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아이 1
에리크 발뢰 지음, 고호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1.

발뢰의 문체는 서정적이다.

특히 콩슬룬 출신 아이들의 어린시절을 말할때 세상이 꿈결처럼, 저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경계없이 서술된다.

 

아, 초반에 번역이 좋지않아.

"난 내가 아는걸 자네는 전혀 모르는 사실을 알아."

이런식의 문장들이 많아. 눈에 걸려 성가시다.

발뢰의 서정적인 문체를 망치고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나마 뒤로 갈수록 저런 문장이 줄어 다행이다.

 

 

2.

덴마크 총리는 끔찍한 기침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몇달만에 얼굴이 상상 이상으로 수척하고 창백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얼굴은 죽음의 신이 입김을 살짝만 불어도 흩날리는 가느다랑고 하연 종이조각처럼 허공에 떠다닐 것 같았다.

2001년 9월 11일 하필이면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폭격당하던 날 발견된 여성의 시체와 주변의 범상치 않은 물건들

버려진 아이, 사라진 산모, 콩슬룬 고아원, 라데고르 사감 그리고2008년의 병든 총리

씨줄과 날줄이 어떻게 직조될지 궁금해지는 흥미로운 소설의 시작이다.

 

그즈음 오를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직 쇠보르의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위독했던 것이다. 위의 종양은 계속 자라났다. 마치 그동안 쌓여온 슬픔이 갑자기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빠져나오겠다는 듯했다.

맞아. 이럴때가 있다.

그동안 쌓여온 슬픔이 갑자기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빠져나오려는 것처럼 몸이 아플때.

이런 문장을 읽으면 단박에 와 닿지만, 이런 문장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3.

소설이 시작되기전 책머리에 작자의 말을 보면 콩슬룬 사건은 덴마크에서 실제 있던 사건의 모델이 있는 모양이다.

1961년 콩슬룬 고아원에 무슨일이 있었을까.

말레와 마그나는 뭘 감추고 있는 걸까.

같은 시기 콩슬룬에 들어와 코끼리방에 누워있다가 과거가 지워진채 입양된 7명의 아이

콩슬룬 고아원이 가난한 집 여자를 임신시키고 연약한 애들을 입양보낸 상류층 인간들을 보호해 준 모양이다.

7명의 아이, 입양되었을 뿐 아니라 숨기고 싶은 과거도 있다.   

의문의 핵심은 국가 고위관료, 혹은 겁나 부자인 남자가 바람을 피우다가 아이가 생기면

엄마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콩슬룬을 통해 애를  입양 보내고 산모의 입을 다물게 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있는 놈들의 아이세탁을 콩슬룬이 했다는 말이지.

그 댓가로 콩슬룬은 정부지원을 받으며 아시아의 먼나라 일본에서도 견학을 오는 모범적인 고아원이 되었다는 말씀

그러니 고아원 관계자들은 입이 무거워야 할 밖에

 

뭐랄까.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의 익숙한 스토리 사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야, 재벌 갑부의 아들이지, 뭐 이런건대

덴마크의 콩슬룬 이야기는 비슷한 스토리에 공익과 양심과 서정적인 문체를 넣어서 식상하지 않은 미스터리로 만들었다.  

스토리에 비하면 너무 긴이야기는 단점이다.

지루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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