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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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소설'이 유독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문장부호를 충실히 지켜가면서, 따라가면서 읽으세요."
큰 따옴표 안의 글은 정말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느낌표가 있는 문장은 정말 감탄하거나 놀라듯이, 쉼표에서는 꼭 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책은,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43쪽

"시장님의 새 이름을 방송에서 어떻게 발음해야 합니까?"
"카로차입니다. 에이 네개는 묵음입니다"-56쪽

나의 부모님에게도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 시간을, 내가 늦출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이미 감당이 안 되는데, 그 시간이 왔을 때 내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겐 어떤 식으로든 많은 후회가 남겠지. 앞으로도 후회할 짓을 또, 많이 저지르겠지.

마지막 페이지들을 늦추고 싶다. 그것들이 항상 내 앞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114쪽)

나도 마지막 페이지들을 늦추고 싶다. 내게 최상의 부모들과 좀더 긴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114쪽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물론 이해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도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거리를 좁히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조금 더 다가가려고 해보고 조금 더 친근하게 굴려고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자꾸 돌이켜보게 된다. 혹시 상대는 원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걸 부수려고 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오히려 나를 밀어내고 싶지 않을까?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이 적당한 거리인지 모르겠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이 그가 만들어둔 그만의 공간인지를 모르겠다. 그 거리를 모르겠는 건, 내가 그 사람에게 가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그래서 내 눈이 가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알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는 내 공간을 지켜주려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이야말로 나를 진정 아낀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니 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렇겠지. 공간을 준다는 것, 그 공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듯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150쪽

물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짐작해주거나 알아주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특별한 거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짐작해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상대에게 내 입장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나를 잘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원망하는 것도 잘못된 일 아닌가.
문득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자신의 포크를 들고 앞은 이렇게 생겼지만 뒤는 다르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 앞만 보고 뒤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는 이유야" 나는 되물었다. "그렇지만 앞과 뒤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잖아. 보여주지도 않았으면서, 앞뒤가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거 아니야?"-158쪽

참 이상하다. 현재를 버리고 꿈을 좇는 영화를 볼 때 나는 분명히 속 시원하고 위로를 받았는데, 이 책에서처럼 가고 싶었던 곳에 가지 못하는 남자를 보는데도 위로를 받는다. 사실 이 책에서 나이 든 선생이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만 바보처럼 나는 이 책을 껴안고 싶어졌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단편이라니! 시니컬하게 진행되다가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따뜻해져버리다니! 그래, 지금 내 삶도 나쁜 삶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한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 내가 만든 삶이다. -220쪽

가까스로 한쪽 눈 수술이 끝났다. 나머지 한쪽 눈에 대한 수술을 시작하려고 했다. 나는 한쪽 눈만 보이는 채로 살아갈 수 있으니 이대로 그만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248쪽

사실 나는 그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단 한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다시 시간을 돌려도 나는 그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언제든 무슨 얘기를 해도 자연스러운 그 관계를 택했을 것이다. 밤늦게 전화해도 거리낌이 없는 사이, 그 관계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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