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모처럼 날이 좋아서 리치몬드 공원에 놀러 갔다. 모처럼 날이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도 많았고 나와 놀고 있는 사슴도 많았다. 초겨울의, 약간 황량하고 쓸쓸한 듯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예전같으면 거리낌 없이, 영국의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말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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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8-11-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수가.. 리치몬드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크리켓만 보고 왔는데 ㅠㅠ 알았다면 사슴도 보고 올걸 그랬네요 ㅎㅎ 이젠 영국도 쓸쓸하겠네요. 이번 여름 짧은 더위 잘 즐기셨는지 ㅎㅎ

weekly 2018-11-20 21: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리치몬드 파크 나름 유명해요:) 크리켓을 보셨다니, 저는 길고 지루할 것 같아서 엄두를 못내고 있네요. 네, 이번 여름 몇 십 년 만의 날 좋은 여름이라고 영국 사람들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저도 물론 잘 즐겼구요~
 

국민투표로 브렉싯이 결정되고 나서는 아주 정이 떨어져서 영국 뉴스를 잘 안본다. 여튼 엊그제 브렉싯 딜 초안이 나왔다고 해서 시끌벅적 해서 보니... 글쎄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영국의 정치 부재를 다시금 느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영국이 EU 단일 시장을 아주 떠나는 것은 애초부터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고, 더군다나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는 아예 손을 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현실론을 주입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그러니까 정치적으로는(즉, 명목상으로는) EU를 떠나지만 경제적으로는 EU 단일 시장에 잔류하는 타협안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 수상인 테레사 메이의 일성은 브렉싯 민즈 브렉싯이라는 것이었고, 나쁜 딜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노 딜로 나가는 게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깜짝 놀랐다. 뭔 생각이지? 이 사람들 정말 하드 브렉싯 하려고 작정한 거야? 실제로 메이는 노동당이 제안한 유럽 관세 동맹 잔류안도 일거에 거절해 버렸었다. 브렉싯 민즈 브렉싯이므로...


그러다 엊그제 나온 딜 초안을 보니 사실상, 일시적이라고는 하지만 관세 동맹 잔류안에 가까운 딜이더라. 이게 머지? 그동안 한 말은 하드 브렉싯이었는데 정작은 소프트 브렉싯이네...? 이러니 온 나라가 난리가 난 것이다. 강경파는 강경파대로, 잔류파는 잔류파대로...


내 생각에 이번 딜은 영국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노동당이 이 안을 받아들여서 그냥 의회 통과가 되었으면... 애초 노동당 안과 비숫하니까. 그러나 노동당은 거부키로 결정해 버렸다. 그러므로 의회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이번 안이 의회에서 좌초되면 메이는 사임해야 하리라 본다. 그러면 또 지지고 볶고를 하겠지. 노동당은 이번이 조기 총선을 통한 집권 기회로 보는 것 같다. 


하나같이들... 정말 어떻게 하는 것이 영국 사회 전체를 위해 나은 길인가를 고민하는 정치 세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강경파의 경우에는 메이를 배신자라고 맹렬히 비난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대안은 없다. 그냥 노딜로 나가자고? 그러면 북아일랜드 문제는 어떻게 할 건데? 보리스 존슨 등의 강경파들은 이런 질문에 입을 다문다. 한심하다. 이런 사람들이 영국의 주류 정치인들이고 메이를 대체할 인물로 지지율 1위이다.


애초에 브렉싯 투표의 가장 커다란 이슈는 이민자 문제였다. EU에서 탈퇴해서 이슬람 이민자들, 난민들 받지 말자! 그러나 EU와 이슬람 이민자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유럽의 경계 근방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난민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다. 터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등. 수십 만 명의 난민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그들 나라에 비하면 고작 수천 명 수준인 영국은 힘들다고 말할 꺼리도 없다. 더군다나 그 난민 문제의 시발이 이라크,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대대적인 군사 공격이었고, 영국은 그 주축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영국이 EU를 나가면 난민 분담이라는 책임을 온전히 회피할 수 있을까? 턱도 없는 소리.


물론 EU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 특히 폴란드 사람들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아우성은 많았다. 그래서 폴란드 사람들이 많은 곤혹을 치루었고, 이제 폴란드 사람들은 영국에 잘 안온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 그 빈 곳을 메우게 마련이다. NHS는 만성적으로 간호사 부족에 시달린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간호사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동유럽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동유럽 노동자 유입에 대한 여론이 안좋아지자 그 프로그램을 갑자기 폐기한다. 그러면 여전히 부족한 간호사 인력은 어떻게 확보하지? 필리핀에서 간호사를 데려 온다! 뭐 하자는 건지...?


