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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 나환자촌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진정한 낙원의 건설은 가능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 모습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책 속 소록도의 모습이 사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모든 국민들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대의 앞에 개인을 모두 희생했어야만 했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위정자들의 폭력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 앞에 정당화됐죠. 그 곳에는 이미 개인은 없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이상향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살기 좋은 나라'라는 명분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이기적 성과주의로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이러한 이기주의를 '동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업적을 기리는 상징물인 동상. 모두를 위한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라 해도, 결국 자신의 성과를 인정 받고 싶은 마음, 누가 이런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결국 소록도를 '우리들의 천국'으로 만들겠다던 4대 원장 주정수는 그것을 자신의 이상향으로 만들었고,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합리화를 했습니다. 손발이 성치 않은 소록도 원생들은 그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고요. 천국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혹사한 그들의 삶이 어떻게 천국일 수 있었을까요?
사실 태생적으로 그들 개개인의 삶은 천국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천형이라고도 불린 한센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 그렇기에 사연도 아픔도 상처도 많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소록도입니다. 그렇기에 그 곳에 낙원의 건설은 어려울 수밖에 없던 것이지요. 개개인의 삶이 천국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어떻게 낙원이 될 수 있을까요? 사회적인 틀로서의 천국과 개인으로서의 가치가 완벽하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일까요?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의문을 던집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조백헌 원장은 상대적으로 대안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가 완벽한 인물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완벽했다면 오히려 <당신들의 천국>의 문학적 가치는 이 정도로 높게 평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조백헌 원장은 주정수 원장이 겪은 시행 착오를 똑같이 겪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통해 자신을 직시하며 반성할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한계는 그들의 삶을 살 수 없는 데 있습니다. 운명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 운명 공동체로서 천국을 만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결국 자신의 한계를 직시합니다. 그리고 섬을 떠납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옵니다. 운명을 함께 하는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그리고 진심으로 그 곳의 변화를 위해, 이 책이 말하는 대안인 사랑에 근거한 자유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조력자가 됩니다. 그 곳은 태생적으로 완벽한 천국이 될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는 완벽을 기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꾀하며, 섬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걸음씩 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런 모습이 이 시대의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 봅니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들 역시 이타심을 앞세워 이기심을 드러내며, 공익을 위시한 본인의 성과주의에 집착하지는 않을지 사실 걱정스런 마음이 앞섭니다.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그들이 국민들의 앞에 서기 전,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의 지나친 욕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