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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평점 :
처음 이책을 받았을 때, 아기자기하게 감각적이고 예쁜 편집이 참 기분 좋았다. 하지만 싱긋 웃으며 책을 펼친 후, 갑자기 나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
이 한마디가 이 책에 대해 모든 걸 말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내 머리속엔 자꾸 이 말이 맴돌기 시작했다
임영신, 그녀는 가정을 버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기 전 이렇게 누군가 그녀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것을 보았다. 세 아이이자 한 남편의 아내인 여자가 가정을 버리고 전쟁 현장으로 뛰어든 것은 이기적이고도 무모한 일이라고 가정의 평화는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느냐고
한비야씨의 글을 읽을 땐 누구도 그녀에게 무모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렇다면 그녀가 혈혈단신이기 때문이었단 말인가? 가정이 없는 여자는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되고, 가정이 있는 여자는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면 이기적이고 무모한 걸까?
우리에게, 또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가정,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가 참 많이 왜곡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갈 때 진정으로 지지하고 힘이 되 줄 수 있는, 본인을 가장 잘 알고, 박수쳐줄 수 있는 공동체이다. 가족이 있으므로 갇히고, 발목 묶여 그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긍긍하는 공동체가 아닌 오히려 그로 인해 안심할 수 있고, 한 발 앞서나갈 수 있도록 서로를 긍정해 줄 수 있는 곳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가정의 모습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런 가정의 모습, 그리고 이런 지지자가 되어줄 수 있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남편 분, 제 이상형이십니다) 아이들 역시, 이런 남편이 있었기에 믿고 떠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라는 '선명한 거짓'을 좌시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이러한 본인의 모습을 긍정하고 격려해 주는 가정은 큰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대 여성학과 정희진 교수는 진정한 모성이란 엄마가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부어주는 것이 아닌, 엄마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롤모델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했으며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한다. 사회의 한 곳에서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엄마에게 어려서부터 평화에 대해 듣고, 평화를 배우고 자란 아이는 올바르게 자랄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 아이들을 제 아이처럼 사랑하고 그들을 향해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을 역시 온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며 바르게 키워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녀는 가정을 버렸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가정을 너무나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했다
앗살라 말라이쿰, 평화가 인사인 그곳
이 책을 들고 지하철에서 읽는데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녀의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녀가 전하는 그 곳의 소식에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다. 그곳 사람들은 앗살라 말라이쿰, 이라고 인사를 한다. 당신에게 평화를... 평화가 일상인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때 평화를 기원해주지 않는다.오히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곳에서, 한 때는 "부자되세요"가 인사인 적은 있었다. 그게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었으니까
이 곳 사람들은 그렇게 인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서로에게 평화가 임하기를 늘 기도하고 기도해줄 뿐이다. 이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정말 슬펐다. 평화가 그렇게 간절한 사람들이 있구나. 비둘기떼 따위를 보면서 막연히 저게 평화의 상징이야, 하면서 (지금은 아니지만;;;) 평화가 너무 당연해서 사실 진짜 평화가 뭔지 모르는 우리들도 있는데 그들은 일상이 아닌 평화가 일상이 되길 바라며 그렇게 서로에게 늘 일상적으로 인사한다. 참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참 강인하게도 그들의 일상을 지키려 노력한다
"다시 전쟁이 온다 해도,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이 강가에 와서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실 거에요. 전쟁이 우리들의 일상을 바꾸어놓을 수 없다는 걸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우리가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가졌다는 걸 볼 수 있도록"
- p49, 티그리스 강변에서 마주한 한 젊은 부부
평화롭지 못한 그들의 일상이기에 한 순간의 평화를 소중히 여기며 지키고픈 마음 또한 강렬한 그들의 모습에 또 나는 가슴이 아프다.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기본 인권인 존엄을, 생명을, 그리고 평화를 빼앗을 권리를 누가 주었던 것일까. 경제 제재를 이유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영아 살해를 자행했던 그 모습을 어떤 이유를 들어 용서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삶의 시작이, 평생의 인격을 결정하는 시기가 '전쟁'이라는 치명적인 기억, 아픈 기억으로 시작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그 권한은누구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일까. 이런 사실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저 무기력한 존재,라며 이러한 것들을 합리화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몰랐다,고 그저 방관해도 되는 걸까? 오히려 무기력하다고 포기했고, 몰랐다고 방관했던 게 더 큰 잘못은 아니었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답 없는 물음만, 답 없는 질문만 끊임없이 반복할 뿐이다
정직한 물음, 정직한 대답
그녀는 이러한 현장들을 마음에 안은 채,평화를 향한 여행을 계속한다. 라브리와 떼제를 다니며,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녀는 계속되는 우리들의 대답없는 물음, 답없는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찾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바로 정직한 물음 정직한 대답을 통한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이다
라브리는 깊이 묻고 정직한 삶을 살 것을 그 곳에서 쉼을 찾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말해주고 있다. 떼제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가 선 곳에서 깊이 묻고, 스스로 대답하고, 기도와 화해의 삶으로 희망을 이끌어나가는 삶, 단순하고 소박한 삶덜 갖고 많이 존재하는 삶, 생각한대로 살아가는 삶, 앎과 삶이 일치하는 삶,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돌보는 삶, 화해와 일치의 삶으로, 세상을 향해 화해의 문이 되어주는 삶- 이러한 삶을 살 것을 추상적 선언이 아닌, 손으로 매만져오는 일상으로 말을 걸고 있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임영신은 돌맹이국을 끓이는 지혜로운 곰 이야기를 하면서 곰에게 그렇게 평화로운 지혜를 가져다 준 것은 숲에서 혼자 보냈던 시간, 자신의 분노를 돌아보고 고요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과 세계에 이러한 물음들이 있다면 세계는 좀 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의 첫장에 신영복 선생님의 친필로 쓰여진 한마디처럼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 속 평화의 추구가 곧 평화를 향한 길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잘 살고 있는 거니?
라브리의 설립자인 프란시스 쉐퍼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물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함께한 물음이다. 대학 2학년 때 저 책을 읽고, 나는 답을 찾았던가? 지금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신영복 선생님을 향한 말없는 흠모가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나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대학시절, 학부의 선생님들을 참 존경했었고 감히 그 앞에서 부끄러워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는 그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곳에 잠깐 취직했다가 자꾸만 마음에 밟히는 선생님들의 이야기 때문에 그 심어주신 삶에 대한 가르침, 가치관 때문에 NGO쪽으로 다시 취업하기 위해 알아보고, 노력했으나,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은 상황 속에서 어렵게 어렵게 끝까지 갔으나 번번히 최종에서 탈락하면서 그냥 이 곳은 내가 갈 곳이 아닌가보다, 하고 다시 안주해버린 내가 나름 지금의 편안하고 스위트한 삶에 만족하면서, 내가 가서 직접 일하고 싶었던 기관들의 후원자로 남으며 만족하고 있는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존경해 마지않는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며, 그 삶을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 다시 한 번 그녀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를 보면서 얼른 두근거리는 이 가슴 진정시키고, 나에게 정직한 물음과 정직한 대답을 던져줄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만의 평화 여행을 계획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