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책을 읽는 일은 도가 아니다. 이번 책에 실린 많은 독후감이 그렇듯이 독서를 파고들면 들수록 도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로 난 길이다.

 

 

 

 

 

 - 장정일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1>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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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는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라 인생을 향한 항변 같았다.
   "인생은 항상 ㄷ자로 뚫려 있어. 자꾸 억지로 ㅁ자로 메우려 하면 꼭 에러가 나."
  디귿과 미음이라니.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매혹적인가. 선배의 속 깊은 은유와 상징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궁금증을 못 이기고 선배를 다그쳤다.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어요?" 선배는 눈치 없는 나를 위해 쉽게 풀어 설명을 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가 없는 사람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있는 사람의 충만함을 부러워하잖아. 모든 걸 완전한 ㅁ자로 채우려 하면, 삶이 너무 피곤해지거든. 뭔가 살짝 모자란 ㄷ자가 좋은 거야. ㅁ자는 이루지 못할 이상이지." 욕심 많은 나는 갑자기 내 인생이 부끄러워졌다. 언제나 ㅁ자로 꽉 채우려 하다가 ㄷ은커녕 ㄱ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 정여울,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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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궁극의 아이>로 한국 장르 소설계에 폭풍을 불러일으킨 장용민의 장편소설. <궁극의 아이>가 10년 전 죽은 남자의 복수극을 스펙터클하게 그렸다면, <불로의 인형>은 한중일 3국에 걸친 역사와 불로초 전설을 토대로 한 팩션 스릴러다.

일류 큐레이터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살아가던 가온은 남사당패 꼭두쇠인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는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심을 품고 진상을 파헤치던 가온은 배다른 동생 설아를 통해 아버지가 남긴 알 수 없는 초대장과 꼭두쇠에게만 전해진다는 기괴한 인형을 얻게 되는데…

인형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질수록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펼치는 서스펜스와 스릴의 향연. 이천 년에 걸친 인형과 불로초의 비밀, 3국의 역사에 얽힌 사연들이 벼락같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

 

작년에 읽었던 장르 소설 중에 가장 재밌게 읽었던 <궁극의 아이> 작가 장용민의 신작!

<불로의 인형>이 나왔다. 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제 책 주문한 거 받기 무섭게 이렇게 신간 소식이 뜨다니ㅋㅋㅋㅋㅋㅋㅋ

 

올해는 이 책 사서 읽는게 최고의 휴가가 될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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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깨물기
이노우에 아레노 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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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는 기획이 마음에 들었던 기억 깨물기. 익히 알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를 비롯해서 이노우에 아레노, 가와카미 히로미, 고데마리 루이, 노나카 히라기, 요시카와 도리코 등 일본의 대표 여류 작가들의 쓴 여섯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 모두,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재로 초콜릿이 등장하는데,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초콜릿을 주제로 한 사랑 이야기. 여섯 편의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초콜릿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기억이 되었으며 그들은 초콜릿을 깨무는 것처럼 기억을 깨무는 것이다 라고나 할까.

 

어차피 에쿠니 가오리를 제외하고 다른 작가들은 몰랐던지라- 처음부터 읽자고 생각해서 첫 단편인 <전화벨이 울리면>부터 읽기 시작했다. 여기서의 초콜릿은, 대학생인 와 불륜 관계에 있던 유부녀 교코가 항상 핸드백에 넣고 다니던 초콜릿이다. 자신의 남편을 감시하던 교코와 그런 교코를 돕는 ’. 그들의 일에 성과아닌 성과가 있던 날, 교코는 핸드백에서 초콜릿 대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는 그런 교코 씨의 핸드백에서 초콜릿을 꺼내 은박지를 벗겨 교코 씨의 입술 사이에 밀어 넣는다. 한 개, 또 한 개. 씁쓸한 초콜릿인 동시에, 위로의 초콜릿이기도한 <전화벨이 울리면>을 읽으면서 , 이 책의 매력은 여기에 있구나싶었다. 초콜릿이 주제인 것 같지만, 초콜릿은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에 가까울 뿐이라는 사실. 우리네 이야기 속에 녹아든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의 기억이 이 책의 진짜 주제인 셈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인상 깊지 않았던 단편 <늦여름 해 질 녘>을 지나, 가와카미 히로미를 기억하게 만든 <금과 은>을 지나고 두 편의 단편을 더 지나서 마지막으로 만난 요시카와 도리코의 단편 <기생하는 여동생>은 이 책을 고른 내 선택을 보람 있게 만들어주었다.

