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목 매그레 시리즈 9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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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그레는 눈에 초점을 잃은 것이 지쳐 보였다. 하지만 하룻밤 꼬박 눈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요하게 어떤 목표물을 추적하다 마침내 그것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때마다 그렇게 한시름 놓고 나른해지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일종의 멀미 같은 그것을 매그레는 굳이 떨쳐 내려 하지 않았다. 


어떤 목표물을 집요하게 추적하다 마침내 사정거리안에 들어 왔을때 멀미처럼 느껴지는 나른함. 

뭔지 알것같아. 피곤하지만 만족스러운. 

심농은 이런것을 잘쓴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가 써놓은걸 읽으면 금방 알것같은 느낌 


이번 작품에서 매그레는 대담하게 사형수를 탈옥시킨다! 

매그레의 대담함 이라기보다, 이제 잘나가는 작가가된 심농의 자신감이고 대담함이다. 

범죄소설을 연작으로 쓰다보니 하다하다 별걸 다 상상했구나, 싶지만 

장인의 경지에 이른 작가의 자신감이고 매우 그럴듯하다. 

사형수를 탈옥시킨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설정인대, 억지처럼 느껴지지 않으니 더욱 흥미롭다. 


매그레는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 주변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전통적인 탐정의 방식인대 

이번에는 시종일관 도대체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으며 라데크에게 끌려다닌다. 

사형수를 탈옥시킨것 보다, 매그레가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설정이 더 낯설고 당황스럽다. 

매그레, 곰처럼 크지만 직관이 뛰어난 탐정이 단지 곰처럼 둔해 보이다니. 



2. 

똑똑하고 지적인 라데크가 아무런 흔적없이 완전범죄를 완성하고 10만프랑의 돈을 챙긴후에 왜 유유히 도망가지 않을까. 

왜 돈을 펑펑쓰며 술을 퍼먹고 진상을 떨면서 매그레 주변에 머물러 자기좀 잡아 달라고 사정하는 듯한 행보를 할까. 

파리사람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체코의 하녀를 엄마로 둔 병약한 청년은 잘난척하며 살인을 하고 범죄에 성공해도 

결국 매그레에게 잡힐 수 밖에 없다는걸 말하고 싶은 걸까. 

이국의 노동자계급 출신 청년은 비록 머리가 비상해서 범죄에 성공할지라도 엄청난 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폭하듯이 

스스로 자백하고 싶어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매그레는 그저 라데크를 보고만 있어도 라데크가 도망가지 않는다고. 

빈정 상한다. 심농. 이런식의 결말은 반칙이다. 

이주해온 노동자계급의 병약한 청년,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너무 물로 본다.  


"사람의 목숨이 중하오. 스캔들이 중하오?"

사형수를 탈옥시킨후 범인을 잡지 못해 걱정하며 안달이난 검사양반을 참아주다가, 그만 좀 조용히 하라고 

일갈하는 저 말이 참으로 매그레 스러워서, 외국인과 여성과 노동자계급을 잘 무시하는 심농을 참아주기로 한다.


사형수를 탈옥시키는 방법으로 진범에게 덫을 놓는 

심농이 아니라면 보기 어려운 설정의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즐긴다.

한시름놓고 나른해지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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