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여쭙고 싶었던 건, 시민이 의견을 말하는 과정에서 저항의 수단으로 폭력이 어느 선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였어요. 먼저 버스를 잡아끌어내리고, 전경을 향해 물병과 돌, 계란을 던지고, 하는 행위들에 대해서, 실은 과거 시위들은 이런 행위들이 묵인돼 왔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비폭력!을 외치면서 (실은 이것도 이 전단계에서는 어느 정도는 강박적 모습이 있지 않은가 싶기는 했어요. 비폭력이 정말 옳아서라기보다는, 폭력을 빌미 잡히면 안된다는 의견의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거든요) 이런 행위들이 조금씩 생겨날 때 시위가 '변질' 됐다는 조선일보 등등의 논리들이 퍼져나가고, 지금은 사제단 신부님들께서 비폭력 집회를 너무나 잘해나가고 있는 아름다운(?) 비폭력의 힘이 도래하다보니, 그래 과거집회 폭력적이었고, 좀 잘못이었어, 라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저는 그런 합의가, 그 전에 앞에 나가서 절박하게 몸으로 싸웠던 사람들에게 좀 잔인하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들어서요. 비폭력이 매우 힘든 길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긴 하지만, 저항의 수단이 정말 너무 없는 약자인 시민들에게 폭력, 비폭력의 이분법의 굴레를 씌우는 일은 잘못된 것 아닌가. 저항의 모습으로 어느 정도 선까지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한가. 뭐 이런 고민들이요. 비폭력을 말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자칫 비폭력에 대한 집착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요. 저도 결론을 낸 것은 아닙니다. 그냥 고민스러워서요.


답)

어떤 문제고 간에 정답이란 없단다.
정답이 없다는 것 말고는 정답이 없는데..폭력의 문제도 그렇다.
비폭력은 결국 늘 약자들, 억울한 자들에게만 엄격히 강요되고 늘 권력자들은 먼저 폭력을 거리낌없이 휘두르더란 말이지.
정말로 폭력을 없애려면 사실은 권력을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이다.
이게 신채호 선생의 생각이고 <컴 사상사>수업에서 이 문제를 두어번 다루었는데 아마 익상이가 그 내용을 알고 있을터이니 나중에 보면 물어보길..
나는 신채호 선생의 이념에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그럼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
결국 내가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공동체생활이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합의에 구속받게 되어있다.
뭐 이건 피할 수없는 인간운명의 부조리한 측면인데...
그러니 공동체의 윤리, 도덕, 법이란게 중요해 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도덕, 윤리, 법이란게 상식적으로 알려진 것만큼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공평한 것도 아니지.
그래도 그것이 전혀 불합리한 것도, 오로지 불공평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싫어도 그 테두리에서 살게되고, 좋아도 그 테두리에서 살게 되는거..그러니 정답이란 없는거지.
和而不同하면서 살아야한다고나 할까...

아울러 결국 나 스스로가 원하는게 무엇인가를 생각할때
"개선"을 원하면 체제의 틀 안에서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고, "혁명"을 원한다면 체제를 무너뜨려야 하는데 그건 폭력을 동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민들이 정말로 혁명을 원하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나? 나는 혁명을 원하고 앞으로도 어떤 체제가 오던 계속 혁명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긴 혁명이 될 것이므로 그 인터벌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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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1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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