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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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느꼈다. 이 세상은 후안무치하고 탐욕스러운 족속, 허세 부리는 막돼먹은 인간들, 양심을 파는 자들, 눈과 심장이 굶주린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세계이다. 사실 이 세상에 어울리도록 창조된 인간, 그리하여 내장 조각이나 얻을 욕심에 푸줏간 밖에서 꼬리를 흔드는 걸신들린 개처럼 지상과 천상의 권력자 앞에서 아양 떨고 굽실거리는 인간들에게나 필요한 세상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생각에 나는 무섭고 피곤했다. 아니다. 역겨운 얼굴들이 득실대는 이 모든 혐오스러운 세상들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신이 졸부와 비슷해서, 자신이 모은 세상들을 내가 꼭 봐야 한다고 우기려나?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말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살을 겪어야만 한다면 내 정신과 감각이 매우 둔해지기를 나는 소망했다. 그러면 노력과 권태감 없이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130쪽

삶은 지속되는 과정에서, 인간 각자가 쓰고 있는 가면 뒤에 있는 것을 냉정하고 공정하게 드러낸다. 누구나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의 얼굴만 쓰고, 그러면 자연히 더러워지고 주름이 생긴다. 이런 이들은 절약하는 부류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물려주려는 소망에서 자신의 가면들을 보살핀다. 또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얼굴을 바꾼다. 하지만 그들 모두 늙음에 이르면 어느 날인가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마지막 가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곧 그것이 너덜너덜해지고, 그러면 그 마지막 가면 뒤에서 진짜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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