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1.
본문앞 '책을 펴내며' 는 서경식이 쓰고, 본문 뒤 '책을 펴내며'는 김상봉이 썼다. 

나는 '역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혹은 '신', '역사적 필연성', '민족', '민중'......무엇이라 부르든, 그 어떤 것인가에 의해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어서 싸워온 것이 아니다. 역사적 필연성이 있든 없든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싸울 수 밖에 없으니 싸워온 것 뿐이다. 싸워야만할 현실이 존재하는 이상, 지금 싸움을 그만두어야 할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서경식은 만남을 시작하고

본문 뒤 책을 펴내며를 쓴 김상봉은 마지막 까지 사람을 긴장시킨다.
폭력의 시대에 서승 선생 같은 분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시대에서 비굴함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잘난 척해봐야 어차피 인간은 그런 것이라고, 폭력 앞에서는 비굴하게 머리를 굽히는 것이 상책이라고, 노예들의 합창을 소리 높여 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한주전자, 바늘 하나면 굴복시킬수 있는 인간은 그 모든 약함에도 불구하고 또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차라리 난로를 끌어안고 죽을 지언정 불의한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니!

생각하면 내가 그 야만적인 폭력의 시대에 태어나 비굴함이 아니라 도리어 정신의 용기와 인간의 긍지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나라의 역사가 낳은 수많은 서승들 덕분이었다.



2.
고통과 슬픔이 다른 고통과 슬픔을 만나 이루는 연대와 행동, 그리고 해방  
겨자씨처럼 밑에서 올라오는 씨알의 부름에 때론 목숨걸고 응답할수 있는가

서경식과 김상봉의 대화는 쉽지않다.
'서로'라는 말이 무슨'뜻'인지 거듭 나누어야 한다.
내가 하는 말이 '우리'가 소통하기에 적절한지, 나만의 언어가 아닌지.
그런대 타자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데....
식민의 땅, 제국주의 아래 자기찾기를 위한 엄격함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달래주는 힘이있다.

꼬장꼬장하게 결코 쉽게 희망을 말하지 않는 두사람은 마치 고슴도치 같다.
서경식은 몸을 웅크리고 말아 가시뒤로 숨는 고슴도치이고
김상봉은 누군가를 찌르기위해 바늘을 곤두세운 고슴도치다.
왜, 우리는 우리에 대해 말하며 날카로운 가시를 옷처럼 입어야 할까.

우리에게 5.18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작업은 이렇게 어렵다.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며 역사앞에서 검증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서경식과 김상봉은 서로 벌거벗고 들여다보자고 한다. ㅎㅎㅎ
고통에 대해 고수들이다. 이 두사람.

울고 싶어도 울수 없는 씨알들을 위해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고 학자라고 함석헌 선생이 말한다.
그런가? 그런대 싸움은 대신해 줄수가 없는 거거든.
씨알들의 싸움, 그속에서 내가 씨알이 되지 않는다면 대신울어 준다는 것 또한 기만적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함석헌은 읽어봐야 겠다.

감옥에 갇혀 투쟁하는 두 형때문에 서경식은 집요하게 스스로의 삶을 해명하고 검증해야 했다.
어딘들, 어디에 선들 두형의 무게를 내려놓을수 있었겠는가.
석방될때까지 형들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무엇이고 회의하며 의심한다. 확신을 갖고 규정짓는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끊임없이 고통을 기억하는 자의 부유하는 삶의 느낌. 그런 슬픔이 서경식에게 있다.

어려운 대목도 있고,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을 때도 있다.
질문은 엄중하고, 무엇하나 가볍게 쉬 넘어가지지 않는다.
무엇이 씌어있는지, 어떤 책인지 말하기도 나의 내공으로는 어렵다. 다만
노무현을 지나 이명박 아래서 촛불항쟁을 지난지금, 두사람의 대화를 들어야 한다.
쉽게 비관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의 공동체, 삶을 위해.

김상봉은 씨알을 위한 학자이고 서경식은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순교자같다.
거창한 이론, 논리, 학문의 테두리가 아니라
서경식과 김상봉, 스스로 자신들의 삶에서 끄집어내 닦고 벼러온 이야기들. 
우직하고 꼼꼼하고 힘이있다.
슬픔과 고통, 부끄러움에 대한 집요하게 성찰하며 나는 누구인지 묻는다.
너무 집요하고 진지하여 따라읽다보면 나처럼 내공이 부족한 자는 가끔 진이 빠진다. ^^

김상봉의 본문 마무리 말에 동의한다.

