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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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나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유치산업 보호 정책에서 실패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전략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보호주의의 잘못된 사례는 그 정책이 현명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은 대부분의 경우 복지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거나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 무역 조정으로 인한 실업은 선진국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이 글에선 '5포 세대'라는 단어는 눈꼽만큼도 나오지 않았지만

  위의 글들을 읽어보면 '5포 세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림을 보면 현재는 5포가 아니라 7포로 늘어났나보다(...)

 

 내가 더이상 촛불집회에 함께하지 않는 이유를 몇몇 아는 사람들 외에는 얘기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데, 촛불집회에 있던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일부가 어쩐지 거의 아나키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대한민국은 존재하고 있는 데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으면 그에 대한 희생이 너무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보층은 범세계같은 이론을 주장하고 있고,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정치판에서는 그놈이나 그놈이나 다 똑같다'는 말을 반복해서 늘어놓고 있다. 장하준에 의하면, 이 모든 게 선진국 신자유주의자들의 함정이다. 그의 해답은 이러하다. 개발도상국이 알아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가만 냅둬라. 이 책의 끝에서는 한단계 더 나아가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을 내세워 개발도상국에게 진정으로 유리한 무역을 장려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사실 이 사람의 이론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일단 개발도상국을 발전시켜놓고 선진국이 더불어 발전하는 걸 지켜보게 하며 신자유주의자들을 설득하면 그들도 마음을 고쳐먹으리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외 몇몇 독재 정권들의 경제 '신화'를 인정한다는 점. 이후에 노동자들의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만, 계속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해서 개발도상국들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세계화를 만들었다는 주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개발도상국이 (위에서 아래로 달려내려감으로서) 선진국과 대결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찬성한다. 개발도상국을 '아이'로 그리고 선진국을 '어른'으로 그려낸 점이라던가, 기타 등등에서 독특한 묘사와 비유가 돋보였다. 아무튼 이 분은 개발도상국들에게(특히 아프리카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 이 책을 쓰셨으니 말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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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9-09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구는 줄고, 그러면서도 서비스직종(가령 편의점 커피숍 등등 여가 및 편의시간)에 외국인을 꺼리는 한국이기에
역으로 가는 현실에서 참.....
저도 왠만하면 여자가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 현실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포기...눙물

진보쪽 사람들의 착각이 재생산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는 것 같더군요. 재생산부터 고려하지 않으면 완전 사멸하죠.
나라가 붕괴하기 전에 한국인이 붕괴할듯
 
함께 - 나에게 용기를 주는 한 마디
이와이 도시노리 지음, 황소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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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가족이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자신이 아닌 타인입니다.

세상은 온통 적으로 가득하다, 반대로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다고 느끼는 기준은 대체로 어린 시절의 가족 관계에서 판가름 납니다.

하지만 성격은 어른이 되어서도 훈련을 통해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이 온통 적으로 가득하다고 느꼈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적은 어디에도 없고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다고 여기는 습관을 길러보세요.

 

 

다함께가 아닙니다.

쳐 죽일 놈들.

극혐짤 올려서 죄송합니다.

 

  

함께입니다.

 

 뭐 그렇다. 내가 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혜민 스님이 그 이론을 상당히 강조한 것으로 보는데, 스님이신 그 분은 언제든지 속세에서 벗어나 산을 타면서 혼자의 시간을 지닐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럴 시간을 제대로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직시할 때마다 거부감을 가지는 듯하다. 위기에 처하면 부모, 친구, 심지어 애인마저 다 버릴 수 있는 자신의 그 모습에서 구역질을 느끼고 마침내는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자기애에서 비롯된 자기 혐오의 단계에서 끝난다는 이야기이다. 혹은 일에 쫓겨서 미처 그런 단계도 밟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통찰할 수 있는가? 요즘엔 대게 혼자 외따로 떨어져 사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남에게 자신을 평가해 달라고 질문을 한다. 시시때때로 남의 눈으로 본 자기 자신에 대해 듣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다를' 뿐인데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굉장히 비판적이며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신공격은 그 사람과 '소통'하며 마음을 '함께' 나누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나도 어떤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많이 듣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기 할 말을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 심지어는 평가해달라는 사람의 기를 누르기까지 한다. 번지르르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부모던 친구던 연인이던 간에 멀리 하는 게 좋다고 본다. (나같음 애초에 내 옆에 있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이와이 도시노리의 최근 책 제목이 '나는 더 이상 착하게만 살지 않기로 했다'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리뷰를 쭉 훑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간관계가 협소해서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살라는 말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쓴 분들이 많아서 좀 길게 적어본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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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9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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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

