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 가려 뽑은 함석헌 선생님 말씀
함석헌 지음, 김영호 엮음 / 한길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1.
함석헌 저작집 30권중 김영호가 가려뽑은 잠언록이라 해야 하나 명상록이라해야하나
사색이 있는 함석헌 다운 글들이다.
느리게 천천히 읽는 법문의 느낌이다.
어렵지 않지만 깊이있다.
글을 잘 다룬다는것은 이런것인가
가볍지 않고 단단하지만 화사하고 소박하다.

더러움이 무엇입니까. 세력있고 잘사는 사람들이 남 생각은 아니하고 저만 잘살겠다고 욕심대로 한 결과로 오는 찌꺼기 입니다.

물질의 더러움과 철학의 더러움 삶의 더러움이 이렇게 하나로 깨달아진다.

인생 끝이 차차 가까워 저쪽이 뚫려 비치게 됐는데, 세상은 어지러워져만 가서 마음이 슬프군요.

인생의 끝이 어느날 갑자기 눈앞에 닥치는 어둠이 아니라
차차 가까워 저쪽이 뚫려 비친단다.
서늘하고 편안하다.
사는것이 오롯이 냉정한 것이다.
내 끝이 저쪽에서 차차 다가오고 있는게다.


2.
3.1운동과 8.15광복을 거쳐 6.25 전쟁을 경험하고 다시 4.19혁명을 지나 유신독재를 살다가
광주에 이르는 한국의 현대사를 살아낸 모든 선배들은, 말그대로 격동의 시절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며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실천해야 한다는 신념을 붙들수 있었을까.

일제시대와 광복, 전쟁과 독재, 혁명과 다시 길고긴 독재.
이 극단적인 빛과 어둠의 경험을 거치며 죽은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살아 얼마나 무거웠을까. 사는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러니 그저 저하나 잘먹고 살자고 빼앗고 사기치고 거짓말하며 욕망이 염치를 버릴때
야만적인 인간을 확인하며 역겹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는것이 잘 사는것이라는 더러움이 횡횡할때 어디서 사람다운 길을 닦아내는 힘을 얻었을까. 

막막한 우주에 사람은 단 하나이다. 그것이 나다. '다른 사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알수도 없고 임의로 부릴수도 없다. 내가 아는건 나요, 내가 맘대로 할수 있는건 나요, 내가 죽여도 좋은건 나다. 나 뿐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씨알을 섬기는 것도, 결국은 나를 섬기는 것이다. 
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결국은 나다.  

혁명은 누가 하느냐, 내가 해야한다. 사회에 새 바람은 누가 불어넣느갸. 내가 해야한다. 나 아니고는 절대 될수 없다.

이것은 외로움인가 의연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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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쉽게 외면할 수 없다는게 그의 저주받은 운명이다. 작가라면 늘 아픈 눈을 뜬채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창문 유리에 얼둘을  바짝 대고 있어야 하고, 날마다 추악한 모습들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낡아빠진 뻔한 것들을 새롭게 이야기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글쓰는 자로서의 자의식과 소명의식이 강하다.
인도 중산층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폭력을 조직하고 선동하는 자로 바뀔수 있었던 힘이다.

이것은 오래된 브라만적 본능입니다. 즉 지식을 식민화하고, 그 둘레에 장벽을 쳐서, 그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것말입니다. 베다 힌두의 처세훈 '마누스므리티'에는, 달리트가 경전의 어느 부분이라도 엿들었다면 그의 귀에 납을 녹여 부어야 한다고 씌여있습니다. 인도가 바야흐로 정보혁명의 최전선에 나서려고 하는 이때, 국민 중 3억이 문맹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달리트는 불가촉천민이다. .
잘난 귀족들이 못난 평민들을 교육시키지 않는것은
교육을 독점하는것이 권력과 힘을 독점하는것이니까.
그래서 늘 달리트가 교육되는것을 두려워 한다.  
귀에 납을 녹여 부어 일찌감치 너는 배울수 없는 자라는 것을 각인시키지지 않으면
결국 그 달리트는 귀족을 목을 베러 올것이다. 그걸 브라만들은 아는거지.    

그녀는 이른바 식민지의 딸이 아닌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미제국주의의 가장 큰 식민지 인도의 딸.
그래서 노예의 느낌을 그녀는 잘안다.
나도...... 잘 안다.


2.
저항하는 인도의 시각을 처음 접했다.
그녀는 아마도 영어로 말하고 쓰나부다. 그런 느낌.

카스트제도와 불가촉 천민, 쓰레기 더미속에서 태어나 살다가 방치된채 죽는 아이들
이 몰상식한 계급사회 내에 저항세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그래도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민중적으로 이끈 간디의 후세들이 아닌가.
그런데 로이는 간디보다는 노엄 촘스키의 딸처럼 보인다. ㅎㅎ

노엄 촘스키는 미국 정부와 언론과 재벌을 비판하기위해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여 거대한 트러스트의 벽에 구멍을 내온
냉정하지만 낙관적인 여유가 있는 현자이다. 그의 딸이다. 로이는. 
 
명쾌하고 씩씩하게 선동을 잘한다. 젊고 단호하게 감정에 호소한다.
그녀의 말이 설득력있는것은 구체적인 자료와 통계를 인용하며 어렵지 않게 말하면서도
전지구적인 배경속에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스로 정의로운 자의 자신감이 경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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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선 - 쉼, 또 한 번의 쉼, 비움을 통한 채움의 역설
이현주 지음 / 소금나무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1.
지구환경과 인간을 살리는 자연스러운 채식이야기
쉽고, 실용적이다.
채식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철학부터 방법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알려준다.


