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가 직접 말한대로다. 이미 위기의식을 깨달은 여자들은 이 책을 보아도 하등 쓸모가 없다. 차라리 만사태평한 동료나 친구들에게 슬쩍 권해주고 <맨큐의 경제학>을 한 줄이라도 더 읽어라. 2. 이 글을 쓴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여자로서 공감가는 글들이 많이 써져 있었다. 여자의 시선에서 경제를 바라보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이 분명하다. 사실 남자들 시선에서는 '꼴페미'가 썼다고 해도 그대로 믿을 정도이다. 이 정도로 여성에 진보적인 시선을 가진 남자는 페미니즘 남성들 이후로 오랜만이다. 그러나 너무 여자의 수다글처럼 쓰려고 의식한 게 조금 눈에 거슬린다. 3. 경제학을 보려면 경제학을 보아라. 저자가 슬쩍 빠져버린 정치론이나 육아론은 절대 신경쓰지 마라.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그들에겐 이유를 알 수 없는' 개무시는 정말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 4. 뒷부분에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글들이 꽤 나와있다. 싱글때부터 고려하고 있는 여자들이라면 좋은 참고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30대 경제학의 연장판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20대 초반이 보기에 가장 적합하다. 추가로 솔직히 이 글을 여자가 썼으면, 하는 미련이 남는다.
주식에 대해서 슬슬 시작해보려 하지만 정말 뭣도 모르는 초짜 사람들에겐 매우 좋은 책이다. 주식에 대한 용어들과 그 개념들을 상세히 풀이하고 있다. (대세랍시고 줄기세포가 상세히 부각되어 있지만 이미 4년전인 2005년에 출간된 책이다. 적당히 눈감아주자.) 예시도 매우 재밌고 간명하게 나와서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만 문제는 본인 자체가 수학에 초짜 상태가 되어버려서 숫자만 나오면 무슨 소리인지 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역시 주식상태에 대해선 더 자세히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보다는 구입해서 주식을 할 때마다 두고두고 읽어야 할 귀중한 책이다. 인터넷을 이용해 주식 할 줄 모르는 어른분들에겐 특히나 도움이 될 듯. 테마주 추천이나 그런 것들은 상당히 끌렸다만 역시 실제로 주식에 뛰어들 때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책에서 쓰여진대로 주식은 내 돈과 관련된 외로운 투쟁이니 말이다.
참고로 한마디 하자면, 이 소설은 절대로 페미니즘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던지고 있다. (브래지어를 태워버린 여자에 대한 조작설에 대해선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정확한 판단을 요하는 비소설류에 추측을 쓰다니.) 오히려 여자의 몸에 대한 남자의 일그러진 환상이라고 봐도 좋을 책이다. 난 그저 생긴대로 살자는 의견에 찬성이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장신구(!) 중 몇몇은 일종의 학대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뭐 그것이 전통이고 여자들의 사회에서 많은 부담이 없다면 문화현상 중 하나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페로몬과 성감대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 참으로 돋보이는 책이다. 뭐 그렇고 그런 걸로 여자를 만족시키고 싶다거나 순수히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면 진지하게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여자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필수로’ 보아야 할 책이다. 단, 좀 더 극단적인 여성학이론과 여자의 문화를 보고 싶다면 다른 책을 볼 것을 추천.
몇몇 직역들이 조금 신경쓰이기 시작했으나 제대로 몰입만 한다면 (그리고 밤중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읽을 때) 무서움이 증폭되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셀'을 짓기 전의 좀비소설로 보이는데, 그만큼 인물 수도 상당히 제한되어있고 폐쇄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그런지 표현도 더 자세히 나와있달까. (얼굴에 푸른 이끼가 낀 게이지의 시신을 상상했을 땐 순간 몸서리가 쳐졌다.) 아들을 병신만들어놓고 찌질거리는 루이스의 모습과 에필로그의 광적인 모습이 일품이었다. 셀보단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음 훨씬 좋았을텐데. 하긴 그만한 배우도 뽑기 힘들거라 짐작하고는 있다. 마음껏 무서워하고 마음껏 증오할 죽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우리를 되살리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사랑은 광기로 치달아갈때 얼마나 치졸해지고 이기적인지. 배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 같은 비극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강력추천. (사실 내가 책을 읽을 때는 '쓰르라미 울적에'가 자주 생각났더랬다.)
문득 최근 보았던 영화 '박쥐'에서의 뱀파이어신부가 떠올랐다. 불륜을 저지르던 중 애인의 자해흔적을 보고 눈이 훼까닥 뒤집혀 애인의 남편을 살해해버린 그. 그리고 그를 보고 조소하던 애인과 배후에 어른어른 나타날 것 같은 감독의 시니컬한 미소. 글쎄. 결국 어떤 경우라도 살인에 정당방위는 없다. 아무리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언젠간 벗어나게 된다. 벗어나고 싶지 않아도. 덕분에 '죄와 벌' 소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광고에서는 리메이크라니 어쩌느니 하지만 주인공 슈이치의 사고방식은 실수로 살인을 저질러버린 라스콜리니노프와는 전면적으로 다르다. 당연히 결말도 다를수밖에. 주인공에겐 미약한 동정마저도 없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감정이입한 탓인지 피로감과 슬픔이 억만겹으로 짓누르는 느낌이다. 범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중에서도 감성적으로는 이미 정절에 치달은 듯.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책 읽다 주인공이 죽는 장면에 안도한 적은 처음이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