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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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애정해 마지않는 박연선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있다니. 박연선 작가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잘 쓰는작가 라고 책 날개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정말 그렇다.

감수성 충만하던 고딩시절에 챙겨 본 연애시대는 내게 인생드라마가 되었는데, 여전히 멋있던 감우성과 인생 연기하던 손예진이 예쁘기도 했지만 나는 대본이 참 좋았다. 특히 마지막회 내레이션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영업하고 있다. 원작소설이 있다지만, 나는 박연선 작가님의 연애시대여서 연애시대가 좋았다.

그리고 5년 뒤, 작가님은 KBS드라마스폐셜 연작 시리즈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연작을 선보이시는데 바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되시겠다. 작가님이 만든 화크의 세계를 들여다본 드라마 팬들은 너도나도 화크 폐인이 되었다. 되지 않고는 못 배길 드라마였다.

 

감성 가득했던 연애시대와 스산함이 가득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드라마의 분위기가 워낙 다른 탓에, 전자와 후자 중 한 드라마를 너무도 좋아하는 팬으로서는 작가님의 다양함이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처음엔 낯설었지만, 화크 이후 1년 뒤 찾아온 난폭한 로맨스를 챙겨 보면서 납득했다. 그저 발랄할 것만 같았던 로맨틱 코미디인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미스터리를 녹여내시는 걸 보고, 아 이게 작가님만의 매력이구나 했다. 이거면 이거, 저거면 저거만 잘 쓰시는 줄 알았는데 합쳐서 써도 이렇게 재밌다니. 드라마는 애석하게도 해품달이라는 편성과 맞서야 했고, 그래서 나만 난로의 매력을 알고 넘어가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말이다. (드라마 덕후가 미끼를 물어버린 탓에...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늘어놓는다. 박연선 작가님의 캐릭터 구축, 특히 여주인공의 캐릭터 구축이 좋아서인지 나는 연애시대를 통해 손예진 배우의 매력을 재발견했고, 난폭한 로맨스를 통해 이시영 배우의 매력을 재발견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진정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과시하던 어느 날 스토커 같은 편집자에게 잘못 걸려 소설 작가의 삶도 살게 된 박연선 작가님은 올 여름, 첫 장편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로 소설 작가로 데뷔했다. 앞서 길게 이야기한 것처럼 작가님의 팔색조 같은 매력이 한데 녹아있는 소설인데, 소설의 시작은 이러하다.

 

해가 똥꾸녕을 쳐들 때까지 자빠졌구먼.”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아직 9시도 안 됐고, 12시쯤 이런 말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다는 삼수생 강무순. 그런 그녀를 깨우는 할머니 홍간난 여사의 말이다.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시골에 내려왔던 무순은, 혼자 남은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며 5만원 짜리 10장과 함께 두왕리에 남겨진다. 충청남도 운산군 산내면 두왕리로 말하자면, 88올림픽 때도 전화가 개통되지 않았다는 한반도의 오지다. 케이블은커녕 공중파도 바람의 방향 따라 전파가 잡혔다 끊겼다 하는 문명의 사각지대, 버스와 도보의 대장정을 거쳐야만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 그것도 스타벅스 원두커피가 아니라 미스 김이 타주는 설탕 셋, 프림 둘, 읍내 다방 커피다. 스마트폰은 시계 이상의 의미가 없고, 컴퓨터? 인터넷? 게임? 영화관? 그만, 제발 그만! 하며 부정하게 만드는 곳이라고, 무순은 설명한다.

 

그런 두왕리에서 무순은 하루는 할머니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공이를 끌고 산책도 나가고, 하루는 넝쿨손이 대나무를 휘감는 현장을 포착하겠다며 넝쿨강낭콩 옆에 앉아있기도 하고, 하루는 봉숭아물을 들이겠다며 이파리를 따다 집 없는 달팽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낮시간도 느리지만 밤시간은 정말 느려터져서, 동짓달 기나긴 밤이 얼마나 지겨웠으면 뚝 떼어내고 싶었을까? 하며 황진이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황진이는 뚝 떼어놓았다가 임 오는 밤에 요긴하게 쓰기라도 한다며 이내 체념한다. 자신의 시간을 필요한 사람한테 줘버렸으면 좋겠다면서.

그러다 라디오는 24시간 방송한다는 게 생각났고, 사랑방에서 라디오를 본 것 같아서 찾는데... 망했다. 마사지 기계다. 그렇지만 수확이 있었다. 사랑방 윗목에 앉은뱅이책상에서 책을 발견한 것. 여섯 살 강무순이 두왕리에 내려와 읽었던 책들이다. 그 중 한 권에서 무순은 다임개술이라는 암호를 발견하고, 보물지도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4차원 백수 무순은, 그렇게 두왕리의 상자를 연다.

