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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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이 땅의 농촌과 농촌 교회를 걱정한다면 좀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신학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올바른 신학을 한다면 농학, 인간학, 자연학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는 추상적이며 관념에 머문 신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입으로 설교하는 목회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 -36쪽

내가 한국의 목사님들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목사님도 사회의 직업을 하나씩 가지라는 것이다. 미장이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고 판사, 검사, 대학교수, 회사원, 공장노동자, 거리의 청소부, 운전기사, 비행기조종사, 승무원, 국민학교 선생님, 고기잡는 어부, 사과밭을 가꾸는 농사꾼,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이면 자신의 능력대로 일하는 목사님이 되라는 것이다. 함께 일하지 않고는 일주일 계속 책상머리에 앉아 설교준비를 해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설교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41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대학입시에 수석합격했다고 감사하고, 복권에 당첨됐다고 감사하고, 취직되었다고, 병고쳤다고, 외국산 전기밥통을 선물로 받았다고 감사하고, 승진되었다고 감사하고, 시집 잘 갔다고 감사하고, 이런 감사는 모두가 이기적인 감사다.
내가 금메달을 따면 못 따는 사람이 있고, 내가 수석을 하면 꼴찌한 사람이 있고, 내가 당첨되면 떨어진 사람이 있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못되는 것은 생각하면 어찌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런 감사를 하느님은 절대 기뻐하지도, 바라지도 않으신다.
왜 나만이 앞서야 되는지 좀 생각해보기 바란다. -51쪽

하느님과는 상관 없는 기도,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오직 나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한 기도가 어찌 진정한 기도인가. 그런 기도를 예수께서 언제 가르쳐 주었던가.
주님의 기도문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하나만을 위한 기도는 없다. 한결같이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다.
나만을 위한 기도는 곧 나만을 위한 삶이 있을 뿐이다. 주기도문은 앉아서 입으로 외는 기도가 아니다. 행동하는 기도, 살아있는 기도다.
하느님의 나라가 와서 임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참다운 삶의 기도다. 하느님의 나라에 특혜라는 건 없다.
햇빛이 정부 고관이나 부잣집에만 비추는 것이 아니듯이, 비가 골라가면서 내리지 않듯이,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가 고른 세상이다. 그 나라를 이루어지게 하려고 예수는 이 땅에 와서 고통을 겪는 삼ㄹ을 살고 또 그렇게 죽은 것이다.
천국은 우리가 쳐다보는 저 먼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천국은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만든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왜 우리는 이 땅을 업수이 여기는가. -55쪽

평화를 만드는 길은 어느 한 두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도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 다만 예수는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만 가르쳐주고 죽었을 뿐이다. 이 방법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바로 성인들이라고 나는 일컫고 싶다. -62쪽

말의 낭비나 돈의 낭비는 모두가 거짓을 감추려는 인간의 권위와 허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75쪽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할까. 과연 성경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웃을 살리기는 커녕 애걸하며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넘어진 사람을 짓밟고 타넘고 무작정 달아나야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악인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조차 가소롭기 그지없다. -126쪽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직설적인 말이 성경책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침노란 말은 총칼을 든 군대가 쳐들어가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장에 뛰어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희생하는 정신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런 행동으로 하느님의 부르심대로 평생을 역경 속에 살았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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