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처로워도지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 -64쪽
그런 말들은 짧게 뚝뚝 끊어지면서도 여자가 힘껏 살아가고 있다는 표시인 탓에 듣기 괴로울 정도였기 때문에, 그가 잊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멀어져 가는 지금의 시마무라에겐 여수를 돋우는 데 불과한 이미 멀어진 소리였다. -76쪽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으 무심히 꿰뚫어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110쪽
당신은 좋은 애야 어째서요? 어디가 좋아요? 좋은 애라고 그래요? 이상한 분이셔. 무슨 말 하는 거에요? 정신 차려요 하고 고마보는 시선을 돌리고 시마무라를 흔들며 뚝뚝 끊어 혼내듯 말하더니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혼자 웃음을 머금고 안되겠어요. 힘드니까 돌아가줘요. 이제 입을 옷이 없어요. 당신한테 올 때마다 새옷으로 갈아입고 싶지만 이젠 남은 게 없어요. 이건 친구에게 빌린 옷이에요. 나쁜 애죠? -126쪽
고마코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듯 오래도록 가만히 있었다. 한 여자의 삶의 느낌이 따스하게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왔다. -127쪽
떠날 수 없어서도, 헤어지기 싫어서도 아닌데, 빈번히 만나러 오는 고마코를 기다리는 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고마코가 간절히 다가오면 올수록 시마무라는 자신이 과연 살아있기나 한 건가 하는 가책이 깊어졌다. 이를테면 자신의 쓸쓸함을 지켜보며 그저 가만히 멈춰서 있는 것뿐이었다. 고마코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 시마무라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마코의 전부가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코에게는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134쪽
그토록 고생한 무명의 장인은 이미 죽은지 오래고, 아름다운 지지미만이 남았다. 여름에 서늘한 감촉을 주는, 시마무라 같은 이들의 사치스런 옷으로 변했다.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 시마무라에게는 문득 신기하게 여겨졌다. 온 마음을 바친 사랑의 흔적은 그 어느 때고 미지의 장소에서 사람을 감동시키고야 마는 것일까?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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