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로 밴스의 고뇌 - 주교 살인 사건 / 그레이시 앨런 살인 사건
S. S. 밴 다인 지음, 박인용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1. 
파일로 밴스는 신사고 돈많고 잘난척하면서 그림자같은 조수를 달고 다니는 전형적인 두뇌형 탐정이다. 
조연들도 전형적인대 특히 근면성실하게 일해서 증거를 수집하지만 성질만 급할뿐 절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멍청한 경찰이 그렇다.  
이런 설정의 고전 추리소설들은 편안한 재미가 있다. 
피가 철철 흐르지도 않고, 사람을 과하게 긴장시키지도 않는다. 
아기자기 사건의 주변인물들과 면접 대화를 통해 이사람의 눈으로 저사람을 보고, 저사람의 눈으로 또다른 사람을 보며 
진술하는 이야기들의 흐름속에 거짓말과 애증과 분노와 질투와 결정적인 단서들이 있다. 

소개되는 '주교살인사건'과 '그레이시 앨런 살인사건'은 그중에도 수작이다. 
밴슨의 잘난척 또한 밉지 않고 귀엽다. 
오래된 익숙함이 반가우며 나무랄대 없이 재밌다.  

밴스는 1920년대 뉴욕의 명탐정이다. 
동시대에 대실 해밋의 하드보일드 원조 탐정이 총질하며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어 다녔다.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전형적인 비정한 도시 탐정은 결국 챈들러가 필립 말로를 통해 완성한다.   
그 전형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하여 코넬리의 해리 보슈까지 왔다.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은 진흙탕에서 뒹굴어 감정이 쿨하기 쉽지 않다. 쿨한척 해도 어깨위에는 늘 삶의 비애가 있는거지. 
살인사건의 현장을 마음대로 들락거리면서도 고급양복에 먼지하나 묻히지 않는 신사 명탐정의 마지막 세대가 밴스다. 
편견도 많고 가끔 과하게 잘난척함에도 불구하고 밴스가 좋은 이유는 긴장시키지 않는 쿨한 감정의 편안함이다. 
밴스에게 살인사건은 고단한 삶이 아니라 흥분되는 지적 게임일 뿐이거든.

"모든 것이 너무 깔끔하게 마무리 됐어. 덕분에 효과는 좋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일세."
사건이 해결된 듯이 보이는 순간 밴스가 말한다. 상상력! 
이런말을 할수 있는 유일한 탐정이 밴스다. 
똑같은 두뇌형 탐정이라도 홈즈나 포와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무겁고 진지하여 살인사건을 두고 이런말 못한다. 
세이어스의 피터 윔지가 비슷하지만 윔지는 좀더 예민하고 철없는 도련님 캐릭터의 느낌이고 역시 밴슨 다운 대사다. 

모든 것이 너무 깔끔한대다, 상상력이라니. 
물론 이 대사가 끝이 아니다. 그 뒤어 감탄스런 논리적 호기심들은 직접 봐야 한다. 
아하, 그렇군. 머리는 탁 치는 산뜻함이 있다. 


2.
밴다인의 인문학적 소양은 밴슨이 과하게 잘난척 할때보다 안정감있는 소설의 문장과 철학에서 더 빛난다. 
1920년대 추리소설중에는 드물게 밴다인의 문장은 깔끔하다. 
그의 감성 또한 문장만큼 군더더기 없이 쿨하여 이시대 소설중 드물게 사법질서를 정면에서 비웃는다. 
살인자의 자살을 부추기는 탐정이라니. 멋져부러. 
뭘 재판을 하고 가두고 그랬다가 풀어주고 그러냐고, 기양 죽여버리지. 혹은 죽게 냅두지. 아니 죽으라고 권하든지.
머 어때, 소설인대. 메롱. 경쾌하다.   
그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지만 절친 검사앞에서 가볍게 사법시스템을 비난하며 가지고 노는 장면은 재밌다.  

대니얼 머치는 특별히 두드러지는 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흔히 볼수 있는 정치가 겸 사업가로서 덩치가 크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다. 세련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천박했으며, 공격적인 성품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아첨을 잘했다. 

ㅎㅎㅎㅎ 
시간과 공산을 초월하여 '정치가 겸 사업가'는 저런 모양인가봐. 
우리나라 정치인 겸 사업가들이 좀 봤으면 좋겠다. 
세련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천박하며 공격적인 성품에도 아첨을 잘한다니, 
명바기부터 시작하여 여야를 막론하고 예외없이 이런 꼴인 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런자들 많거든.  

밴다인 정말 재밌는 사람이다. 
그가 딱 12작품만 썼다는 것은 아쉬는 일이다. 
너무 까다롭게 굴지말고 밴다인이 더 많은 작품을 썼다면 아마 코지 미스터리와 비슷했을 것이다. 
최근의 두뇌형 명탐정들은 소박해져 대중들속에 뒤섞여 가볍다오. 

이 시리즈는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는데. 
기다리지 말고 다른 출판사의 것이라도 밴다인을 좀 더 즐겨야겠다.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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