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재앙은 결국 개인의 근저에 자리한 나약한 감상이 아닐까 싶네. 실패가 인간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인생을 비난할 순 없다네. 한 인간에게서 제멋대로 사회적 지위를 빼앗고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기술들을 보면 오히려 인생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 (p.12)
권력을 탐하는 데 훌륭한 인생관이 필요한 건 아니라네. 권력에 오르는 데에도 훌륭한 인생관이 필요하진 않아. 사실 고상한 인생관은 껄끄러운 장애가 될 수 있을 거야. 반면 고상한 인생관을 갖지 않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 될 수 있다네. (p.24)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에 본인이 전혀 모르던 중요한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뒤늦게 아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이 정작 본인은 거의 알지 못하는 이야기니까. (p.32)
머리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리고 이제는 앙상해진 그의 몸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체격이 그가 걸어온 모든 일관된 삶의 구현체, 다시 말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 외에는 모든 것에 평생 무관심한 채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구나... 선생님은 본질주의자이고, 그의 성격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심지어 진공청소기를 팔 때도 어떻게든 자신의 존엄을 지쳤겠구나... 머리 선생님(내가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할 필요가 없었으며, 단지 교사와 학생 간의 계약만 존재했던 사람)은 보다 관념적이고 분별 있고 현실적인 형상의 아이라(내가 사랑했던 사람), 실제적이고 분명하고 명확한 사회적 목표를 가진 아이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적으로 과장된 야망이 없고 세상의 모든 것과 열정적이고 과열된 관계를 맺지 않은 아이라, 모든 것에 충동과 논쟁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지 않은 아이라. (p.34~35)
임차인, 세입자라면 누구나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이 모든 허드렛일을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했다. (중략)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돈을 벌고, 음식을 준비하고, 규칙을 세우는 일 외에 이처럼 험하고 힘든 뱃일같은 활동(중략)도 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도서관까찌 2마일을 왔다갔다하는 동안 내 옆에서 시계장치처럼 맞물려 똑딱똑딱 돌아갔다. 똑딱 똑딱 똑딱, 그것은 그 동네가 살아가는 일상의 메트로놈이었고, 미국 도시의 오래된 존재의 사슬이었다. (p.35~36)
나는 그에게선 시간이 녹아버렸다는 느낌, 시간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간다는 느낌, 선생님이 더는 시간 속에 살지 않고 그 자신의 외피 안에서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양심적인 교사, 시민, 가장으로 살아온 선생님의 의욕적이고 성실하고 외향적이었던 삶은 열정이 잦아든 고요함에 도달하기 위한 오랜 투쟁인 듯했다. 나이가 들어 노쇠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경멸해 마땅한 자들을 가차 없이 경멸하는 것 역시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중략) 선생님에겐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야 남는 것, 스토아철학의 단련된 슬픔이 있었다. 서늘함이 있었다. 삶에서 모든 것은 오랫동안 뜨겁고 강렬하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열기가 새어나가 서늘해진 뒤 재로 변한다. 책과 겨루는 법을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던 사람이 돌아와 지금은 내 앞에서 노년과 겨루는 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건 놀랍고 숭고한 기술이었다. 그 어떤 것도 강인한 인생을 살아낸 것보다 노년에 대해 더 잘 가르쳐줄 수 없기에. (p.137-138)
공산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라는 완벽하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그는 자신의 인간성을 내팽개치지 못했으며, 투쟁과 하나의 목적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에게선 인간적인 면모가 끊임없이 솟아 나왔다고. 당에 충성했다면 좋았겠지만, 자신의 본모습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과 별개의 문제며, 그는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고, 자신의 모순까지 끌어안은 채 철저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애타게 원하는 순간부터 좌절은 피할 수 없게 된다네. 반드시 무릎을 꿇게 되지. (p.148)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고, 이제 내가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나를 더 필요로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또 내가 실제로 아버지를 두렵게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짓뭉갤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뭐랄까, 이런 깨달음은 평상시 효의 관념과 너무 어긋나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다가온다. 아버지는 발 치료사로, 가족의 부양자이자 보호자로 모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이제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아버지의 그늘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p.185~186)
이브는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법을 전혀 몰랐어. 말다툼이나 논쟁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지.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매일같이 반대하고 저항해야 해. 아이라 같을 필요는 없지만, 하루하루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야 하네. 그런데 이브는 모든 갈등을 공격으로 인지했기 때문에 공습경보가 울리면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었어. 일 초 동안 악의와 분노를 분출했다가 금방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네. 겉으로는 우아하고 상냥했지만, 모든 것에 혼란스러워했어. 인생에 치이고, 딸에게 치이고, 자기 자신에게 치이고, 자신의 불안정함과 시시각각 찾아오는 모든 불안에 치여 망가진 여자였어. 한데 그 여자한테 아이라가 반한 거야. (p.272)
