읽고 나는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말은 한 귀로 흘려들어라. 그들은 성공했다. 고로 모든 고난과 역경이 아름답게 보일 거다. 나도 성공만 하면, 그런 소리는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욕심만 부리지 말고 눈을 낮춰 작은 회사부터 들어가라! 실패 없인 성공도 없다! 도전하라! 조건 보지 말고 진짜 사랑을 해라! 외면보다 내면을 가꿔라!
빌어먹을. 고생이 그렇게 좋으면 너희들이나 실컷 사지 그래? 작은 회사에서 월급 못 받으면 누가 대신 주나? 도전했다 망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나 주니, 너희들이? 전셋값이 매년 1억 원씩 오르는 이 땅에서 감히 사랑을 들먹이는 거야? 그깟 내적인 아름다움, 백날 가꿔봐야 들여다보기나 하느냐고! (p.7)
아직 낼 모레 서른인 나이는 아니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인상 깊게 읽었던 20대 초반을 지나 어느덧 20대 중반에 들어선 어느 날, 나는 이와 같은 책을 찾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청춘은 아프다고. 그래, 맞다. 아프다. 그런데 ‘졸라’ 아프다. (p.5)
다시 말하자면, 20대 초반이 청춘은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는 나이라면 20대 후반은 그 청춘이 작가님의 말마따나 ‘졸라’ 아픈 나이랄까. 졸라 아프지만 커리어우먼은 없고, 로맨스는 없고, 화려한 싱글은 없음을 알기에 마냥 아플 수만은 없는 나이. 이 책은 그러한 나이를 살고 있는 여자를 위한 책이다. 커리어 우먼, 로맨스, 화려한 싱글은 없다는 3개의 주제로 나눠져서 쓰인 이 책은 상사의 고함에 대처하는 방법, 핫한 성희롱에 대한 쿨한 대처 등 커리어우먼으로 살기 힘든 직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연하남, 업계 관계자등 직장인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이어트와 강아지, 월세 등 화려한 싱글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나는 책의 구성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상사와의 맞팔’에 대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실화 같은 이야기 한 편이 먼저 등장하고 ‘부하 사찰 대처법’이라는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간다는 점.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나를 포함한 두 명의 언니가 대화하고 있다. A언니가 직장에서의 연애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면, B언니는 A언니의 이야기에 대해 공감과 함께 솔직한 충고를 해준다. C인 나는 그런 두 언니의 사이에서 누구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다가도 B언니의 유머에 빵 터져서 웃기도 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님의 유머가 더해져 마냥 팍팍하지만은 않은 그런 ‘언니의 충고’가 담긴 책.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았다.
얼마 전 종영한 문근영, 박시후 주연의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 문근영이 연기한 캐릭터 한세경이 이런 대사를 외친다.
“가난하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어, 근데 이제 알았어. 아무리 열심히 성실히 노력해도 가난하다면 그건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향해 화를 내야하는 거야. 훌륭한 사람들은 이럴 때 세상을 바꾸지, 근데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난... 나를 바꿀 거야... 너처럼 살 거야...(이하 생략)”
그래서 우리의 한세, 세경이는 청담동으로 향한다. 비록 누구 하나 환영해주지 않았지만 세경이는 묵묵히 걸어갔다. 어느 날은 시계토끼를 찾고, 어느 날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울었고, 어느 날은 간장을 맞기도 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없어서 자신을 바꾸는 것을 택한 세경이. 이 책의 ‘작가의 말’처럼 보란 듯이 살아남기 위해 이 세상의 부조리와 어서 빨리 손잡았을 세경이. 나는 그런 세경이가 될 수는 없어서, 이 책을 다시 읽기로 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좀 더 와 닿는 나이가 되었을 때, 작가님 보다는 언니로 부르고 싶은 혜린 언니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말이다.
* 인상 깊었던 구절 *
두 가지 길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당신이 그 일에 미치지 않았음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득할 자신이 있나. 없다면, 소시민이 되 자신을 보고 한숨부터 푹 내쉬기 전에 자신의 꿈이 진짜 꿈인지 백일몽인지부터 체크해야 할 것이다. 미치지 않았다면, 별수 없다. 소시민으로 사는 즐거움을 찾을 수 밖에. (p.39)
효과가 없을 것 같나. 일단 한번 해보시라. 경쟁이 힘겨운 건, 절박함 때문이다.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이것도 게임 1라운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잘' 이기고 '잘' 싸우는 방법이 보인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평범한 여직원인 나도 여전사들 못지않게 섹시하다고 느낀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거리 두기'라는 거, 한번 믿어보시라. (p.56-58)
방법이 없다. 그냥 버텨라. 참고 또 참아서 끝까지 살아남아라. 그리고, 선배가 된 후 생각해봐라. 후배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그때에도 '신입 사원에게 발언권을 똑같이 줘야 하며, 그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잡무는 다 같이 나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당신을 존중하겠다. (p.77)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윗사람은 늘 바뀌고, 라인은 언제나 요동친다. 아직 라인을 못 탔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단, 피라미드 구조를 파악하는 걸 게을리하진 말아라. 결정적 순간은 아무 예고 없이 훅 닥쳐온다. (p.99)
나에게 반하지 않은 남자에게 목을 맬 이유는 전혀 없지만, 내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고 싹둑 잘라내지도 말 것. 어장 한 칸 정도는 못 이기는 척 내주는 게 현명하다. (p.156)
당신이 연애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만 직시한다면,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는 데 성공한다면, A의 존재 따위, 당신의 연애 라이프에 아무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A와의 소중한 우정을 잘 지켜내시라. 그런 친구, 또 없다. (p.163)
서른은 무조건 중요한 나이다. 내면의 목소리? 그딴 뜬구름을 잡을 때가 아니다. 30대 여성들과 절친한 내가 확실히 말하건대, 서른에는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이루어놔야 한다.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맘대로 인출할 수 있는 돈이 3,000만 원을 '훌쩍' 넘을 것. 죽었다 깨어나도 이건 안 되겠다면, 내 맘대로 고를 수 있는 신랑감 후보가 세 명은 돼야 한다. (p.308-309)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같이 보면 좋을 드라마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20대라면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30대라면 김미경의 <언니의 독설>
같이 보면 좋을 드라마 :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