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 이상 3 - 해섬마을의 불놀이야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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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여가구가 사는 산골마을에 카페라니. 거 참, 과하게 쌩뚱맞다.

깊은 산속, 외나무 다리로 건너는 강, 고립된 산골마을이야 크리스티 이후 추리소설의 익숙한 설정이지만 거기에 카페라니

외나무다리로 피아노가 건너는 거야 그렇다치고, 뭐 먹고 살거라고, 중얼거리며 읽었다.

그러나 재밌네. 해섬마을의 불놀이야는 절묘하다.

 

"여자 혼자 독체에서 잘시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함서방은 고개를 저었다.

"모를 일이죠. 게다가 그 순당집은 대대로 저주받은 집이라는 소문이 나서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대낮에도요. 그래서 어쩌면 여자 혼자 살기 더 안전할는지요. 사람이 무섭지, 귀신이 무섭습니까?"

웃었네. 그러게. 여자 혼자 살기에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

명자. 그녀는 왜 이런 외딴 마을에 와서 쌩뚱맞게 카페를 차리고 피아노를 두들기는 걸까.

 

비극이었다. 할아버지는 죽어도 장가를 안 간다는 손자가 숨은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영혼 결혼식을 치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구보는 인간의 원념이 무척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을 둘러싸고 도는 어둡고 음습한 묘한 분위기는 한치도 양보 못하는 한 노인의 고집과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원망속에 죽어간 열일곱 종손의 대치 속에서 극대화되고 있었다.

 

씨받이 들어온 여인과 혼례복입고 찍은 남자의 오래된 사진, 속 여인과 눈이 마주치면 죽는다는 소문이 있단다.

분위기를 정말 그럴싸하게 잘 만든다. 술술 물 흐르듯이 이야기가 흐르네.

오래간만에 책을 읽다가 잠을 놓쳐 날이 새 버렸다.

 

 

2.

"자네 지인이 어떻게 내 마음을 읽었는지 대단하네. 내 평생 한 번 쯤은 이토록 고적한 산속에서 먹을 것 걱정 안하고 삼시세끼 대접받으면서 글만 쓰고 싶었다네."

이상이 골치아픈 사건 하나를 해결해준 지인이 후쿠오카 온천 여관으로 초대해서 여행을 떠난다.

구보는 반복해서 경비와 숙박을 해결해준 재력가 지인을 둔 이상 덕에 호사를 누린다며 행복하다고 말한다.

웃었다. 저런 재력가 지인이 있어 후쿠오카 온천에서 삼시세끼 대접받으며 글만쓰라하면 나도 행복하겠다.  

 

사월이 캐릭터 재밌다. 영리한 초등학생 여자아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온 해외 온천 여행 여관에서 사람이 죽는데 재빨리 눈치를 보더니

이상과 구보에게 자기를 탐정으로 팀에 끼워달라고 말한다. 당돌하고 재밌는 꼬마다. 또 나오면 좋겠어.

 

경성탐정 이상이 앞선 두권보다 진화했다. 보다 현실감 있게.

앞의 두권에서 탐정 이상의 경성은 식민지 조선의 경성이 아니라 은하계 별나라의 경성 같았거든.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느껴졌었어.

굳이 탐정소설에 반제국주의 반식민지 정서를 넣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번처럼 배경에 아무렇 않게 제국 일본의 징집을 피해온 청년도 있고, 철도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도 있고

뭐랄까. 현실의 경성으로 상이 내려온 느낌. 그래서 더 좋았다.

 

다음 편의 이상은 지금쯤 경성의 어느 골목을 탐색하고 있으려나.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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