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아이 2
에리크 발뢰 지음, 고호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1.

게르다는 드문 증상을 앓앗다. 바로 거짓말을 못했다. 마그나가 예전에 내게 말해준 바에 따르면 젊은 시절 몇번 시도해 봤지만, 몇마디만 하면 입술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동공은 평소의 두배로 커지며, 고운 목소리가 거짓말 속으로 흩어져서 말이 멈춰버렸다. 조만간 게르다는 과호흡 증상을 보이고, 몸을 기울이다가, 누군가 끼어들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혼절할 터였다. 마그나는 아름다우면서도 당황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게르다는 조연이다.

비중있는 조연도 아니고 지나가는 듯한 게르다 캐릭터를 이렇게 만들어주는 에리크가 좋다.

거짓말을 못해서, 몸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영혼.

게르다의 이런 고지식함과 답답함을 아름다우면서도 당황스러운 현상이라고 평가해주는 에리크가 좋아.  

이런 증상의 사람이 정말 있을까? 있을거라고 믿기로 한다. 정말 있을 것 같아.

 

에리크가 고발하는 콩슬룬의 문제는 고위급, 잘나가는 관료나 부자들의 외도로 생긴 아이를 세탁해서 입양보낸 것이다.

한편 어떤 이유로든 버려지고 입양된 아이들이 어떤 소외와 결핍을 경험하는지 예민하고 유려한 문체로 에리크는 쓴다.

특히 마리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욱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시공간에 사는 아름다운 여성이고

수사네도 아스거도 애정을 담아 캐릭터를 구축한다.

왠지 발뢰는 품성도 좋을 것 같아. 착한 사람인가봐.

원작의 유려한 문체와 호기심에 비하면 번역이 서툴러 걸리는 대목이 많다.

 

과거에 대한 그 여인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관이 경력 초기에 아주 어린 여자애를 다른 곳도 아닌 감옥에서 임신시킨 뒤 연줄을 최대한 동원하여 그 사건을 묻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욘 비에스트란은 누굴까?

일곱명의 아이 중 누가 욘 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이 긴장과 호기심의 흐름이 스토리와 잘 만난다. 

사투른 번역과 너무길 스토리는 단점. 좋은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든다.  

 

 

2.

1961년 덴마크 고아원 콩슬룬에서는 아기들에게 최대한 빨리 적합한 부모를 찾아준다.

이 고아원 콩슬룬 어디에도 학대나 폭행은 없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후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수출하고 있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어린이집의 폭행이 보도된다.

부모들이 일하러간 사이 낮동안 맞기는 아이들에게 폭행을 하는대

부모가 없어 버려진 고아원의 아기들에게는 어떤 상황일지, 두려운 상상을 하게 된다.

덴마크 고아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더 심각한 문제가 우리에게는 있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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