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 - 유쾌한 인생 반전을 가져다주는 생각습관
희망메이커.박원순.전유성.박준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엘레베이터를 타러 갈 때면 생각한다. 엘레베이터가 12층에 멈춰 있고, 나는 1층에서 걸어가고 있을 때, 내가 걸어가고 있는 시간 동안 엘레베이터가 내려오고 있으면 좋을텐데. 혹은 엘레베이터가 막 올라오고 있고, 나는 12층에서 내려가야 할 때, 내가 버튼을 누르기 전 다른 층에서 멈춰 엘레베이터가 1층으로 다시 내려가면 한참 기다려야 할텐데. 나는 으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면서 요란하게 엘레베이터 앞으로 뛰어가는 데 간발의 차로 놓치게 되는 일이 많다. 100미터가 20초이니 어쩔 수 없다 -_-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아, 엘레베이터 리모콘이 있으면 좋겠어. 혹은 이 중간쯤에 버튼이 있으면 좋겠어.

알라딘에서 택배를 받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 박스와 공기 주입된 보호 비닐쿠션, 다시 싸서 보내고 싶다. 찢고 바람을 빼서 버리긴 아까워. 고작 내 책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비닐이 낭비되고 있는데, 분명 재활용이 가능해보이는 것들도 재활용을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알라딘 택배 아저씨가 왔을 때, 그간 모은 비닐쿠션들을 다시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 어차피 아저씨가 나에게 왔을 때 보내는 것이고, 배송센터로 다시 들어갈 때 가져다 주면 되는 것이니, 크게 배송 리소스가 많이 투여되지는 않을텐데.

그 외에도, 우리가 살면서 느끼게 되는 사소하면서도 작은 필요들. 이런 것들을 망각의 샘으로 흘려 보내기가 좀 아깝다는 생각 누구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은 약하다. 혼자 힘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거쳐야 할 장애물들이 많다. 희망제작소의 사회창안센터는 이런 작은 아이디어를 모아 공공의 아이디어로 승화시키는 곳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얻은 아이디어는 정부 부처 혹은 각 기관으로 전달된다. 좀 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자체 연구 주제로 선정되기도 한다.

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올라온 아이디어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로 돼 있는 '희망메이커'가 곧 이 아이디어를 올려준 시민들을 의미한다. 공저로는 희망제작소의 대표인 박원순 변호사와 전유성, 박준형의 이름이 올라 있다. 전유성과 박준형을 공동 저자로 내세운 것은 이 책에 좀 더 맛깔나고 유쾌한 색깔을 더하기 위한 의도로 보여지나, 실은 책 홍보의 차원 역시 무시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유성과 박준형은 각각 별별상상, 펀펀토크라는 코너를 통해 자신의 작은 아이디어들을 나눈다. 재밌는 아이디어들도 많지만 구성상 필수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나 좀 허황되거나 현실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이디어들이 보인다. 그런 것들은 조금 줄여도 좋을 뻔했다. 오히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아이디어스크랩 쪽에 더 관심이 간다. 우리 나라 혹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은 아이디어가 주는 즐거운 변화들을 취재했는데, 인상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특히 놀이터나 독일의 훈데르트바서 학교나 놀이터를 보며 참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졌고, 우리나라 농민들이 연대하여 만든 농민 주유소를 보며 어떤 대안을 보는 것만 같은 기쁨이 느껴졌다.

책으로 엮인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참 작고 소소한 것들이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나도 한번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던 것만 같은 아이디어다. 달리 말하면, 이는 변화의 시작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작은 것들을 모아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던가,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는 재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던가, 좀 더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라던가, 작은 불편을 해소한다던가, 하는 아이디어들이 많은데, 재미있는 건 이 아이디어들 중 이미 곳곳에 반영된 아이디어들은 '우리 아이디어가 실현됐어요'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물론 매우 적은 비율이다.

분명 희망제작소의 이런 시도들은 즐거운 것이기에, 나는 이 책에 응원을 보내지만 개인적으로는 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재미 있는 구성도 좋지만, 반영된 아이디어들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쟁점이 어떻게 공론화되서 어떤 과정으로 반영됐는지 (물론 중요치 않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들이 더 궁금했다) 그래서 현재는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더 소개해 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희망제작소의 사회 창안센터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 생긴 필요일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다음 번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똑부러진 결과물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평점은 살짝 야박하게 줬다. ^^ 

마지막으로, 책이 책이니만큼 여기에 더하는 나의 아이디어 하나. 이 책의 각 아이디어마다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서 이 게시물을 바로 보고 추천할 수 있는 링크 URL을 함께 소개해주면 어떨까.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 역시 이런 생각 했었다고, 나도 여기에 공감한다고, 추천 혹은 공감의 의사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 단순히 추천 버튼 누르는 게 아니라 개인의 이름과 인적사항을 약간 남기는 '서명'의 형식으로. (물론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한도 내에서) 그렇게 하면 이 의견이 전달될 때 좀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을텐데. 기왕 결과물들을 책으로 묶어서 냈다면, 이 결과물들이 좀 더 긍정적으로 붐업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했으면 좋을텐데, 몇몇 아이디어에 대해, "어 이거 정말 좋겠다" 라던가 "어 나도 이런 생각 했었는데"의 마음을 그저 마음속으로만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다. 아니, 그보다 수많은 이런 공감들이 사장되는 것이 또 안타까웠다. 그건 희망메이커답지 않은 거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