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자 민음의 시 155
김언 지음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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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중에서

ㅡ끝까지 남남이 좋은가?
ㅡ우주는 혼자다.

 

 

 

  

무엇을 향해서 그렇게 싸워대니? 라는 말을 예전에 변변치 못한 한량새끼에게 들어본 적이 있다.

 좀 특수한 군인에서 승진 좀 하려다 짤린 경력이 전부인 주제에 나에게 말을 돌려가며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게 가소로웠다. 그래도 자존심을 낮춰가며 수위 조절을 해가며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긴 했었다. 나도 궁금하긴 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대통령이라거나 박대통령같은 천하의 여우나 멍청이가 누구에게 지지를 받는가? 내 주위엔 당연히 친구밖에 없고 친구들은 모두 이대통령이라거나 박대통령을 싫어한다. 하지만 좀 더 나아가서 김대통령이라거나 노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예 표적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표절 논란이 한창일 때 소리소문없이 샘터 팟캐스트의 MC가 물갈이되고 첫방송부터 '사과특집'이 진행되었다. 출판사측 말단이 출연해서 변명을 줄줄 늘어놓는 게 장관이었고 그 중 어떤 목소리는 아예 이렇게 말했다. "우리 문단계 다 장사 안 되는데 대체 누가 기득권층이라는 말입니까? 우린 모두 친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기득권층인데 말이다.

 

 

  

관계란 무엇일까? 시인은 글을 씀으로서 말을 꺼냄으로서 대토론이 벌어지고 행동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에게는 꿈과 목적이 있기에 냉철하게 발언을 하지만 열혈스러운 힘이 실려있다. 히스테리라지만 사소하고 작은 일에 대한 히스테리와 시집을 완성하면서도 비리를 폭로하여 행동을 촉구하려는 작은 목표와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단순히 싸우는 게 아니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꺼내는 주제는 군대이다. 그런데 어째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싸움이 나는가? 바로 그런 질문이 우리나라 사회를 되짚어보게 한다. 나는 생각해본다. 결국 질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라고 남들에게 강요하는 쪽이 기득권층이 아닌가 하고.

 

 

  

  물론 추종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 말하듯이 '이 한 사람을 위해서 백 명의 어줍잖은 븅산탈춤들은 필요없다'는 마음이 이는 사람이 진짜배기이다. 이 시집은 시작이자 현재진행형이다.

 기득권층들은 시를 좀 더 쉽게 쓰라고 언론같은 데 나와서 대놓고 비웃는다. (같은 문학인인데도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사장시키려고 하는게 웃기고 구역질난다.) 그런데 많은 젊은 시인들이 '소설'을 시에 내세우며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성공이 거의 눈앞에 온 듯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 말고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분간할 수 있는 그 때가 오고 있다.

 

연인

우리는 보통 밤에 얘기하고 낮에 뜨거워집니다. 우리는 우리 둘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보통 밤에 얘기하고 낮에는 짐을 옮기면서 물끄러미 우리의 얼굴을 쳐다보고 이런 얘기를 나눕니다. 마치 자신의 얼굴처럼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경향이니까요.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뻗어 가는 두 사람의 팔다리를 바로 등 뒤에서 느끼고 만져 봅니다. 우리는 정말 굳어 갑니다. 달아나기 위하여 가장 높은 곳에서 옥상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직전의 포즈는 모두 사실입니다. 내일부터는 우리가 내다보는 창밖에서 이상하게 울음이 큰 사나이와 여자의 옷자락이 펄럭입니다. 떨어지기 위하여 우리는 어디서부터 입을 맞출까요? 커피숍에서 아니면 가로등 아래 공원에서 그도 아니면 혼자서 걸어 보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은밀하게 오늘과 내일의 거리를 상영합니다.

내일은 각자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난폭하게 화해하는 양편의 팔을 등 뒤에서 느끼고 정말 만져 봅니다. 조용히 입을 감추고 있습니다. 스르르 눈이 내려옵니다. 키스는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영화 연인.
1992년작.
마르그리뜨 뒤라스 소설이 원작.
장 자크 아노 감독.
롤리타와 비교해보기엔 여자애가 너무 정신력이 강하고 애어른이다.
10대 프랑스 소녀(제인 마치)가 찌질한 중국 청년(양가휘)에 반해서 외국까지 찾아다니는 걸 보면서 왜 사랑은 동등하게 찾아오지 않나 생각을 많이 했었지.
명대사보다는 명장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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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잘못 날아왔다 창비시선 288
김성규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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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기르는 개를 쏘아라

며칠째 밥을 먹지 못했어 내가 먹은 밥을 녀석이 핥아 먹고 있어

녀석이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어 잠이 오지 않아 한 번 눈을 붙이면 다시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동생이 맞던 주사기, 누나의 속옷까지 내가 버리려고 모아둔 것을 녀석이 물고 다녀

나를 볼 때마다 꼬리를 쳐 깨진 유리병을 머릿속에서 굴리는지 이빨자국이 눈동자에 퍼지고 있어

뇌 속에 새끼를 낳을지도 몰라 그러면 내가 잃어버린 더 많은 것을 물고 오겠지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녀석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나를 약올리지 못하도록