 

<기생하는 여동생>은 정반대 성격을 가진 자매의 이야기다. 매사에 계획적이고 성실한 언니 가야노의 시점으로 쓰여진 이 단편은, 제멋대로에 뻔뻔하고 생각 없이 사는 듯한 동생 리미코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데서 시작한다.

원룸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의 종합병원에서 사무를 보고 있는 가야노와, 친구가 경영하는 레게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리미코, 생활 리듬이 완전히 다른 둘. 리미코는 가야노가 겨우 잠이 들 때 즈음에 들어와서 부산스럽게 야식을 먹기도 하고, 가야노 입장에서는 비상식적인 선물한 잎 깊숙이 베어 먹은 도넛, <반액 세일> 딱지가 붙은 딸기 찹쌀떡을 덜렁덜렁 들고 공짜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아이였다.

나란히 TV 앞에 앉아 NHK 홍백가합전을 보고 있으면, 출연진들에 대해 삐딱하게 말하는 가야노와 달리 편을 들어주는 리미코. 그런 리미코의 말에 폴리애나를 능가한다는 가야노의 말에 리미코는 뭐야, 그거, 좋은 점 찾기 놀이?”라면서 발을 버둥거리고 깔깔거린다. 그런 리미코를 두고, 가야노는 애당초 그런 아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험담을 하지 않는, 선한 아이. 리미코의 긍정적이고 선한 면을 볼 때마다 얘한테는 진짜 못 당하겠다싶은 가야노는 그런 마음이 든다. 50억 호화 주택에서 사는 셀러브리티에게도,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화보를 장식하는 패션모델에게도, 제 돈으로 버킨백을 구입한 친구에게도 가져본 적 없는 부러움을, 이 사회의 밑바닥을 벅벅 기고 있으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것이 제대로 취직도 하지 않고 연금도 건강보험료도 내지 않은 채 마냥 부초처럼 흐늘흐늘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는 리미코에게 말이다.

 

이성간의 사랑 이야기만 있을 줄 알았던 내 예상을 훅, 깨고 들어와서 잊지 못할 단편으로 남은 <기생하는 여동생>. 동생이 있긴 해도, 리미코 같은 동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가야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 가야노의 시점이 여러모로 공감이 갔다.

 

가야노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야노가 말하는 리미코 이야기는 비단 리미코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미코의 이야기 속에 가야노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그 누군가와 함께 한 나 자신을 떠올리는 일인지도 모르니까.

 

 

* 밑줄 친 구절

 

하지만 젊은 애들이 북적거리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햄버거 정식을 먹고 있는 사이에, 가야노는 뭔가 자신의 인생이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아무 보람도 없는 듯한 허망함을 느꼈다.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햄버거가 예상 밖으로 맛있었기 때문이다. 가야노가 항상 먹어온, 두부 집 콩비지에 닭고기 다짐육을 넣어 직접 만들었던 수제 햄버거보다 훨씬, 단연, 압도적으로.

한 입, 또 한 입, 햄버거를 베어 먹을 때마다 허망함은 점점 더해갔다. 누군가 정해놓은 룰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나머지, 뭔가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괌보다 하와이 쪽이 레벨이 높다니, 그건 대체 어느 누가 정했는가. 페키니즈보다 미니어처 닥스훈트 쪽이, 프랜차이즈 라면집보다 고집불통 영감님이 근근이 꾸려나가는 수제 라면집이 더 고급이라고 대체 어느 누가 정했단 말인가. (p.182)

 

하지만 나는 항상 너한테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보다 엄청 불성실하고 마구잡이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네가 훨씬 더 풍성하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듯한, 그런 마음이 항상 든다고.”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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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아니었으나 문단의 별이었고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이자 줄리언 반스의 아내였던 팻 캐바나. 20081020, 거리에서 쓰러진 후 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그 후 37일 만에 사망했다. 반스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며 침묵했다. 다만, 작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여 맨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함께 묶은 <그림자를 통해>를 펴냈다. 그리고 5년 만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그가 자신의 아내에 관해 쓴 유일무이한 회고록이자 개인적인 내면을 열어 보인 에세이다. 또한 동시에 이 작품은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담은 소설이자 19세기 기구 개척자들의 모험담을 담은 짧은 역사서이기도 하다.

