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가슴 뛰느냐고

이성복

새 학기에 고 3이 되어야 할 여자 아이는
머리 박박 밀고 입에 마스크 하고 신승훈인가,
이승환인가 요즘 나오는 발라드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래, 노래라도 해라, 얘야, 노래라도
자꾸 불러라, 시어머니 병수발하던 옆 침대
아줌마가 중얼거린다 달포 전 아침부터 토하고
설사해 정밀 검사 받아보니 간에도 폐에도 암은
퍼진 지 오래여서, 그래도 그 엄마 울고불고
수술은 해야겠다기에, 거의 배꼽 근처까지 장을
잘랐다는 아이, 잣죽이나 새우깡 부스러기 먹는
족족 인공 항문으로 쏟아내고, 또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미치겠다고 제 엄마 졸라 매점 보내고
나서, 아이는 베개 한 쪽에 뺨을 묻고 노래부른다
왜 이렇게 가슴 뛰느냐고, 왜 이렇게 행복하냐고
6인 병실 처음 들어오던 그날, 왜 내가 죽느냐고
왜 나만 죽어야 하냐고, 그리 섧게 웃던 그 아이는






g언니가 석, 형도 오라버니와 함께 좋아하는 오라버니가 성복 오라버니라는 말이 떠올라
어제는 사두고 미처 읽지 못하고 있던 이성복의 시집을 꺼내 읽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모 게임업계에 있는 직원 한 명이
과로인지 무엇인지 모를,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오늘 퇴근 후 가만 가만 방에 앉아 있는데,
어제 읽은 이 시가 문득 떠올랐다

아직 가슴 뛸 일 많을 아름다운 나이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섧게 외치면서도,
발라드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콩닥콩닥 뛰던 여자 아이의 심장
머리박박 밀고 마스크를 하고,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비어져나오는 노래에 행복함을 느끼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미치겠는.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 저 여자아이

&

한 때는 그런 민감함을 지녔을지 모르는 심장이
스트레스와 피로로 뭉쳐, 돌연 더 이상 가슴뛰기를 거부해버리고 멈춰버려
죽음에 이르게 돼버린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이름 모를 그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