하지만 내 복잡한 면이 그를 조롱했다면, 그는 단순한 면으로 나를 조롱했다. 나는 모든 것을 모험으로 받아들이면서 항상 변화하기를 바랐던 반면, 브라우니는 그저 삶의 무게를 의식하며 살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할 수 있게 하는 속박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의 갈망은 징크타운에서 싹트고 무르익은 게 전부였다. 그는 징크타운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싶어했다. 그는 삶이 똑같이 반복되길 원했고, 나는 그 사슬을 깨뜨리고 싶었다. (p.348)
성년기의 새 부모는 어떻게 선택될까? 일련의 사건과 마음의 결정을 통해서다. 그들은 어떻게 당신과 연결되고 당신은 어떻게 그들과 연결될까?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유전자와 무관한 이 혈통은 대체 무엇일까? 내 경우에 그들은 나 스스로가 도제가 되어 배우기를 자청한 사람, 페인과 패스트와 코윈부터 머리 선생님과 아이라와 그 밖의 사람들까지, 나를 교육시키고 키워준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뛰어나고 맞붙어 겨뤄보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유력한 사상을 몸소 실천하거나 지지하고, 내게 처음으로 이 세상과 세상의 주장을 두루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유산을 남기고 사라져야만 하는, 그렇게 해서 내가 완전한 고아 신세, 즉 완전한 성년으로 진입하도록 길을 터준 존재였다. 그렇게 성년이 되고 나면 나는 이 세상에 완전히 온자 남게 되는 것이다. (p.364)
특수한 것의 본질은 특수하다는 거고, 특수성의 본질은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거다. 고통을 일반화하는 것, 그게 공산주의고, 고통을 특수화하는 것, 그게 문학이야. 그 대립에서 적대성이 나와. 모든 것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세계에서 특수한 것을 살려내는 행위, 바로 여기서 교전이 벌어지는 거야. (p.375)
대중이라는 기계는 일단 스위치를 켜면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기 전에는 멈추지 않거든. (p.510)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지는 건 현명하지 않아. 어느 나이에 이르면 그것도 질병처럼 사람을 못쓰게 만든다네. 자네 정말 병든 화초처럼 시들다 최후를 맞이할 심산인가? 고독이란 유토피아를 조심하게. 숲속 오두막, 분노와 슬픔을 차단하는 오아시스에 유토피아가 있다는 생각을 조심하기 바라네. 난공불락의 고독. 아이라의 인생은 그렇게 끝났지. 녀석이 숨을 거두기 오래 전에. (p.526)
"이보게, 이건 끝이 없다네. 내가 살아오면서 노력했듯 종교,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같은 명백한 망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도, 여전히 자신의 선량함이라는 신화는 족쇄처럼 남는다네. 그게 최후의 망상이지. 또 내가 도리스를 희생시키게 만든 망상이고. 그만하세. 모든 행동에는 손실이 따르는 법. 이게 그 체계의 엔트로피야" 선생님이 말했다. "어떤 체계인가요? 내가 물었다. "도덕체계 말일세" (p.529~530)
그랜트 부부가 성공하기 위해 휘둘렀던 독선의 쇠몽둥이가 없고,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독선의 거짓이 없으면, 매 순간마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몰라도 별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한다." (p.531)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잠시 후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하고 후회하며 운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마치 아직도 좋은 일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순진한 제자인 것처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당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아셔야 해요" 하지만 나 자신이 한 인간의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달갑지 않은 온갖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노인네라,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531~532)
"녀석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열렬히 바랐지만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네. 녀석은 자신의 인생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어, 네이선. 아이라는 평생 그걸 찾아 헤맸는데. 아연광산에서, 레코드 공장에서, 퍼지공장에서, 노동조합에서, 급진적인 정치에서..(중략) 하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의 삶을 찾지 못했어. 이브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한 게 아닐세.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갈망한 남자와 결혼한 거야. 그게 녀석을 분노에 빠뜨리고 혼란에 빠뜨리고 파멸로 이끌었지. 아이라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쌓아올릴 줄 몰랐어. 터무니없이 잘못된 노력만 기울였지. 하지만 사람의 오루는 항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안 그런가?" "이 모든 게 오류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게 이거 아닌가요? 삶 자체가 오류다. 여기에 세계의 본질이 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찾지 못한다. 그게 인생이다" 내가 말했다. (p.532~533)
우리의 청각은 얼마나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가! 단지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도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라. 귀가 있다는 것은 신과 같다는 뜻 아닌가! 어둠 속에 앉아 누군가의 말을 찬찬히 듣기만 해도 인간 존재의 가장 깊숙한 오류로 돌진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최소한 반쯤은 신과 같다는 뜻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