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은사님께서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라는 책을 출간하셨다. 졸업하고서 세번째 듣는 출간 소식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라는 제목을 듣고 참 선생님답구나, 생각을 했다. 저 간결하고 딱딱한 제목만 봐도 그간 하고 싶으셨을 이야기들이, 심지어 얼마전 공동 출간하신 한국 기독교의 역사 3권에 미처 담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내게 흘러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선생님은 내가 제출한 서평 읽기를 즐거워하셨었는데, 그건 내가 글을 잘 써서라기보다는, 다른 친구들이랑은 좀 다르게 솔직하고 웃기게 (-_-) 썼기 때문일 거다. 그 속에서 내가 엿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내가 쓴 서평들은 지금 내가 봐도 좀 귀엽다. 하하하. -_-) 마찬가지로 나도 선생님이 낸 책의 서문 읽기를 좋아한다. 단정하게 고른 단어와 문장들 하나하나에서 역시나 선생님의 고민과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선생님 말처럼, 의미 있는 학술지들을 출판사가 손해를 무릅쓰고 내주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저자들이 그 출판사에 보내는 감사와 다른 의미의 감사를 보내야 할 것만 같다. 어쨌든 그런 고마운 마음들이 있기에, 우리도 이런 저서들을 만나볼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 더 똑똑해지고, 더 많이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해서, 좋은 것들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을 기르고, 기꺼이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또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이 기회에 나도 선생님과는 다른 이유로 <푸른 역사>에 감사를.

학교에 남아 TA를 하고 있는 후배가, 선생님 방에 여전히 내 사진이 붙어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졸업한지 6년, 여전히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그 곳에서, 그 사진을 찍었던 계절도 딱 이 계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던 가을날의 깊숙한 그 어딘가에서 활짝 웃으며 찍었던 그 사진이 나는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나는 올해 휴가도 못내는데, 진작 좀 다녀올걸 하는 후회와 함께, 더 늦기 전에 한 번 다녀오겠다, 라는 실현 가능성 없는 다짐도 불끈. 해본다.



책을 내면서      

학교의 요청으로 지난 해 연구실적을 정부통합전산망에 입력하면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10년 동안 국내외 전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 20편이 훨씬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 년에 두 편 이상을 쓴 셈이니 편수로만 본다면 공부를 게을리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 논문 하나를 제대로 쓰려면 일 년에 한 편 내기도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그 글들이 얼마나 잘 된 것인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전 대통령의 비상한 죽음이 내 삶의 무게가 너무 가볍고 내가 하며 사는 일이 너무 사소하다고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학자의 무게를 논문 편수로 재는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써온 모습이 처량했기 때문인지, 마음이 불편했다. 

그 동안 발표한 논문 목록을 훑어보면서, 내 관심이 대체로 기독교의 여러 현상을 “종교외적”인 요인, 특히 정치나 이데올로기와 연관시켜 조명하는 데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번에 책으로 묶어서 내는 글들도 모두 그런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신학교를 다녔고 한 때 구약학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왜 기독교의 역사적 현상들을 “종교적”인 차원보다는 종교외적 맥락에서 바라보게 되었는지, 먼저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기독교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 현상 속에 종교적 차원과 종교외적 차원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종교를 신화나 의례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종교학 이론에 단 한 번도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보다는 마르크스(Karl Marx)나 트뢸치(Ernst Troeltsch)가 종교 현상의 본질을 훨씬 깊게 통찰했다고 믿는다. 종교의 진면목은 신화나 의례, 혹은 상징을 분석하기보다는 정치-경제-사회와 만나는 지점을 관찰하면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순결하게 고유한 종교의 영역이 있다고 믿지 않게 되었다. 기독교만 하더라도, 공교회의 역사는 곧 정치화 한 종교 혹은 종교화 한 정치의 역사였다. 개항기에 서구문명의 전도사로 들어와서 해방 후 이데올로기 전쟁의 일선에 서게 된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가장 종교적으로 보이는 현상도 정치-사회적 차원을 가지며, 종교적 신념과 이데올로기적 신념은 놀라우리만치 친밀도가 높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런 점을 璿擅막졍?시도였다. (응? 아니 왜 이런 오타가 ㄷㄷ) 

여기 실린 10편의 글 가운데 제2부에 있는 기독교와 사회주의 관련 글 두 편은  각각 남북 학술대회와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던 글이다. 그 둘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한국기독교의 역사》, 《종교문화비평》, 《경제와 사회》 등에 게재했던 논문이다. 책으로 묶기 위해 다시 읽으면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내용은 둘째 치고 문장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논문의 내용에 앞서 문장에 집착하는 버릇은 아마도 학부시절 문학을 전공한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소설이건 논문이건 글로 된 것의 제일가는 미덕은 좋은 문장에 있다고 믿는다. 이전에 여러 차례 읽고 고친 글인데도 다시 읽어보면 적절하지 않은 단어, 매끄럽지 않은 문맥, 분명하지 않은 표현, 그리고 심지어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여전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손보면서, 제 나라 말로 글 한 편 쓰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우며, 나는 언제가 되어야 글다운 글 한 편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과 내 생각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득하다. 

