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 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
댄 보르토로티 지음, 고은영 그림 / 한스컨텐츠(Hantz) / 2007년 10월
구판절판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을 한 명 치료한다면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말라리아가 평상 수준보다 심각한 난민 캠프나 재난 상황에서 치료를 하면서 '어차피 이 일을 내년에는 못할 테니 올해도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죠. 누군가에게 '미안해, 너를 구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내년에는 아마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싫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죠. 우리는 내년에도 치료가 가능하게끔 노력하겠지만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보장하는 게 MSF의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몫이죠. 종종 우리는 과거 개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향후 10년 도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년이 흐르면 백신이 개발될지도 모르죠. 단지 올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190쪽

"우리에게는 중요한 것이 보건이며 동시에 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안전한 식수를 마셔라, 손을 씻어라, 기타 등등 말이죠. 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은 단지 신선한 물을 원하지 건강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사업이 끝나면 개통식을 하는데 사람들이 꼭 와서는 끝없이 제게 맥주를 권하며 고마워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말하죠. 여자들은 물을 길러 언덕까지 3-4킬로미터를 걸어가곤 했는데 그들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한 무리의 10대들이 와서 팔꿈치로 찌르고 눈을 찡긋거리고 발을 끌며 춤을 춥니다. 그들은 골짜기의 모든 여자들이 이제는 마을에서 살기를 원하게 되어 결혼할 가능성이 열배나 뛰었다는 겁니다."-225쪽

미국인들은 우리가 자신의 동맹군이 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원하지 않아요. 우리가 미군의 동맹이 된다면 그것은 인도주의의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그들은 이슬람군대가 우리를 괴물로 보고, 적으로 보기를 원하며,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 공격을 하는 자들이 이전의 탈레반이든 아니든 그들에게 가서 '우리는 미국인들의 동맹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재건할 생각도 없어요. 우리는 당신들과 미국이 생각도 안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덜어주려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빈 라덴이 여기를 차지하든지 조지 부시가 차지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닙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죠. -236쪽

MSF에서 처음 훈련을 받을 때 '새 냉장고 증후군'에 대한 농담을 들었습니다. 미션을 떠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며 미션에서 본 일, 부패, 사망자, 즐거웠던 일들에 대해 얘기하려 하면 엄마가 쳐다보며 말하는 거죠. '흠 멋지다. 내가 새 냉장고를 샀다고 얘기했니?" (중략)
멀리 있을 때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죠. 어떤 이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며, 어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들에게 들려주기는 무리라는 느낌이 들죠.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까봐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중략)
일부 귀국한 자원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고국의 관심을 일깨우려는 의지에 불탄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이 얼마나 행운아며 그들의 문제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화장실 물을 내리며, 그들은 머나먼 땅의 난민들은 하루 종일 쓸 물이 그만큼도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이 방종하며 경박하다고 생각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248쪽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원조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위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으며 반대로 다른 어느 NGO보다 재빨리 현장에 의료 구호 및 사람들을 파견한다. MSF는 자기 손을 비틀지언정 얽어매지는 않는다. -292쪽

인도주의는 단순히 관대함이나 자선 이상의 것입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것들 가운데서 정상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295쪽

침묵은 오랫동안 중립성과 혼동되었으며 인도주의 활동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여겨졌습니다. 시작부터 MSF는 이 가정에 대한 반발로 설립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이 언제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침묵은 반드시 생명을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96쪽

언어란 결정적인 것입니다. 언어는 문제를 구조화시키며 반응, 권리에 따라서 책임감을 정의합니다. 언어는 의료적 혹은 인도주의적 대응이 부적절했는지 말하며 정치적 대응이 부적절했는지도 말합니다. 아무도 강간을 복잡한 부인과적 응급 문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강간은 강간이며 인종 학살은 인종 학살입니다. MSF의 인도주의 활동은 고통의 경감과 자율성의 회복과 부당함의 진실을 목격하는 것, 그리고 정치적 책임감을 묻는 것입니다. -297쪽

인도주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의사들은 인조 학살을 막지는 못합니다. 어떤 인도주의자도 전쟁을 저지를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인도주의자도 인종 청소를 막지는 못합니다. 또한 어떤 인도주의자도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도주의의 과제가 아닌 정치권의 과제입니다. 저는 다음 사항을 명확히 하겠습니다. 인도주의 활동은 어느 활동보다도 비정치적이며 그러나 그 활동의 도덕성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가장 심오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범죄 행위를 하고도 무사한 것에 대한 투쟁이 이런 함의들 중의 하나입니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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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구의절망을치료하는사람들]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7-11-14 09:44 
    최근 S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바라보면 참 화가 치밀어오른다. 명백한 불의 앞에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많은 공직자들은 이미 S사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은 상태이기에 침묵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런 것들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내부고발을 감행한 한 변호사의 고군분투를 떳떳하게 응원하고 지지해줄 만한 이가 많지 않다. 그 용기가 쓸쓸한 울림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권력을 가진 자들 중, S사로부터 자유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