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증보판
라인홀드 니버 지음, 이한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 전 마틴 루터킹 목사 자서전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를 읽으며 흑인들이 당하고 있는 불평등하고도 불공정한 대우를 바로잡기 위해 비폭력적 사회 저항을 했던 그의 삶에 매우 큰 인상을 받았었다. 그러한 마틴 루터킹 목사에게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저자 라인홀드 니버였다. 니버의 사상과 저서에 대해 써 놓은 부분을 읽어 내려가며 언뜻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에서 꽤 큰 인상을 받았었나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꾸만 마틴 루터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가 떠올랐다. 그 때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기에.

책을 펼쳐 드니 여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예전에 이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다. 이 책은 여유를 내서 읽을 책이 아니라 맘먹고 읽어야 하는 책이었던 것이다. 긴장하고 마음 독하게 먹고 읽었음에도 이 책은 나에게 정말 쉽지 않은 책이었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는 말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가면서 읽었지만 책이 너무나 어려워서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서히 조금씩 읽어 내려가며 완벽히는 이해하지 못한 그 가운데에서도 이 책의 내용에 조금씩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그런 중에 감사한 건, 지식적으로 학문적으로 예전보다는 성숙한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책을 읽어 내려가며 개인의 도덕, 여러 민족의 도덕, 종교, 혁명, 정치 등 다양한 분야와 그것의 대안 가능성에 대해 논하며 계속 이것도 대안이 될 수 없고, 저것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니버의 글에 조금은 당황했었다.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뭐라는 건지, 그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는 건지, 그렇다면 결국 이 사회에 희망은 없다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도대체 결론을 뭐라고 지을 지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빨리 결말 부분을 읽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했다. 

결말까지 읽고 나니 수많은 사람들이 왜 이 책을 그렇게 명서요 필독서로 꼽았는지 이해가 됐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책들의 대부분은 ‘하나의 정답’ 을 말하며 그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니버의 이 책은 달랐다. 우리가 이상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은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또한 동시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는 것을 니버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따로 있었을 땐 미흡하고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러한 요소들이 종국에는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니버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엔,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결론이라며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이 정답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듯 했지만, 결국 이것은 모두 우리 사회에 조금씩은 필요한 요소들이었던 것이다. 즉 그는 개인적 도덕과 사회적 도덕이 양립하는 방향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변증법적 방안을 사용했던 것이다. 

개인의 윤리와 사회의 윤리는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 윤리를 위해서 개인의 윤리 의식은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도덕적 이상과 사랑 역시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대안을 만들어 나갈 수는 있는 것이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니버는 단 한번도 기독교의 필요성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교라는 것 역시 꼭 필요한 하나의 요소라고, 사랑이라는 가치관 역시 어느 정도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하며 종국에는 ‘기독교적 가치관의 필요’ 를 독자들로 하여금 끌어내게 한 부분은 참 인상적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정치적 강제력 역시 필요한 요소라고 언급했던 부분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강제력이라고 하면 좋지 못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니버는 강제력 역시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비폭력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간디의 비폭력 주의에 상당 부분 공감하는 듯 보였다.) 이는 강제력은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는 도덕적 이상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알기로는 이 책이 쓰여진 시기적 상황이 미국 경제가 공황에 빠지고 세계 곳곳에 독재의 물결이 일던 그 시점에서 세월이 조금 흐른 후일 것이다. (1930년대) 니버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낙관하고, 인간의 합리성을 고양시킴으로 집단적 이기심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았던 자유주의적 사회과학자나, 양심에 호소해서 자선을 베풀게 함으로서 집단적 이기심을 견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던 종교적 이상주의자들을 비판하려고 했던 의지가 강했던 같다. 서문을 비롯한 이 책의 곳곳에서 니버는 그들이 사회 조직의 범주 내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문제와 집단의 문제 간의 경중과 관계를 잘 구분하고 있지 못하고 비판하며, 사회집단 사이에 작용하는 운동의 강제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특히 특권 계급의 집단적 이기심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부정의는 조정이나 타협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러한 사회집단의 악을 견제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할 경우엔 이에 대해 다른 폭력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니버가 대단하다고 느꼈던 건 니버의 이러한 논지가 그가 살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7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니버의 논지는 조금도 흐름에 뒤떨어지는 논지가 아니며, 지리적 배경이 다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한국의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고 꼭 국가 단위가 아니라 해도 규모에 상관없이 집단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들이다. 이것은 그의 논지처럼 많은 요소들이 집단의 이기성을 견제하기에는 부족했기에 지금에 와서도 집단의 이기심이 예전과 다르지 않고, 이처럼 그의 논지가 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집단의 이기심의 무서움을 봐 왔으며 현재의 미국의 패권주의와 대 이라크 전을 통해 집단의 이기심이 어떻게 폭력성으로 변해가는 지를 너무나도 여실히 보고 있다. 사회는 힘을 가질수록 점점 비도덕적이고 폭력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꼭 이런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사실 지금 나는 집단 이기주의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주지했듯이 멀게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라크 전부터 우리 나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간의 갈등 및 노사분규, 그리고 가깝게는 내가 졸업한 대학까지 모두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도덕적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하지만 그러한 행동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라는 제목으로 늘 합리화 되고 있다. ‘종교’ 의 가치와 ‘도덕’ 의 가치와 ‘학문’ 의 가치를 모두 갖춘(혹은 그것을 표방하는) 집단 역시 이렇게 이기적일 수 밖에 없으니 다른 집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잣대는 나에게 또한 관대하지는 않다. 나 역시 한 집단에 속한 구성원으로서는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해온 적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와 다른 집단을 이기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 지, 나 또한 어떤 집단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게 됐을 때 나와 집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행사하지는 않을런지 고민이 들었다. 한 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던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모습, 다른 지역보다 우리 지역이 더 발전해야 하고, 위해 시설은 절대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 왔던 철저한 님비정신(부끄럽지만)을 보이던 지역민으로서의 나의 모습 등을 보며 앞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립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도덕적 이상으로도 될 수 없으니 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으로가 아닌, 가능한 모든 방법과 요소들을 모은 최선의 방법으로 말이다. 완벽을 기할 수 없다고 포기하기엔 난 아직 젊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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