종교와 정치의 경계가 모호하다면, 역사와 문학의 관계는 더 말 할 필요도 없다. 헤로도토스(Herodotus)부터 기번(Edward Gibbon)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역사학은 본질적으로 문학적 추구였다. 랑케(Leopold von Ranke)이후 역사를 “과학”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동안 경주되었지만 문학과 결별한 역사는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역사는 문학과 동일하지도 않다. 텍스트 바깥의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최근 문학이론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려 결국 역사적 탐구를 무의미하게 만들 기세로 역사학의 정체성을 위협했다. 20세기 후반의 세계사적 격변은 보수적인 학문에 속하는 역사학마저 세포분열 시켰다. 마르크스주의자인 톰슨(E. P. Thompson), 아날의 브로델(Fernand Braudel), 빌레펠트의 벨러(Hans-Ulrich Wehler) 사이의 거리는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역사가라는 범주에 묶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어떤 것도 역사의 일부로 다루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역사 서술도 선입관, 소속감, 공명심 같은 무형의 영향력, 돈과 권력이라는 유형의 압력,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참된 역사는 결코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모름지기 모든 학문의 본질은 일반화에 있다고 본다. 독특하고 일회적인 것에 대한 지식이 무슨 큰 가치가 있겠는가? 법칙을 좋아하는 소위 과학이라는 것과 친밀도가 높은 학문일수록 일반화 하려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지나친 일반화는 좋지 않은 학문으로 가는 첩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화라는 것은 학자에게 마치 밥과 같아서,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너무 많이 먹으면 병들게 되는 어떤 것이다. 나는 논문을 쓸 때마다 일반화 시키려는 직업의식과 지나친 일반화는 피해야 한다는 양식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곤 한다. 

여기 소개된 10편의 논문은 사료가 허락하는 한계 속에서 내 이성과 상상이 구축한 세계다. 그 글들이 다루는 주제들의 객관적 실체가 바로 그 글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허구는 아니며, 각 주제에 관한 개연성 있는 해석을 보여주고, 같이 모여서 한국 개신교 역사의 잘 보이지 않는 단면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10편 모두 복잡한 현상을 일반화시킨 것이겠지만, 기왕이면 지나치지 않고 통찰력을 제공하는 일반화이기를 바란다. 

이 책을 낼 욕심이 났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최기영 선생이었다. 그에게 출판사 소개를 부탁한 것은 그가 그쪽 사람들을 많이 알기도 하지만, 보기보다 마음 약한 분이라 후배의 소망을 어떻게 해서라도 들어주려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기 위해 마치 중매쟁이와 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그에게 큰 마음의 빚을 졌다. 아울러, 그의 감언이설에 속아 이름값 없는 시골 서생의 책을 출간해준 푸른역사의 박혜숙 사장과 신통찮은 원고를 좋은 책으로 만드느라 수고한 출판사의 여러분들께도 미안하고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 실린 논문을 쓰도록 혹은 부탁하고, 혹은 강권하고, 혹은 돈으로 유혹한 많은 분들이 생각난다. 그분들께도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감사를 드린다. 내가 공부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아내다. 논문 한 편 쓸 때마다 부실한 몸이 더 수척해지는 모습을 매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아내가 반가워할지 모르지만, 이것밖에 드릴 것이 없다.  

공들여 쓴 학자의 책이 팔리지 않아 출판사가 의무감으로 책을 내주어야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류가 책이라는 것을 발명한 이래로 그렇지 않았던 시대가 과연 있었는지 모르겠다. 대중이 외면하는 연구서를 뜻있는 출판사가 손해를 감수하고 출간해주는 것은 대중의 구미에 맞고 유행을 따르는 글보다 좋은 학술서가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훨씬 더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책 속의 글 한 편이라도 꼼꼼히 읽어주는 독자라면 시류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의 무게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이 책 속에서 한국 개신교에 대해 흔히 얻기 어려운 관점과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학자로서 그것 이상 가는 보람이 어디 있을까. 

좋은 논문을 쓴다는 것이 갈수록 힘에 부치고 어렵다. 쓰면 쓸수록 글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한계만 깨닫게 되니, 학문의 참된 의미는 자기수련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술적인 글과 대중적인 글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아마도 거기에 있지 않은가 싶다. 고인이 된 박재삼 시인이 오래 전에 낸 시집 후기에, “시집을 낼 때마다 새로운 각오가 생긴다고 하건만, 나의 경우는 그것도 빈약하고, 또 다른 길로 떠날 차비를 하는 것이 고작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꼭 그 꼴이다. 

 

2009년 여름, 한반도의 남동쪽 끝자락에서 류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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