 

라는게, 이 에세이의 대략적인 소개인데 나는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한 단어 사별(死別)로 요약했다. 그러고 나니 떠오르는 작품이 있었다. 일본 만화 중에 좋아라 해서 전권을 소장 중인 <후르츠 바스켓>. 4년 전에 처음 접한 내용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16권에서 주인공의 어머니 쿄코의 과거가 펼쳐지는데, 나는 이 쿄코라는 인물을 통해서 간접적이었지만 사별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쿄코의 남편이자 주인공 토오루의 아버지인 혼다 카츠야는 감기가 악화되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뜬다. 카츠야의 장례식을 치르고, 유품을 정리한 쿄코는 생각한다. ‘어째서 날이 밝는 거지? 어째서 저 사람들은 즐겁게 웃는 거지? 어째서 TV는 내일 일기예보를 하는 거지? 어째서? 카츠야가 죽은 날 세계도 함께 멸망한 거 아니었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쿄코의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그랬는지, 나는 줄리언 반스가 1인칭으로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3깊이의 상실을 가장 몰입해서 읽었다. 19세기 기구 개척자들의 모험담을 담은 짧은 역사서를 지나, 비로소 자신과 아내 이야기를 시작하는 반스.

 

흥미로웠던 부분은 오르페우스에 대한 반스의 생각 변화였다. 그가 본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는 다르게, 오르페우스가 방심해서 뒤돌아 본 것이 아니라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를 설득해 뒤를 돌아 자신을 보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 속에서 반스는 오르페우스를 비판한다. 제정신 가진 남자라면 그 누구도, 어떤 결과가 올지 알면서도 뒤돌아 에우리디케를 보지 않았을 거라며. 반스는 이때까지 만해도 오르페우스를 과소평가 했던 것이다. 이 오페라에 대해 사별의 고뇌에 시달리는 사람을 목표로 삼는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오페라라고 생각하며. 그러면서 덧붙인다. 물론 오르페우스는 간청하는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돌아볼 것이라고. 어찌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냐고. 왜냐하면 제정신 가진 어떤 인간도그럴 리가 없겠지만, 정작 오르페우스 자신은 사랑과 비탄과 희망 때문에 정신이 나간 상태라며 오르페우스를 이해한다.

 

한번 흘긋 보기만 해도 세상을 잃는다고? 물론이다. 세상이란 그렇게, 바로 그와 같은 환경하에 잃어버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등 뒤에서 에우리디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느 누가 서약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p.153)

 

반스 역시 등 뒤에서 에우리디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서약을 어기고 뒤를 돌아봤을 테지만,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반스는 거래에 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김없이 날은 밝고 누군가는 즐겁게 웃으며 TV는 내일 일기예보를 하니까. 우리는 상상의 지하세계로 내려갈 수 없는 현대인이니까 말이다.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저 우주가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라고. 헛된 희망과 무의미한 방향전환으로 길을 잃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말했다는 반스는, 오르페우스를 이해하지만 오르페우스가 될 수 없는 강한 남편이었던 반스. 그런 그의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통은 당신이 아직 잊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고통은 기억에 풍미를 더해준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이다. (p.187)

 

반스 역시 쿄쿄처럼쿄쿄가 비록 만화 속 인물이라 할지라도배우자가 부재하는 세상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일절 관심을 끄다시피 했던 적이 있었고, 3년이 넘도록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대본에 따라 아내의 꿈을 꾼 반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것처럼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래서 고통은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지난 5년간 그 어떤 이 못지않게 경험한 반스였으니까 말이다.

 

사랑의 증거인 고통을 묻어두고, 쿄코는 쿄코대로 반스는 반스대로 내일을 맞았다. 반스의 말마따나 우리 쪽에서 먼저 구름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며, 우리에겐 구름을 흩어지게 할 힘도 없으니까. 그 모든 건 어디선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산들바람이 갑자기 불면서 일어난 일일 뿐이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p.195)

 

슬픔은 영원하겠지만, 그를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역시 영원할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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