함부로 '그것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우리가 받아들일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겁니다. '함부로 현실주의자라고 뻐기지 말라'는 겁니다. '너희들 현실주의로는 끝끝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한번도 급진파였던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3.
현명하고 엄격한 두 어른의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돌베개에서 좋은 책을 기획했다. 뚝심있는 고집이 보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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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노트북 2
도리스 레싱 지음, 안재연 외 옮김 / 뿔(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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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상위 1%의 자본가인 아버지와 공산주의자 어머니를  둔 아들이 자살을 시도한다.
죽지않고 시력을 잃는다.
세상의 부조리와 격투가 부와 모사이에서 이루어질때
그들이 서로 상대편을 헐뜯으며 그흔한 부부싸움을 하고 이혼을 할때
아들은 숨쉬기 힘들구나.
이 설정은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한대, 굳이 속뜻을 읽으려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3권에서 전개를 좀더 지켜보기로 한다.  

 
2.
1권의 놀람에 이어 2권에서는 익숙해진 그녀의 삶을 읽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의아한것은
'왜 자유로운 그녀는 행복하지 않은가?' 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왜 그녀의 사랑은 행복하지 않을까?' 와 같은 말이었다.
이 두 질문이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안 순간 솔직히 실망했다.
자유로운 그녀는 왜 '사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단 말인가.
자유롭고 명석한 그녀는 왜 하필 사랑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단 말인가.

사랑을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상대가 늘 유부남이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사랑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녀는 끊임없이 해석하고,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안테나를 세운다.
그의 의도속에서 유부남이면서 바람피우는 남자의 허영과 불안함을 더듬는다.
만약 유부남과 연애하는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싱글과 연애하면된다.
그게 도대체 무슨상관이라고 심지어 '자유로운' 그녀가 연애문제땜에 정신분열상태가 된단말인가.
스웨덴 한림원은 이 소설의 가치중 하나를 '20세기식 남녀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21세기식 남녀관계'는 이렇기 않기를 바래.
이미 아내가있는 남자와 연애하는 '자유로운' 여자의 의식을 집중탐구하는 짓은
20세기에 끝내길 바란다.

아니, 뭐, 물론 그녀의 사랑이 진부할만큼 21세기의 사랑이 다른 모습은 아니다.
그냥 나는 쫌 피곤하다.
그것이 불륜이든 스캔들이든 사랑이든, 강박있는 애정행각은 피곤하다.


3. 
그녀의 상처 속에는 평등한 세상, 계급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가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왜 독재자 스탈린을 쉽게 비판하고 당을 떠나지 못하는지, 그 안타까움
현실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포기하기 싫은 이상과의 부조화에 당혹스러운 마음을 그녀는 잘쓴다.
이거야말로 역사속에 벌어진 집단적 정신분열이다.

스탈린이 영국공산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듯이
사회주의의 소련의 붕괴가 남한의 진보인사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현실주의자가 되어 이상을 버렸다.
이상을 버리기만 한것이 아니라, 권력의 언저리로 가서 구린 정치인이 되었다. 천박하다.
아마도 나는 그것을 써야 할 것이다. 
이상을 버리고 현실주의자가 되는것은 비참한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여전히 비참한 현실을 바꾸는 것은 이상주의자의 꿈이라는 것을. 그것이 정의라고. 
문제는 여전히 소외된 자들의 현실이다.
 
영국공산당에 홉스봄이 있다는 걸 알고 감탄했는데 레싱도 있었구나.
지적이고 예민하고 진지하다.


4.
도리스 레싱의 장점은 자기 삶에 대한 근면하고 성실한 관찰이고 솔직함이다. 
자신의 사상과 삶과 사랑과 일상을, 모든것을 기록하고 해석하려고 긴장한다.

그리하여 20세기 영국 지식인 여성의 삶의 한 표상을 스스로의 삶으로 펄럭인다.  
그녀의 치열한 탐구정신이 깃발로 꽂힌 영토의 거름이 되었다.
아무도, 어떤 남자도, 어떤 권위도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거나 밑거름이 되어주지않은 듯하다. 
모든것을, 남자와 권위, 권태로운 일상의 유혹, 모든것을 부정한 후 딱지앉은 그녀의 삶이 펄럭인다.

그녀의 영토위에 서본다.
21세기 자유로운 여성의 등을 두드려주고 안아주는 땅이다. 그녀의 깃발 아래는
여전히 돌부리걸리고 바람부는 황무지가 많지만, 매혹적인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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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초능력의 두소년이 등장하지만, 그소년들은 사건의 밖에서 왜소하다.
왜 그랬을까. 마음에 안든다. 그 소년들이 주인공인대,
심지어 이야기하는 자는 이야기를 시작하며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한다.
글쎄, 내 생각에도 고사카 쇼고가 주인공은 아니라구.
그런대 왜 주인공인 두 소년을 계속 밀쳐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냐구.
초능력의 두소년이 등장하지만, 두소년은 이야기의 밖에서 희미하고
납치와 범죄가 있지만 사건의 추리가 중요하지도 않다.
짜임새 있는 구성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상황은 억지스럽고 마무리는 후딱 해치운다.
인물들 사이의 마음의 흐름이나 교감이나 그런것도 딱히,
이도저도 아닌, 그저 그런.

