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 소년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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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기서 우리는 단 한번도 자기 냄비와 숟가락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여덟명이 한꺼번에 냄비 하나에 달려들었죠. 아프가니스탄은 결코 미스터리 가득한 모험의 땅이 아니예요. 아프간 하면 죽어 누워있던 한 농부가 떠올라요. 깡마른 몸에 커다란 손을 가진 농부가요......총격이 시작되잖아요. 그럼 간절이 빌게 돼요. (누구한테 비는지는 나도 몰라요. 아마도 신이겠죠) 땅아, 갈라져서 나를 숨겨다오. 돌아, 갈라져 다오......"


똑같이 전쟁을 하고 죽이고 영혼이 파괴되는데, 기억하는 품위가 러시아는 다르다. 

이 다른 품위가,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 질 수 있을까. 

이 품위가 상처받은 영혼들의 치유에 도움이 되는 걸까.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했던 소비에트의 젊은이들은 대조국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과 다르다. 

소비에트가 침략군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러시아에 침략을 해 인민들을 죽이니 이 적들을 물리치러 참전하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인다는 명분을 준다.

설사 이 전쟁에서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죽은 영웅이 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르다. 

세계혁명의 임무를 수행하는 줄 알고 가서, 죽이고 살아왔더니, 

애들도 죽이고 여자도 죽인 살인자 취급을 받는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목숨을 담보로 조국으로부터 사기 당한 셈이지. 

제 정신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명분없는 전쟁이라 환멸과 야만이 더 심하다. 

명분없는 전쟁이란 이유없는 학살이고, 내 생명을 왜 위험속에 두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하는지 모르는 전쟁이다. 


"또 어린 아프간 소녀가 있었어요......아이가 소련 병사들한테 사탕을 받아 먹었어요. 그러자 다음날 아침, 거기 사람들이 아이의 두 손을 잘라 버렸죠."

미국이 침략한 베트남전쟁만 있는 줄 알았더니, 소련이 참략한 아프간 전쟁도 있었구나. 왜 나는 여태 몰랐을까. 

아프간 전쟁을 처음 본다. 



2.

"---- 카라반을 기다려요. 한번 매복을 나가면 보통이 이삼일이에요. 뜨거운 모래속에 누워서, 필요하면 그래도 용변도 봐야 하죠. 그렇게 삼일이 지날 때쯤이면 거의 정신이 나가요. 증오심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라서 제일 먼저 나타닌 대열에 미친듯이 총질을 하게 되죠. 총격을 마치고, 모든게 끝난 후에야 깨달아됴. 카라반은 그저 바나나와 잼을 운송중이었다는 걸요. 그래서 다 먹어치웠어요. 평생 먹고도 남을 그많은 양의 단 것을요......"

전쟁은 미친짓이다. 

누가해도 미친짓이다. 

정의로운 전쟁 따위는 없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오래전 2차대전의 얘기를 회상해서, 30년쯤 지난후에 기억을 꺼내어 들려준다. 

이연소년들은 바로 몇년전, 길어야 10년쯤 전의 이야기다. 아직 과거가 된 시간이 아니다. 

모든것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냄새도, 소리도, 짜증도, 두려움도, 억울함도. 


어머니들이, 그것도 바로 얼마전에 아들의 시신이 담긴 차가운 아연관을 붙잡고 몸부림치던 그 어머니들이 학교들과 군사박물관들을 찾아다니며 '조국 앞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고 소년들에게 호소한다. 

저 바보같은 엄마를 어쩌면 좋으니. 잔인한 세월이다.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은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앞에서 다른 아들들에게 전쟁에 나갈 것을 호소하다니.

스베틀라나의 두번째 전쟁이야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그녀의 작품들을 더 찾아 읽고있다. 

아연관, 왜 관을 아연으로 만들었을까? 관은 원래 목재, 나무로 만드는 것 아닌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9년 1달 19일동안 계속된 전쟁.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으로 인한 전쟁이야기. 

여자청소부들과 도서관 사서들, 호텔 직원들이 새로 아프간에 오는 걸 보면서 우린 처음에 도무지 이해를 못했어요. '겨우 두세개 조립식 건물 때문에 청소를 새로 부르고, 20여 권밖에 되지 않는 낡은 책들 때문에 사서를 새로 들여? 왜 이런 전쟁터에 여자들이 수천 명이나 필요하지? 무엇때문에?' 글쎄 뭐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점잖게는 설명을 못하겠어요......교양있는 말로는......쉽게 말해 딱 한가지 이유예요......남자들이 미쳐버리는걸 막기 위해서죠......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그 여자들을 멀리했어요. 그 여자들이 우리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도 그랬어요.

미쳐버릴 만한 상황에 소년들을 밀어넣고, 미치지말라고 섹스할 수 있는 여성을 공급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전쟁이 여성을 어떻게 공급하는지. 

미군 옆에는 창녀촌이 있고, 일본군 옆에는 위안부가 있었고, 소비에트 군사들 옆에는 청소부와 사서들이 있었군. 



3. 

책 마무리에 아연소년들 책에 대한 재판 과정과 내용이 붙어 있다. 

스베틀라나를 고소한 사람들의 말과 글, 재판부의 입장, 

아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어머니, 자신의 진술을 뒤집어 부인하는 참전 군인, 그리고 매국노라는 손가락질

판결문과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글 

이 재판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두번째 전쟁이다. 기억과 정의에 대한 전쟁. 

온 나라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고 논쟁하고 고민한다. 

그렇게 느껴져. 

스베틀라나의 작품에 대한 소비에트 소속이었던 국가 국민들의 응답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녀 혼자 쓴 글이 아니라, 이 다큐 문학은 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을 복원해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다. 

한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동시대를 산 많은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과 합동의 마음이 이루어진 작품 

러시아.



4.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주장했던 사람들과 정치권 지도자들은 약탈자로서의 본심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살인 명령을 거스를 용가기 없는 사람들을 모두 범죄의 공범자로 만들었습니다. 살인이 그 어떤 '국제의무'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무슨 그따위 의무가 있답니까!"


1970년대 우리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었다. 

반공의 기치를 내걸고, 베트만 인민들을 학살하고, 돌아온 병사들이 온전한 영혼이었을까. 

우리는 왜 참회하지 못할까. 

우리는 왜 파병되었다 시체로 돌아온 군인의 어머니의 말을, 돌아온 병사들의 고통스런 증언을 듣지 않았을까.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아직도 보수의 선봉대가 되어 여전히 국가에 이용당한다. 

부끄러워. 

우리는 증오 없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증오 없이 사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전에 대해 성찰했다면, 우리는 좀 다른 사회에 살고 있을까. 

나의 모국 대한민국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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