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좀 맞지 뭐
아, 근데 대수롭지 않은 비가 아니었다
1층 STCO 매장으로 가서 우산을 파느냐고 간절히 물을 땐
그 우산의 가격이 얼마든 살 작정이었다
하지만 우산은 없었고, 나는 고민 끝에 2층으로 올라왔다
2층 출구에서 잠깐만 뛰면 있는 편의점에 우산을 파는 것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
브랜드가 생뚱맞은 NII여서 은이와 NII에서 우산도 만드냐며
의아해하던 그 우산을 내가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뛰기엔 좀..... 부끄러웠다 ㅠ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 건물 앞에서 ;;
금요일 강남역 거리를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뛰는 건
어쩐지 좀 창피한 느낌이 들었으나
정 안되면 뛰어야지, 하며 머뭇머뭇하던 중에
낯익은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스타벅스 직원이다
다행히 인사하고 지내는 직원이고 건물로 들어가던 중이라
어렵지 않게 우산을 빌릴 수 있었다
금방 매장으로 가져다주겠다,고 얘기하고, 우산을 사서
다시 돌아와 매장에 우산을 가져다 놓고 나가는 길이었다
선아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뒤를 돌아봤다
예상치 못했던 얼굴, 호은이였다
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역시나 아는 척을 하거나 문병을 가기에는
살짝 어설프게 친했던 관계로 ;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었는데
좋아진 얼굴로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니 참 다행스럽다
스타벅스 안에는 나연언니와 진희언니가 함께 있었다
함께 연극을 하던 사람들의 모임인가보다
역시나 모두 어설프게 친한 사람들이었으나
예상외의 얼굴들이 너무 반가워
나는 세 사람의 손을 번갈아가며 붙잡아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안부를 나눴다
암으로 고생중이었던 호은이는 계속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고,
얼마 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던 진희언니는
잘 치료가 되서 건강해졌나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선약이 없었다면 잠깐 앉아 안부를 나누고 싶을 만큼
참 반갑고 반가웠다
나오는 길에 문득 스친 생각
사실 평소에도 가끔 하는 생각이긴 한데...
내가 일하는 건물의 2층에 있는 스타벅스는
전세계에서 매출액이 높은 편이라는
우리 나라의 스타벅스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매출을 자랑하는 곳이고
많은 사람들이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는 곳이다
오가는 학원생들과 직장인들,
강남역에서 특별히 좋은 장소를 알지 못해
가장 무난한 장소를 약속장소로 잡는 많은 젊은이들이
하루에도 수백명씩 오간다
나 역시 이 회사에 다니기 전에도 몇 번 온 적이 있는 곳이니
아마 내가 12층에 죽치고 앉아 죽어라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만나면 분명 반가울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있는 건물에 내가 있는 지 모른 채 수없이 왔다갔다 할 거다
이 날도 우연히 우산을 빌려 다시 스타벅스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반가운 얼굴이 셋이나 나와 같은 면적의 하늘 아래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서운해졌다
스타벅스 세개의 입구에 CCTV를 달고,
보고싶었던 얼굴이 등장할 때 잠깐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반가워요, 반가워요- 라고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니 제발,
혹시나 이쪽으로 오게 되면
커피를 사줄테니 전화하라고, 얼굴좀 보자고,
아무리아무리 얘기를 하고 다녀도
지금까지 전화했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아무래도 나이가 드나봐
흘려보내는 것들이 자꾸만 아까워지는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