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임에서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그랬다. 가끔,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시니 난 정말 뭐든 다 잘될 거고, 정말 잘 살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고. 이건 어떤 비아냥거림은 분명 아니다. 어느 정도 진심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진심은 아닌 거다. 돌아갈 의지는 0%이지만, 그래도, 진심이 아니지는 않은 거다.
이런 느낌에 빗대어 설명해도 될런지는 모르겠는데, 미쓰홍당무를 보면서 느낀 감정도 비슷하다. 그러니까, 미쓰 홍당무를 보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저 여자가 도대체 왜 저러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또,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 컴플렉스로 똘똘 뭉쳐진, 그래서 스스로 자기가 막 부끄러운, 타인의 상황은 완벽하게 객관화하지만, 자기자신은 전혀 객관화하지 못하는, 아니 그 객관화를 두려워하는, 가지지 못하는 건 갖고 싶지 않았던 척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표면적으로는 집요하게 행동하면서도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들여다 볼 용기가 없는 저런 여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이라니. 얼마나 아름답고 샤방한가. ㅎㅎㅎ 그들과 함께 저여자는 도무지 뭥미를 외치고픈 맘 굴뚝같지만 이 여자가 너무 이해되는 내 삶이 심지어 좀 슬프기까지 하다. 이 때의 그 굴뚝같은 맘 역시, 진심이 섞여 있긴 하지만 꼭 진심이라 하기는 어려운 진심이긴 하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웃기다. 이건 100% 진심이다. ㅎㅎ 이경미 감독 유머를 아는 감독인가봐. 라고 또 혼자 감탄하며 맘놓고 정신줄놓고 대놓고 마구 웃어주었다. 마음은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하고 싶어도, 아, 그래도 정말 진심으로 웃긴데, 어쩌라고. ㅎㅎ 마이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이너한 방식으로 쓰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풀어갈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박찬욱의 영화 중에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와 가장 비슷한 느낌인데,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보다는 좀 더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인가)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백석의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은 예상치 못했던 반가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