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 시봉일기 1 - 내일이면 늦으리, 반양장
송암지원 지음 / 도피안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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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죽음이 없는 평화, 고통이 없는 안녕.

번멸이 없는 영원 그 모두가 아닌가.

부처님은 거기 이르셨고 우리도 그 길을 간다.

이 뜨거운 여름철 작업이 아니랴.

그리고 모두 함께 폭류를 건너는 분을 돕고

폭류 속을 헤메는 형제를 돕자.

부처님은 어떻게 폭류를 건넜다고 하셨던가?

"무엇에도 의지함이 없이

아무 것도 구함이 없이 폭류를 건넜다."

부처님의 이 가르침을 새겨 보자.

"의지하면 침몰하고 구하면 말려든다."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하자.

 

 

 

대홍수라던가 폭류라던가 십자가라던가 하는 고난 혹은 재난 이야기는 종교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처럼 '신들이 느닷없이 벌이는 장난으로 인해 일어나는 해프닝'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천주교에서처럼 '원죄'라는, 간단한 단어지만 속으로 파고들어가면 알쏭달쏭하고 복잡한 이야기도 있지만,

삶이 곧 고난의 길이라는 데에는 모든 종교의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난 당연히 종교인으로서 이 이론들을 매우 좋아한다. 삶은 전체적으로 고난의 길이다. 어떤 명분이 있던, 혹은 어떤 명분도 생각나지 않아 이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아니면 이런 전반적으로 지저분한 세상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던가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최근엔 가정 혹은 사회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올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해소할 길이 없는 것 같기에,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나 자신으로선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 동시에 흥미롭기도 하다. 종교엔 젊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신흥종교와 대기업의 사기꾼들이 약자들의 몸과 마음을 착취하고 있으며, 예술인 등이 속절없이 굶어죽어 가기에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혹은 생존하려고)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

 여기서 광덕 스님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애국심.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바탕으로 한 자기 자신의 정진이다.

 

 

여기서 내가 의의를 제기하는 건 애국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광복 후 일본인들에게 지역구 단위당 1000명 정도로 집단매장을 당하는데 확실히 진상을 밝히지도 못하고,

8월 4일날 북한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매장한 지뢰를 밟아서 앞길 창창한 청년의 다리 한 쪽이 날아갔는데 진상확인도 안하고 무조건 북한 탓이라고 확성기를 틀어놓는 무례를 저질른데다가 26일날 와서야 그 사실을 밝히고 배상 혹은 사과 한 번 안한 채 훈장 휙 던져주고 끝내는데

게다가 시신이 묻혀있는 국가유공자의 5분의 2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데,

이 국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연민은 느낄지언정 정말 내가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정진, 그것 하나는 정말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라고 본다. 개인주의는 물론 정말로 잘못된 일이다. 아마 광덕스님은 자기 존중이 그렇게 변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국심을 들고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족 혹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기반을 이룰 수는 정녕 없단 말인가?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밟고 지나가는 것들을 한번쯤은 되돌아보고 내 마음을 내가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듯이, 더러운 것들은 단호하게 버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폭류 속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되 구하지는 말라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내가 예수님 다음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 여기는 성철 스님도 살인자를 부처님 모시듯 하라고 했지만, 협력하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최인호는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 너무 집착하신 듯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하였다. 참으로 예리한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법정스님의 글을 보면서 어딘가 편집증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광덕스님도 어쩌면 애국심에 너무 매달려서, 나라 말고도 온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많다는 걸 잊어버리신 게 아닐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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