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 스스로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이런 내게 자신있게 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 역시 벗어버리고 싶은 나의 모습들이 많았다. 한 때는 스스로가 밝음, 혹은 긍정성이라는 이미지로 정의되는 것이 컴플렉스이기까지 했는데, 이건 나의 이런 모습들이 세상을 향한 기만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으며, 더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자면, 그렇지 않은 모습이 더 멋져보이기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넌 밝고 긍정적이야,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너는 나를 몰라, 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를 모르고 있었던 건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나는 내 위에 자꾸만 스스로를 덧씌우려는 노력들을 기울이는데, 가끔은 나 아닌 것들로 자꾸만 나를 설명하려는 스스로를 보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그런 것들이 익숙해졌다면 그 모습을 나는 나 자신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라깡의 말처럼 나라는 주체의 본연은 나의 본질이 아닌 수없이 많은 대타자들이 형성하는 것이라면, 이제 나는 새로이 형성된 나의 모습들이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아니면 나는 여전히 세상을 기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여전히 그 답을 모르겠다. 그러면 난 적어도 멋져지기라도 했는가. 그 역시 잘 모르겠다. 나를 좋아해주었던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밝음, 혹은 긍정성의 빛을 발견하고, 좋아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그러한 타인의 시선 안에 머무른 채 내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하는건가. 아마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모습은 나인 동시에, 이미 내가 아니니까.

연극 속 리타는, 자신의 인생을 살고자 문학 수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을 살기 위해 그녀가 택한 방법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식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좀 더 나은 내가 아니라, 좀 더 나아보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스페인산 싸구려 와인을 사가서 망신당하지 않고 싶은 마음, 근사해 보이는 사람들과 멋진 대화들을 나누면서 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타인의 말을 자신의 것인양 치환해 이야기하며, 자기 자신조차 어느 순간 그것을 자신이라 믿어버리는 것.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마음보다는 취향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픈 욕구가 강해졌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사실,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설명하는 일이 더 쉽고 그럴듯하다는 이유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래왔던 것 같다. 내가 읽는 책이, 내가 듣는 음악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보다 나를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올 한해 '내가되는 꿈'을 하나의 화두로 잡았던 마음은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살아낸 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리타는 이제 많은 것을 알게 된 자신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마도 그녀는 다시는 '이전과 같은 삶'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자유가 또 있을까. 불행히도 나 역시 그러한 아이러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2009 첫 연극 @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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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8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적응했어요..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전부 다 나의 모습이라고..^^

웽스북스 2009-01-08 02:21   좋아요 0 | URL
흐흐 저도 메피님의 취침 시간에 이제 적응했어요. 아함~ 졸리다~

멜기세덱 2009-01-08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연극보고시퍼요...웬지누나~~~ㅎㅎ

웽스북스 2009-01-08 02:22   좋아요 0 | URL
저를 만나시면 됩니다.
제가 거의 뭐 온몸으로 연극을 하며 산달까요. 하하하.

저를 구경하세요.

깐따삐야 2009-01-0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교수님도 리타 길들이기, 아주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지방엔 안 내려오는지.-_-
웬디양님의 이 글 참 좋은데 저도 비슷한 생각으로 고민한 적이 있어서요. 메피님 경지에 오르려면 좀 더 닳아야겠죠? ㅋ

Mephistopheles 2009-01-08 17:42   좋아요 0 | URL
가만히 있어도 나이 들면 그리 됩니다..^^

웽스북스 2009-01-09 01:54   좋아요 0 | URL
아, 그랬어요? (어쩐지 막 공신력을 등에 업은 것 같고 막 ㅋㅋ) 이 글에 공감해줄 수 있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깐따님이 좋아요. 후훗.

메피님, 나이 들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 많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