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전 읽기 - 이 시대 대표 지성인 10인이 말하는 나의 인생과 고전
공지영 외 지음 / 북섬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씩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와서 묻는다. 왜 책을 읽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웃으며 답할 뿐이다. 하하하 재밌어서요. 사실 맞다, 나는 재미로 책을 읽는다. 요즘에는 아무리 다양한 문화를 접해도 결국 책만큼 재미있는 컨텐츠를 찾아 보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책이 왜 재밌을까? 사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는다. 누군가가 말했듯, 어떤 사람은 책에서 공부하는 법을 찾고 어떤 사람은 책에서 돈 버는 법을 찾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에서 사랑에 성공하는 법을 찾는다. 하지만 나는 책 속에 인생이 있기 때문에 책이 재미있다. 누군가의 삶이 있고, 그 삶이 내 삶과 다르지 않으면 다르지 않아서, 또 다르면 달라서 그냥 그대로 재미가 있고, 내겐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책을 편집 혹은 홍보한 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고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그들이 단순히 고전을 소개하는 정도라면 내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책에 관심을 가진 건 이들의 소개하는 그 고전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책을 통해 내가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어떤 책을 통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 왔는지, 순전히 그런 것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인간냄새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공지영의 뒷편에는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부활'이 있었고 보이는/보이지 않는 폭력에 항거하는 자세가 돋보이던 김두식 교수의 뒷편에는 사랑과 평화의 실천을 이야기하는 톨스토이의 민화집이 있었으며 독특한 색깔의 영화로 주목받는 변영주 감독의 뒤에는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 그리고 발레교습소에서 그린 청소년기의 모습의 뒤에는 가네시로가즈키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홍세화 선생님의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뒤에는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 있었다

톨스토이에 대한 부분, 사실 김두식 교수가 그의 저술 부분을 통해 고전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 표현했듯 나 역시 톨스토이의 저작 중 딱히 읽은 게 동화스러운 민화 몇개과 인생론 정도? 그럼에도 이 책에서 소개된 고전들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는 공지영 작가와 김두식 교수님이 차례로 소개하는데 이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공지영은 톨스토이의 성장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에 주목한다. 작가로서, 가장 마지막 작품인 부활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칭송받는, 글쓰기를 통한 그의 성장이 그녀에게 도전이 됐으며, 인간의 추악한 면을 집요하게 파고 든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달리 인간에 대한 믿음, 구원, 희망을 얘기한 톨스토이가 그녀에게는 작가로서 더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는 것

하지만 김두식 교수는 톨스토이의 삶에 있어서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이상을 노래하고, 희망을 얘기했지만 그의 이상이 아닌 일상은 그와 같지 못했다는 것, 그 역시 이상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속에서 살고 있는, 어쩌면 톨스토이와 같이 괴리감이 있는 질척질척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이 부분에 굉장히 공감했다. 이상이라는 것, 사실 이상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루지 못하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버리면 그만인 걸 버리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이루지도 못하는 정말 질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또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결심하고, 날마다 패배하면서도 또 다시 결심을 일삼는 내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맹자를 이야기한 배병삼과 장자를 이야기한 표정훈의 저술 부분이었다. 사실 맹자, 장자는 윤리시간 이후 딱히 접한 적이 없다. 맹자 호연지기 장자 자연주의 노장사상 뭐 이런 것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맹자와 장자의 공통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다. 알다시피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인간의 본성에서 희망을 본 사상가였다. 사실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던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맹자, 사람들 안의 선한 씨앗을 찾아주고, 그로 인해 다시 함께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맹자, 도덕 책에서 봤던 그의 인상은 흉악 울그락 불그락이었는데 그 안에 이렇게 착한 생각이 품어져 있었다는 것- 사실 도덕시간에 배울 땐 와닿지 않았었다 ㅎㅎ

그리고 장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데 공자가 말하는 인의(仁義)에 대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려는 비현실적인 사상이라 일침을 놓으며 각 사람이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 사실 나도 조금은 이상주의자적인 측면이 있어서 이러한 장자의 사상에 100%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 역시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장자의 사상을 운동권에 합류하지 못하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써먹었다고 하고, 세상의 다양한 일에 대해 충고를 해주다 보니 다소 일관성이 없는 측면도 있었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닌가, 라고 이야기하고 그 부분에 나 역시 공감한다. 사실 나 역시 이상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내 삶을 종종 옭아매더라도 또 이렇게 인간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라는 장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고 공감이 되는 것 역시 하나의 모순이 아니겠는가 흐흐흐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고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실 어느 정도 국한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고전의 정의는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서양의 고전, 동양의 고전, 소설, 시, 사상, 영화까지 정말 고전이라는 말이 참 많은 것을 아우른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사실 제목에 비해 책 내용은 조금 가볍긴 했으나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무겁고 심각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지 않아 오히려 내게는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책의 편집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의 폰트와 색깔을 달리하고 거기에 친절하게 밑줄까지 그어주었다는 것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고 해석이 다른 '고전'을 이야기하면서,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고,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라고 손수 밑줄까지 그어주셨던 편집자의 과도한 친절은 그야말 '사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부분을 읽을 때 편견을 갖게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얕으나마 여러 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나로서는 꽤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특히나... 천성이 비굴한 나에게 고전을 숭배하지 마십시오- 고전을 읽는 것은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이지 작가의 시각을 숭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숭배하려는 자에게 고전은 속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라는 배병삼 교수의 말이 나에게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마터면 비굴하게 숭배하면서 고전 읽을 뻔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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