 

읽는 내가 맥이 풀릴 정도로 빠르게, 보물상자를 찾긴 찾았는데 홍간난 여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건 바로, 15년 전 두왕리에서 한날한시에 없어진 딸내미들 네 명에 관한 이야기다. 보물상자에서 나온 어떤 물건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하는 무순. 추적의 길에서 만난 종갓집 꽃돌이 그리고 홍간난 여사.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 소설의 꿀잼이 시작되는데... 하나라도 흘렸다간 이 소설이 재미가 덜할 것 같아 아쉽지만 여기까지 쓴다. 백문이 불여일이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읽기를 권한다. 박연선 작가님의 팬이면 두말할 필요 없고, 팬이 아닌 사람에게도 이 책은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거라 생각한다. 무더운 여름, 읽기 딱 좋은 미스터리 소설이면서 동시에 유쾌한 삼수생 무순을 통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에 유머를 잊지 않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장마다 부제가 달렸는데, 드라마 한 편 한 편을 챙겨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후반부에 나와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인용할 수는 없지만 작가님 특유의 대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치지 못할 구절들도 나온다. (책을 읽을 사람에게 힌트를 주자면, 359쪽이다.)

 

드라마 뺨치는 소설인만큼 캐릭터 한 명 한 명을 가상 캐스팅해가며 읽기에 좋은 소설인데, 뒤돌아보니 소설을 읽기 바빠 그럴 새가 없었다. 과언이 아니고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이경희 작가님은 추천사에서 밥 먹을 시간은 물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주지 않고 새벽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다고 썼는데, 맞는 말이었다. 끝까지 뒷심을 잃지 않아서 더 눈을 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23쪽에서 무순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시간은 한없이 더디간다. 그 얘기는 뭐든 하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인데…….

 

이 말을 패러디해, 사심 가득했던 이 리뷰를 갈무리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 박연선 작가님은 소설 역시 재미있게 쓰신다는 사실을. 이 얘기는 얼른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는 말인데…….

 

 

p.s. 어느 날 박연선 작가님의 스토커가 되어, 작가님이 소설 작가의 삶도 살게 만든 편집자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편집자님의 집념에 박수를! 박연선 작가님의 소설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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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에서

제목을 빌려 시를 쓰려다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다.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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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序

 

나무는 서 있는데 나무의 그림자가 떨고 있었다

예감과 혼란 속에서 그랬다

 

 

 

2012년 겨울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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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카페. 책을 읽겠다고 온 것인가, 노트북을 하겠다고 온 것인가.

왼쪽 필통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커피 홀더까지, 와남보하노분민빨.

알록달록하길래 일지를 쓰다말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 빌려온 '중쇄를 찍자!' 세 권 색깔이 하나같이 예쁘다.

책의 재미는 말할 것도 없고😚💕 얼른 읽고 백만년만에 일드 챙겨봐야지!


독서마라톤은 7월 한 달 애써서 읽은 덕분에, 이제 겨우 16,414m. 달성률 38.9%를 기록했다.

이 기세를 몰아서 남은 7월도 독서마라톤에 매진하기로 했다. 작년까진 상상도 못했을, 책 읽는 나날의 연속.

이게 다 9위를 기록중인 삼성라이온즈 덕분이다.

나의 삼성은 망하더니, 야구따위 눈길도 주지 말고 책을 읽으라 한다. 오늘도 졌다.

최형우만이 타율 순위의 꼭대기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아아, 도대체가 중간은 없는 기록의 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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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간 정갈한 글씨만 보여줘서 그렇지, 강연을 들을때 내 글씨는 흘림체의 끝이다.

김훈-김연수 작가님 북토크때 두 분을 번갈아 봄과 동시에 진행하는 문태준 작가님도 보느라

눈은 무대에 고정하고 날려 쓴, 나조차도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 메모다.

날려쓰기 좋은 트라디오 펜이겠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게 썼다. 하하.

2. 지난 주 비밀독서단 작가특집 은희경 작가님 편을 재밌게 보고,

예고를 보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예고 영상 속 김연수 작가님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 기세 그대로 '소설가의 일'을 다시 읽고 있다. 책에 직접 메모했던지라

 책을 읽을 때마다 본의 아니게 메모를 다시 읽는다.

음성녹음도 하고, 사진도 찍는 와중에 쓴 메모라 단편적이지만, 휘갈긴 글씨 덕분에 현장감이 느껴져서 재밌다.

3. 정갈한 글씨를 보여줄 때마다, 멋진 글씨가 아니어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메모를 공개하자니 정갈한 글씨는 적어도 비비크림을 바른 얼굴을 보여준 셈이었구나 싶다.

이건 정말 민낯이 아닌가...!


4. 하루 하루 새책을 읽어도 모자랄 판에, 이 책을 지난 주 내내 붙들고 다녔다.

앞머리를 자르겠다고 들어온 미용실에서 30분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도 이 책은 내 곁에 있다.

오늘은 이 구절이 마음에 든다.


5. 공책과 연필만 있다면, 소설가는 어디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

작업실 책상에 앉아서 쓸 수도 있고 동네 카페의 창가 자리나 방바닥에 엎드려서 쓸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산에서 서울로 나가는 지하철에 앉아서 이런저런 글들을 자주 쓴다.

거기서는 어쩐지 좋은 생각들이 잘 떠오른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라면 도박장 옆에서 글을 쓰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겠고,

포크너라면 사창가가 최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요는 소설이란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것. (p 241)


6. 어쨌든 요는 좋은 책은 읽어도 읽어도 좋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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