어제도 라디오에서 어떤 할머니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하드 브렉싯을 주장하더라. 예전에 테레비에서 본 가난한 썬더랜드 지역의 아주 가난해 보이는 할머니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치과 치료도 제대로 못받을 정도로 삶에 찌들어 사시는 듯 보였는데, 브렉싯을 통해 영국의 주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시더라. 이런 분들을 비웃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 분의 삶에 찌들은 행색과 그분이 입에 올리는 거창한 이념 사이의 관계가 결코 우발적인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거부하기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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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대한 항공 비행기에서 본 영화. 로드 무비이자 로맨스 영화이고 303은 주인공이 운전하는 구식 캠핑카의 모델 이름이다. "비포어 선라이즈"의 유럽 영화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이나 미국에서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든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 남녀의 외모가 될 것이다. 나머지는 솔직히 양념에 불과한 것이리라. 이 영화에서는 두 젊은이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큰 재미이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것이 맞고,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둘이 서로의 마음을 잘 고백하고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를 안절부절하며 지켜보게 되는 영화.어떤 점에서는, 그러므로 동양적인 영화. 영국 집에 돌아와서 DVD로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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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천 공항 서점에서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사게 되었다. (공항에서 부치는 짐 중량이 초과되어 책 몇 권을 빼내야 했고, 그 책들을 담을 봉지가 필요했는데, 마침 서점이 눈에 보여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다 읽었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걸 도대체 누가 읽지? 나는 왜 이걸 읽고 있지? 책 뒷면을 보니 반년 동안 16쇄나 찍었단다. 도대체 믿기지 않아. 누가 사 본 것일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들을 읽으면서 한국 문학의 위기를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 한숨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아무런 영감도 없고... 한 마디로 엉망인 작품들. 이런 것들이 가장 우수한 단편들로 선별된 것이라면 그 위기의 깊이는 헤아리기 무서울 정도일 수도 있다.


예컨대, 귀촌 문제나 용산 참사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도 있어서 이 작품집이 당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작품 선정에 있어 그런 점들을 고려한 것도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작가들이 그런 주제를 다룰 역량이 너무도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정말이지 심각한 문제다.


또 하나, 이른바 한강류라고 할 만한 문체가 너무 많았다. 신경숙류에 이어서 이제는 한강류...-.- (물론 한강이 그 문체의 창시자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강식의 문체를 극도로 혐오한다. 책상 머리에 앉아서 관념만으로 현실을 묘사할 때, 그렇게 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기에 현실을 뭉뚱그리는 매우 게으른, 혹은 매우 부정직한 기술 방법. 이런 기술 방식이 왜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유행을 타는 것일까?  


한국에 갈 때마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본다. 대표적으로는 음악. 퇴행하는 곳이 있다면, 소설 분야를 대표적인 예로 들어도 되겠지? 조정래 등 문단 대가들의 최근작만 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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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 주 정도 한국에 갔다가 지난 월요일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 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 들렀던 카페가 기억에 남아 근처로 안경 맞추러 간 김에 들러 보았다. 설마 없어지진 않았겠지... 걱정했었는데 건재하더라. 내가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데, 유럽 나라들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먹어 본 것보다 훨씬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파는 곳이었다. 여전히 맛이 있었고, 아주 작은 카페였지만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장사가 되는구나... 그러니까 운영을 계속 할 수 있었겠지... 사장님이 아주 젊은 분이라 창업에 내몰린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오면서 카페 상호를 기억해 두었다. 카페 루시아. 금호역 근방에 있다.


검색을 해보니 커피가 맛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 있는 것 같더라. 라떼나 플랏 화이트 사진을 보면 사장님이 커피를 제대로 배운,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은, 최근에 이곳 영국에서 주말마다 가던 카페를 바꾸었다. 플랏 화이트 커버 아트를 구름처럼 뭉게지게 해서 내주는데, 굳이 그걸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 플랏 화이트는 섬세한 손목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국 커피 값이 너무 비싸다. 영국보다 더. 인천 공항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를 사 먹는데 사천백원이나 했다. 그래서 이후에는 주로 지하철역 자판기 커피를 먹었다. 그러다 한국을 떠날 즈음해서 집 근처 개인 커피점에 갔는데 거기는 에스프레소가 2000원이었다. 적당한 가격. 진작 알았으면 자주 갔을 텐데...)


(한국에서 차에 대한 책도 사오고, 이 참에 커피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불가능.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사고가 한 다섯 배는 느려지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자마자 머리 속의 안개가 확 걷히는 경험을 하고나서는 커피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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