 

배순금

치익칙 증기 소린 추억의 기차 소리
날마다 익숙한 듯 그 길을 달려와서
한 다발 저 들꽃 같은 밤 내음을 풀어 놓는.

 

 

 

  

여기서 러브라이브 하나요의 밥짤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호에 나온 이야기는 대부분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역시 어르신들이 잘 보는 잡지라서 그런지 술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박찬일의 현 요리사 모에 현상(?)에 대한 일침도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봤다. 진정으로 요리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방송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박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요리를 해나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요리를 만드는 데에도 나름의 자부심과 장인정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포즈보다는 완성품인 요리가 맛나야' 하니 말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을 가서 김범의 노란 비명이라는 재미있는 영상작품을 본 적이 있다. 

 

 훌륭한 셀프 디스였다. '저 사람은 언제 그림을 그릴까' 싶을 정도로 쓸데없는 물감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드디어 붓을 잡을 때 한 '일'이란 붓을 옆으로 그으며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것 뿐이었다. 물감 색깔에 따라 비명의 임펙트는 달라졌지만, 그 외 새롭다 할 것도 없었다. 분명 그것은 '참 쉽죠?'라는 명대사를 만들었다는 방송가 밥 로스에 대한 전면적인 냉소였다. 한 번 꼭 보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이 분의 영상이 하이라이트이긴 했지만, 다른 분들의 작품들도 상당히 신선했다. 미술관에 가면 전반적으로 돈을 내는 게 씁쓸한 느낌이었는데, 저 때는 정말 돈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열심히 돌아보지 못한 걸 아쉽게 생각한다. 왜 난 그 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자리를 비켜줬을까(...)

 주위에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음악가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나 다들 하나같이 생계가 어렵다느니 잡소리를 늘어놓지, 한 줄이나 제대로 열심히 쓰질 않는다. 아무리 생계 때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그럼 퇴근 후에 핸드폰이나 게임이나 컴퓨터나 TV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해?'라는 나의 질문은 사실 '대체 그 빌어먹을 작품은 언제 완성하는데?'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상대방의 대답은 보통 이렇다. 자신도 사람이지 않느냐고. 그래. 추가하자면 '아가리만 동동 떠다니는' 사람이겠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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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제1349호 2015.09.01
시사저널 편집부 엮음 / 시사저널(잡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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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의원 관련 성추문을 모두 갑질의 결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정색도 있다. 그러니까 우월한 위치를 이용해 상대를 성폭행, 추행한 것과 '저들끼리' 눈이 맞아 하는 거시기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성낙현에 대한 기사에서 나온 구절이다.

 

 성낙현 의원은 여고생의 학교 소지품 검사 때 가발, 그 당시 거액인 10만원권 수표, 콘돔 등이 적발되면서 정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여의도 행사장에 동원되었던 여고생 4명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자신의 일본인 친구 집 등지에서 관계를 했다고 한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그 당시엔 이름도 생소했다는 '집단 거시기'를 벌인 것이다. 그가 구속되었던 때는 1978년이었다. 정치에 거의 관심도 없던 우리 어머니조차도 '이름은 들어봤는데?'라고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면 정말 대사건이긴 했나 보다. 뭐 그룹 섹스는 요즘 돈 있는 사람들이 아가씨랑 노래방 갔다고 하면 내심 상상 속에서 아른거리는 장면인데, 여고생이라고 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당시 사람들이 순진(??)했는지 전국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다.

