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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스캔들 - 당신이 알고 있는 와인 상식을 뒤집는
박찬일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발측한, 혹은 도발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통념을 깨는 그 무언가는 항상 즐겁다. 하지만 그 발측함이 외침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건 발측한 것이 아니라 선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와인스캔들, 이 책은 제목부터 발측함을 표방한다. 게다가 당신이 알고 있는 와인 상식을 뒤집는,이라는 수식 문구라니, 정말 뭔가 확 뒤집힐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4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나, 큰 범주에서 본다면 두 파트이다. 앞쪽 파트는 와인에 대한 상식을 뒤집어 준다는, 책의 수식 문구에 부합한 파트, 그리고 뒤쪽 파트는 와인과 와인 용품, 보관법 등에 대한 상식을 전하는 부분이다. 물론 두파트 다 유용한 부분이 있지만 좀 더 큰 맥락에서 볼 때 나는 이 두 파트가 조금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다. 첫번째 파트에서는 지식이나 권위, 매너에 집착하지 말고 즐겁게 마시자,라고 이야기한 후, 두번째 파트 이후에서는 와인과 관련된 지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두마리 토끼가 얼른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는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뒤집어준다는 와인 상식은 적어도 내게는 그리 획기적이라거나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가 말했듯, 와인에 대한 취향이나 생각은 모두 다르니까. 어떤 기사를 보며 그 상식 없음에 기가 막혔다,는 저자의 말을 따라가며- 몇몇레스토랑에서 내놓는 와인과 치즈의 조화가 어이없었다는 저자의 말을 따라가며, 아...그렇구나, 하다 보면 역시나 그의 취향에 권위를 부여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실용서니까, 이제 실용성 위주로 얘기해보자. 저자가 이율배반이든 내가 까칠한 것이든 간에,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된다면? 일단 나를 기준으로 얘기해 본다면,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럼에도 와인은 좋아하는 편이다. 와인에 대해 잘 알지못해 늘 같이 간 사람, 혹은 매장에서 추천해주는 저렴한 와인을 주로 마셨고, 그런 것들에 큰 불편을 느낄 만큼 민감한 미각의 소유자도 아니다. 한 번 마셔 보고 괜찮았던 와인의 이름을 애써 외우지도 않는다. 이 정도의 와인 소비자에게 이 책의 유용성 정도는 중간에서 약간 위 정도이다. 어쨌든 마셔볼만한 중저가 와인들이 많이 소개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렇지만 이 책의 설명은 조금 체계적이거나 친절하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와인에 대한 설명의 수준을 5단계 정도로 놓고 생각해 본다면, 중간에 2단계 정도가 건너뛰어졌으며, 5단계에는 이르지 않는 설명이라고나 할까. 설명 자체가 어렵지는 않으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와인의 이름들이 기초공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열돼 있어 조금은 혼란스럽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걸 설명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머릿 속에 잡혀 있는 체계는 나도 모르게 건너뛰거나 당연한 듯 넘어가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좋은 실용서라면, 당연히 이런 면모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은, 와인이 주는 (아직까지는) 비일상적인 면모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느 정도 숨통을 트여줄 것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책의 부실한 기초 공사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다시 주눅이 들게 되지는 않을런지. 좀 더 체계적이고 기본적인 책을 한 권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