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펭귄의 우울, 사실 책 제목을 듣는 순간,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우화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 사람과 비슷하지만 또 그만큼 사람과 연결시키기가 어려운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펭귄을 키우는 사람이라니, 단 한 번도 내 생각의 범주에 들어왔던 적이 없는 발상이다
 
사실 그래서 시작부터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기껏해야 펭귄 세계들간의 이야기, 펭귄들의 대화, 뭐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생각의 범주가 펭귄을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 까지로 넓어졌으니까
  
그러나, 사실 펭귄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일 뿐,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펭귄 미샤를 키우며 살아가는 주인, 빅토르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또 아- 그럼 만화 cat이나 당근있어요? 처럼 애완동물을 기르는 에피소드? 이렇게 생각하기 쉽겠지만, 또 그건 아니다. 주인공이 펭귄을 키우는 건, 그저 사건의 모티프를 제공해 주고 있을 뿐이다
 
아, 그럼 도대체 이 책의 핵심 내용이 뭔데? 라는 궁금증이 생겼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부분은 바로 주인공 빅토르의 독특한 직업이다. 빅토르는 단편소설가이지만, 주류 소설가는 아니다. 그저 근근히 소설을 쓰며 연명해가는, 가난한 작가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새로운 기회는, 바로 신문에 사람들의 조문을 쓰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조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죽을 사람들의 조문을 쓰는 것.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으나 점점 상황은 심각해지고, 본인이 굉장한 일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는 빠져나올 방도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역시 결국 그 조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그럼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아니, 제목이 왜 펭귄의 우울인데? 그 수많은 동물 중 펭귄이 선택된 첫번째 이유는 펭귄의 외모에서 풍기는 상징성이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있어, 남극의 신사 라고도 불리는 펭귄의 정장스러운 모습은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인 '죽음'과 맞닿은 '장례식'과 어울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펭귄미샤는 후에 장례식에도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펭귄의 타자성이다. 남극에 살고 있다가 이 책의 지리적 배경인 키예프로 오게 됐기에 펭귄은 이 곳에서는 늘 영원한 타자일 수 밖에 없다. 기후도, 먹거리도, 환경도, 그에게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결국 우울증에, 선천적 심장병까지 악화되게 되는데, 이러한 타자성 역시 주인공인 빅토르 역시, 주류에 이용당할 뿐, 이 소설에서 한 번도 주류인 적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이러한 펭귄의 두 가지 특성은, 이 소설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후에는 빅토르를 위기로 몰아넣는 소설적 장치로 이용되기도 한다. 미샤가 장례식장에 불려다녀, 결국 병을 얻게 되고, 그 펭귄의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을 '호의'로 받아들였으나 그것은 나중에 그의 '십자가'에서 그를 정죄하게 되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여지는 가족의 모습 또한 흥미롭다. 처음에는 애완동물 미샤와 둘이 살아가던 빅토르는 우연찮은 계기를 통해 자꾸만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그 구성도 참 재밌다
 
빅토르 (본인)
소냐 (두번쯤? 만난 '펭귄아닌' 미샤의 딸)
니나 (소냐의 보모)
미샤 (애완동물)
 
정말 피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 이 네 개체가 (미샤는 사람이 아니므로) 제법 그럴듯한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김태용의 '가족의 탄생'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이러한 대안가족의 모습은, 정작 마음 깊은 곳은 달래주는 역할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미샤를 지극히 아끼던 소냐는 새로운 관심의 대상(니나)이 나타나자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고, 빅토르를 위하고 사랑하는 것 같던 니나는 정작 그의 어려운 상황을 깊이 공감하지는 못한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일을 대하던 빅토르의 태도이다. 처음에는 굉장히 열성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될 수 없는 어떠한 큰 구조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고민하지만 이내 체념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이 상황의 문제성을 어느 정도 알게 되지만 그는 그 상황 속에 좀더 머무르기로 한다. 그냥 생각하지 말자, 평온한 길을 택하자. 하지만 이런 생각이 결국 그를 절망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 이게 우리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 역시 해본다.

큰 구조 속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저지르게 되는 옳지 못한 일들, 어쩔 수 없어- 먹고 살기 위한 거잖아,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애써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것들- 그저 편안하게 생각하려는 것들이 결국 우리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 역시 크게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민감해지고, 좀 더 예민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건 뭐 굳이 작가가 의도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만 ㅎ)
 
암튼, 러시아의 현대 문학 작품은 처음 접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괜찮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과 함께 소설적 재미도 충분했다. 펭귄의 느릿느릿한 걸음처럼 이 소설의 진행도 빠르지는 않지만 느린 진행에도 불구하고 묘한 긴장감이 있는 듯하다
 
이야기의 결말 부분 역시 내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안드레이쿠르코프의 다른 책 '펭귄의 실종'도 곧 출간될 것 같던데 ^^
그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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