미미여사의 필담이 워낙 좋아서 지루하지는 않다.  
미미여사 스런 몰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일본도 역시 무슨 상 수상작들은 오히려 실망스런 경우가 제법 있다.  
기대를 부추겨 놓기 때문이라기에는 석연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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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매달린 여우의 숲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종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1.
재밌다.
기발한 자살여행 이후 두번째 파실린나.

삶에 대한 '직관'은 원래 '여유'를 동반하는 걸까?
부조리는 뭐고, 악은 뭐고, 선은 뭐고.....사는건 뭘까.
분노와 한숨이 아니라 솔직하고 발랄한 유머와 재치를 적절하게 배합해
파실란나가 말하는 삶은 요지경 속이지만 빛난다.
보잘것 없는 사람들의 별볼일없는 삶에 대해 그의 시선은 따듯하고 애정은 깊다.
닮고싶어.

거짓말장이 사기꾼 도둑과 속빈 주정뱅이 장교를 실제로 본다면 분명 비호감인대
책장을 넘기며 읽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어느순간 ㅍㅎㅎㅎㅎ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럴수가.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에 너무 분노하지 말라고
바보같지만 속는셈치고 열심히 살자고, 그게 빛이 난다고
사는게 뭐 별거 있냐고, 우리모두 힘내자고,
내 어깨를 두드려 격려한다.

핀란드의 눈보라치는 숲에서 세상을 꿰뚫어 웃고있는 그가 부럽다.


2.
금괴가 왕창 생기면 뭘할까?
돈을 물쓰듯 쓰면서 빈둥빈둥 우아하게 놀아봐야지.
평범한 사람들이 요런 꿈을 꾸는 것은 국경을 넘어 똑같나봐. ^^
그게 뭐어때서. 우리라고 거짓말도하고 사기도쳐서 금괴좀 갖고 놀아보면 왜안돼?
그런 꿈정도는 얼마든지 유쾌하게 꿀수있쟎아.
자, 여기 별볼일없지만 순박한 악당들과 금괴가 있어. 나쁜놈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얘기라구.
파실린나가 유쾌하게 제안한다. 너도 이런 꿈 꾸쟎아.

네, 맞아요. 나도 금괴 갖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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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탑 한국문학의 재발견 작고문인선집
박진영 엮음 / 현대문학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1.
1946년 9월부터 서울중앙방송국 라디오로 성우들이 읽어준 소설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우리말로 번안했는데 히트쳤단다.   
해방공간의 격변기에 대중의 사랑을 받은 라디오 소설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국경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과 박진감넘치는 빠른 전개
음모와 배신과 복수, 가혹한 운명의 장난 뭐 이런것이 유감없이 잘 섞여있다.
낭독하는 성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서울시민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네.

흥미진진하게 읽어주기위한 문어체를 그대로 느찔수 있다.
음-- 낯설지만 친숙한 느낌, 언제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음성의 느낌  

재밌다.
봉룡과 옥분이, 백진주, 거기에 배이름은 태양환이다.
ㅎㅎㅎㅎㅎ 촌스러운 것이 사랑스럽다.


2.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해방후의 격변기에 김내성의 소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를 알겠다.

좌익이 우세했으나 미국을 등에없고 과거 친일파였던 우익이 판정리한 남한에서는
소위 순수문학이 권위를 모두 독점해 버려서 대중소설은 삼류로 정리해버리고
좌익이 판정리한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아니라면 폐기되었으니
대다수의 민중이 굶주리는 시기에 상류층을 주인공들로 호텔에 파티에 호화저택, 사냥, 해외여행
자본주의 사회의 꿈이란 사치와 허영을 포함하는데다 소비하기에 걸맞는 몸을 찬양하는법
사회주의자들의 꿈과는 거리가 멀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김내성의 낭만적인 상상력은 인정받지 못한게지.

그러나 대중들은 열광하였으니 내보기에 김내성은 천재다. 
진주탑을 토대로 2010년 현재에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다.
각장이 드라마 한회의 분량으로 흥미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볼거리가 풍부한대다
등장인물들은 개성적이다.
복수극은 최근까지 심심챦게 변주되는 주제이고
그만큼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기본 스토리의 힘이있다.  

해방의 감격과 빛나는 혁명, 비린 전쟁과 극단적인 독재를 경험했어야 하는 지친 대중들에게
김내성의 작품은 비우고 쉴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나같아도 좋아했겠어.

최근의 막장 드라마를 지지하지 않지만, 모든 드라마가 막장은 아닌것처럼
순수하다는 문학의 권위자들은 실은 권력와 구린내나는 악수를 하느라 더럽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도식적인 전개는 삶의 고통을 외면하여 답답하다.

김내성 드라마의 장점은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재미다.
어깨에 힘주고 가르치려하지 않고, 순수하다고 사기치지 않고 솔직하게 재미를 위한 소설을 썼다.
그걸로 충분하다.
1909년 태어난 사람이 우찌 이런 앞서가는 감각을 갖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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