2.
나도 그렇다.
광우병 소고기 반대 투쟁이후 나도 가능한 육식을 먹지 않는다.
광장에서본 영상속에 대량생산되는 소들에게 인간이 하는 학대와 학살이 끔찍하고 불쌍했다.

그후 내가 선택할수 있을때는 육식을 먹지 않는대 그다지 효과가 없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먹는경우 육식을 빼면 먹을만한 것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기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생선은 피해가기 어렵더군.
사실 문제는 고기가 아니라 술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려 디립다 술을 먹으면서 고기를 안먹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더라.

워낙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했었는대 정토회 깨달음의 장 참여이후 더욱 채식이 좋다.  
내가 찾아 먹는 경우 고기를 먹지는 않는다.
아침을 먹지 않는것, 채식과 소식이 내몸에 편하다.

완전 채식을하고 산책을 즐기며 천천히, TV와 핸드폰을 끊고 살면 좋을것 같다.
언제쯤 결심하고 용기를 낼수 있을지 모르는대
어쩌면 동경만하고 지금처럼 살다 죽을 확률이 더 높기도 하다.


3.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지 않다. 인간이 동물보다 지능적으로 잔인하다.
이윤을 위해, 짧은 시간에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공장식으로 만들어
동물에게 행해지는 학대는 끔찍하다.
소는 DNA구조가 인간과 95% 동일하다고 하는데,
동물학살과 학대에 대한 원망이 조만간 인간에게 복수할 것이다. 마땅히.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는 능력이 인간적인 철학의 핵심인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생명있는 모든것'의 고통에 감응하고 실천하는것이 필요하다.
생명있는 모든것은 인간처럼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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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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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제도 소재도 철학도 이야기의 흐름도 모두 일본스럽다.
악한이라도 마음쓰이는 연민이 느껴지는 소박한 이야기들.

기묘한 팀이다.
악령을 잡는 퇴마사의 느낌이지만
악령이 아니라 악한 일을 범하고 슬픈 사람의 마음을 쫓는다.
함부로 사람을 살인하고 강간하고 패악질을 일삼는, 악령보다 무서운 사람을 쫓는셈인대
여기에 잡히는 사람들은 무섭고 흉악스러운 느낌보다 불쌍하다는 느낌이다.
이 사람들이 잡히는 이유가 쫓는자의 총이나 칼이나 힘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속에 맺힌 안개같은 슬픔때문이다.
살다만난 독한 슬픔에 눈이멀어 덧에 걸리고 헛것이 보인다.
독하게 마음먹어 보지만 이성을 잃고 허둥댄다.
지나온 날들이 꿈같이 덧없다.
독특한 감성이다.

현대적인 백기도연대의 에노키즈 팀도 일종의 해결사인대 시끄러워 정신이 없는대 비해
에도시대의 마타이치팀은 배경처럼 이야기에녹아 조용하다.

항간에 떠도는 본래의 기이한 이야기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에는
결국 악마나 유령이 있는것이 아니라 욕망을 어쩌지 못하는 슬픈 인간의 마음이 있다.  

너무 독하지 않고, 어깨에 힘도 많이 빠져 이야기가 스스로 자연스럽다.  
지금까지본 교고쿠 나쓰히코중에는 가장 좋다.
맛있는 옛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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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트롤 - 타임 패트롤 시리즈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4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1.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운명을 바꿀수 없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운명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운명을 바꾸면 안된다'

어떤 명제를 택하든 그 논리가 일관되어 있어야 설득이 된다.
이 명제들 사이에서 폴 앤더슨은 오락가락 흔들리고 그때그때 다르다.
기본적으로 그는 '본래의' 역사가 있다고 말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타임패트롤'이 있다.
과거의 시간으로 가서 역사를 바꾸어버리면 그 시간이후 인류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감시하는 자들이 패트롤이다.

황당한건 이 패트롤, 경찰들이 지 연인을 위해 번번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운명을 바꾼다.
그러면서 이런 행위를 자꾸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역사는 사소한 일로는 안바뀌려는 성질이 있어서 한두명이 죽고 살고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유전적 요소와 다른 조건들의 변화로 큰 줄기의 역사는 그냥 존재한다고
시간경찰들이 지 연인들을 살릴때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런데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에서 스키피오 부자가 죽었더니 역사가 전체적으로 다 바뀌었다.
그래서 똑똑하고 용맹한 패트롤 전사 두명이 가서 도로 살린다.
그랬더니 다시 그후의 역사가 다 바뀐다.
한쪽 역사를 살리기위해 이미 존재했던 한쪽 시간선의 역사를 죽인다. 고뇌하는 척하면서.


2.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여러 시간선의 역사가 각각 다르게 존재할수 있었다면 그중에 하나 '본래의' 역사의 기준이 뭔가?
이미 형성된 역사의 시간흐름이란 '내가 소속된' 시간흐름일 뿐이다.

참으로 아메리카 백인스러운 자기중심성이다.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본래의' 역사가 있는데 그것은 '나의' 역사라는 말이다.
상대적인것을 '나'를 위해 과감히 제거하는 이런 사고가 불쾌할뿐 아니라
스스로 자기 논리를 망쳐 재미가 떨어지게 한다.

과거의 시간대에 대한 연구와 고증을 방대하게 충실히 하려는 노력은 보이는데
오만가지 잡다한 지식이 그럴듯하다고 해도 재미없다.

패트롤이라는 것들이 지 연인을 위해서는 기꺼이 시간의 운명을 바꾸면서
시간의 운명을 바꾸려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죽여버리는 이 논리적 모순이 참 싫다.
그냥 시간을 왔다갔다 하면서 연인과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솔직히 그렇다고 말하면되지
무슨 인류의 역사를 지키는 패트롤이라고 어깨에 힘 꽉주고 사람들 죽이며 피곤한척하는데
참...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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