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역사 - 최초의 아내 이브부터 <인형의 집> 노라까지, 역사 속 아내들의 은밀한 내면 읽기
매릴린 옐롬 지음, 이호영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1. 

한 사회를 사원에 새겨진 부조나 정부 문서에 기록된 공식적인 얼굴로 판단하는 것과, 여성들이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바를 주관적으로 기록한 시, 편지, 일기, 회고록 등에 나타난 그 사회의 맨 얼굴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매릴린은 방대한 기록을 확인하고 인용한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미망인이 남편의 집을 떠나게 됐을 경우 결혼 했을때 받은 옷가지와 보석, 혹은 지참금과 혼수를 챙기지 못한 채 몸만 나가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자식들은 이 물건들을 어머니에게 돌려줄 때 종종 늑장을 부렸다. 피렌체의 고문서 보관소에는 지참금을 돌려주지 않는 자녀들을 상대로 미망인이 벌인 재판 기록이 잔뜩 쌓여 있다. 

여성의 위치는 가정안에만 있었다. 공적인 영역에 그녀의 지위는 없었다. 

오로지 집안에서 딸이고 아내고 어머니라는 역할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마음대로 이혼 할 수 없을 뿐더러 이혼당하면 쫓겨나고, 미망인이 되어도 자식들이 재산을 다 가져갔다. 

남편은 그녀를 소유했고 처벌 할 수 있어서, 그녀는 매 맞으며 살았다. 

참, 집요하게 가혹하다. 

그러니 여성의 역사가 아니라 아내의 역사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에서 탈피한 계몽 사상의 시대인 18세기에도 사람들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을 조금도의심하지 않았다. 


"남자는 강하고 적극적이어야 하며, 여성은 약하고 수동적이어야 한다. 여성이 지녀야 할 가장 바람직한 덕성은 친절함이다. 여성은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부당한 일과 잘못을 불평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일찌감치 배워야 한다."

루소의 <에밀> 내용중 일부를 옐롬이 인용한다. 

참 잘나셨다. 루소. 저 책이 아직도 필독서 중 하나다. 


18세기 미국 여성 세라 캔트웰의 신문광고

존 캔트웰은 나를 신용했던 모든 사람들을 향해 경고하는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내는 후안무치한 짓을 저질렀다. 그는 나와 결혼하기 전에 돈 한푼 없던 사람이다. 그가 언급한 침대와 식탁은 내가 결혼 할 때 가져간 것이다. 그는 결혼할 당시 침대도 식탁도 없었다. 나는 가출한 게 아니라 그가 때리자 그를 피해 도망쳤을 뿐이다. 


이 광고들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로 한편의 소설을 써도 될 정도다. 

21세기 한국에 사는 여성도 저 광고뒤에 숨어 있는 한편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다. 

신문광고를 내며 부부 싸움을 했구나. 캔트웰에게 저것은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을 거다. 

저런 신문광고를 내기까지, 아니 저 집을 뛰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번민이 밤이 있었을까. 


지금부터 70년 전인 1851년에 남부에는 흑인 노예제가 있었고, 미국 전역에는 마누라 노예제가 있었다. 열네살짜리 계집애가 대부분의 시간을 술 마시는데 보내는 마흔네 살의 남편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지금도 그런 남편과 살아야 했던 소녀 시절을 떠올릴 때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는 술에 취하면 자주 나를 죽이려고 했고 내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느낄 때까지 매질을 하곤 했다. 


1800년대 부터는 특히 여성들의 일기, 편지의 직접 인용이 많다. 

이런 개인적인 기록들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부럽네. 


전쟁전 1919년에 조선 산업 전체 피고용자의 겨우 2퍼센트만이 여성이었다. 과감하게 작업장에 나온 여성들은 휘파람과 야유 세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조선소에 많은 여성이 고용되면서 통계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급변했다. 1944년에는 조선소 노동자의 10~20퍼센트가 여성이었으며,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쩔 수없이 여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모든 기득권 있는 자들이 힘없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을 배울때는 '어쩔 수 없을' 때 이다. 

스스로 알아서 존중해주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어쩔 수 없을때 조차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남자들을 아직도 많이 본다. 



2.

여성이 성공하는데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그녀가 절대로 아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앤 레아 메리트의 말에 공감한다. 

그래, 나에게도 마누라가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편한 삶을 살겠지. 

물론 나는 노예를 갖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마누라도 갖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갖고 싶지 않은 것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다른것이다. 


생생한 인용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매릴린이 방대한 원자료를 검토하며 큰 일을 했구나. 


영국과 미국 아내의 역사를 보았다. 

아시아 아내의 역사를 보고 싶다. 


매릴린이 들어가는 글에서 한말을 옮기며 마무리 한다. 

불행히도 아내는 남편에게 봉사하고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 들볶아도 괜찮다는 낡은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 뉴스를 보면 아직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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