 1978년은 박정희 집권 시기이다. 그도 그 당시 연예인들을 끼고 놀았다고 하니, 국회의원이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 이상할 건 없다. 아니,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사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남녀가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들은 거의 온갖 업종이 회식에 모여 술만 마시면 노래방 가서 아가씨 부르는 게 일상다반사라고 한다. 최근 여성 일베라고 불리는 메갈리아를 보면 차라리 난 불쌍하기까지 하다. 솔직히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지금 시대에도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여당이나 야당이나 제3당이나 마치 약속이나 한 마냥 박근혜 집권시기부터 성추문을 퍼뜨리고 있다. 문제는 이제 눈을 뜬 여성들이 그들을 주시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녀갈등은 앞으로도 한동안 더 지속되리라 본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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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스님 시봉일기 1 - 내일이면 늦으리, 반양장
송암지원 지음 / 도피안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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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죽음이 없는 평화, 고통이 없는 안녕.

번멸이 없는 영원 그 모두가 아닌가.

부처님은 거기 이르셨고 우리도 그 길을 간다.

이 뜨거운 여름철 작업이 아니랴.

그리고 모두 함께 폭류를 건너는 분을 돕고

폭류 속을 헤메는 형제를 돕자.

부처님은 어떻게 폭류를 건넜다고 하셨던가?

"무엇에도 의지함이 없이

아무 것도 구함이 없이 폭류를 건넜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을 새겨 보자.

"의지하면 침몰하고 구하면 말려든다."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하자.

 

 

 

대홍수라던가 폭류라던가 십자가라던가 하는 고난 혹은 재난 이야기는 종교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처럼 '신들이 느닷없이 벌이는 장난으로 인해 일어나는 해프닝'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천주교에서처럼 '원죄'라는, 간단한 단어지만 속으로 파고들어가면 알쏭달쏭하고 복잡한 이야기도 있지만,

삶이 곧 고난의 길이라는 데에는 모든 종교의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난 당연히 종교인으로서 이 이론들을 매우 좋아한다. 삶은 전체적으로 고난의 길이다. 어떤 명분이 있던, 혹은 어떤 명분도 생각나지 않아 이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아니면 이런 전반적으로 지저분한 세상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던가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최근엔 가정 혹은 사회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올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해소할 길이 없는 것 같기에,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나 자신으로선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 동시에 흥미롭기도 하다. 종교엔 젊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신흥종교와 대기업의 사기꾼들이 약자들의 몸과 마음을 착취하고 있으며, 예술인 등이 속절없이 굶어죽어 가기에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혹은 생존하려고)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

 여기서 광덕 스님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애국심.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바탕으로 한 자기 자신의 정진이다.

 

 

여기서 내가 의의를 제기하는 건 애국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광복 후 일본인들에게 지역구 단위당 1000명 정도로 집단매장을 당하는데 확실히 진상을 밝히지도 못하고,

8월 4일날 북한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매장한 지뢰를 밟아서 앞길 창창한 청년의 다리 한 쪽이 날아갔는데 진상확인도 안하고 무조건 북한 탓이라고 확성기를 틀어놓는 무례를 저질른데다가 26일날 와서야 그 사실을 밝히고 배상 혹은 사과 한 번 안한 채 훈장 휙 던져주고 끝내는데

게다가 시신이 묻혀있는 국가유공자의 5분의 2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데,

이 국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연민은 느낄지언정 정말 내가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정진, 그것 하나는 정말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라고 본다. 개인주의는 물론 정말로 잘못된 일이다. 아마 광덕스님은 자기 존중이 그렇게 변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국심을 들고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족 혹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기반을 이룰 수는 정녕 없단 말인가?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밟고 지나가는 것들을 한번쯤은 되돌아보고 내 마음을 내가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듯이, 더러운 것들은 단호하게 버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폭류 속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되 구하지는 말라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내가 예수님 다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 여기는 성철 스님도 살인자를 부처님 모시듯 하라고 했지만, 협력하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최인호는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 너무 집착하신 듯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하였다. 참으로 예리한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법정스님의 글을 보면서 어딘가 편집증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광덕스님도 어쩌면 애국심에 너무 매달려서, 나라 말고도 온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많다는 걸 잊어버리신 게 아닐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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