오늘밤 내 머리를 쏘아야겠어 녀석도 나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깊은 잠에 빠지면 나도 눈에 핏발을 세우지 않아 굶기지 않은 개는 주인을 물지 않아

 

  

 분명 시는 스토리가 짧다. 옴니버스 식의 구성이 아니라면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주인공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 두 편 중 하나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시집은 이게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주인공 카미죠는 애니메이션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해~!"라고 외치고, 또 다른 주인공 절망선생은 애니메이션 처음부터 끝까지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들 앞에서 자살쇼를 벌이며 결국 모두와 같이 하늘에서 동반자살하듯이 떨어지며 미사일들이 되는 것 같은 결말을 연출한다. 그러나 깔끔하고 약간 권태스런 남성의 미모를 이들은 지니고 있다. 또한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이 옆에 무지무지하게 꼬이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인은 면도를 하지 않으면 금방 텁수룩해지는 검은 수염을 계속 의식하고 있으며, 할머니와 누나를 포함해서 신세망친 여성들이 등지고 있으며, 결국 자기 자신조차 철저히 늙어가는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어쩌다 시에서 동물이나 사람이 죽지 않으면, 어디서 벌레가 새까맣게 튀어나 온 사방을 뒤덮는다. 시인은 중력에 개의치 않는 세상, 혹은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공중에서 목을 매달지 않으면, 도저히 땅에서 떨어져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람이 없는 어딘가로 가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본격적으로 세상을 혐오하는 것 같다. 유일하게 초월의 잠이란 시에서 글쓰기로 안도감을 찾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도 후반부에서 자신을 히키코모리라 표현함으로서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꾼다. 하긴 인생 살면서 모든 게 정답이 있고 해결책이 있을까. 핵발전소를 중단한다면 부족한 전력을 충당할 다른 대안이라도 있느냐 촉구하는 마피아들에게 시인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몸에서 떼어낸 '오물'을 던진다. 매우 근면성실하게 교훈적인 시를 쓰지 않으려는 그의 발버둥은 존경받을 만하다 생각한다. 독산동에서 반지하동굴을 만들다 죽은 시체들이 웃을 법한 밤에 읽기 좋은 시이다. 행복의 빛은 어쩌면 그 동굴 가장 안쪽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은 분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어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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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인형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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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하는 데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직감처럼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의: 위의 이야기는 제 20대 초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반과 중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남자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 며칠 혹은 몇달 후에 남자 아이는 다른 여자 아이를 사귄다. 놀랍게도 혹은 이전부터 남자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 예감하며 몸을 떨었던 그 여자 아이와 사귄다. 조용히 SNS를 뒤졌거나, 아님 나와 남자 아이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친구 관계가 넓다고 공공연히 과시해 오던 어떤 친구에게서 듣고 싶지 않았는데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에게 질렸을 지도 모르고, 그 여자 아이의 눈이 좀 더 높아져서 결혼은 걔보단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남자 아이와 사귀었을 때처럼 말이다.

 

 

  

내부자들 영화에서 사실 하나 더 주목한 게 있는데 차마 어머니에게 고백할 수 없던 건 창녀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머니가 그 부분이 너무 끔찍하다며 몸을 부르르 떠셨기에 함구해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녀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 영화에 반전을 일으킨 것도 그녀였고 몸을 바쳐 희생한 것도 그녀였으며 그 모든 일이 다 끝나고 그녀의 사랑하는 이병헌에게 동영상을 넘긴 다음 쿨하게 해외로 떠나간 것도 그녀였다. 얼굴도 예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불태울 수 있으며 전국에 혁명을 일으키고 운전도 잘 하는 그녀. 그녀는 영화의 말미에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내 사랑. 모든 연애가 그렇게 쿨하게 끝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거리의 여자가 되고 꼬리가 길어야만 여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현실이 슬프다. 이 책에서는 그런 성공을 거둔 사람이 프린세스 안나밖에 없다는 것도. 청부로 사람을 죽였으니(그것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아가 아닌 허세밖에 없는 핑크를 신뢰해서.) 그 지배의 쾌감도 어차피 짧겠지만.

  

무튼 내가 이 단편소설집 중에서 그나마 좋았던 소설은 포도 상자 속의 뮤리다. 내가 왠만하면 충격과 공포의 반전 소설 좋아하고 힐링 이런거 싫어하는데 아... 프린세스 안나가 너무 독하고 지독하고 군인한테 강간당하던 소설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도 너무 끔찍하고 진짜 ㅋㅋㅋ

 리제로 작가 사망하면 캐릭터가 불쌍해서 애도한다더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수아 누나 ㅋㅋㅋ 왜 캐릭터로 오우야 묵직한 미사일을 만들어서 펙트 공격하고 있어 차라리 죽여줘 쓰발 ㅋㅋㅋ 왠만하면 읽은 직후에 리뷰 쓰는데 이건 좀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차분하게 썼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하고 우리나라에 배수아라는 작가가 있다는게 감사하고 100페이지 남짓 되는 책 읽고 인생 다 산 거 같다 생각되는 건 처음이다. 진짜 늙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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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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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친구

이 시는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 죽겠구나
오늘 밤이구나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저녁이 오고 밤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몇 개의 문장은 더 쓰입니다 겨울밤에 죽기로 결심한 사람은 장을 보고 돌아와서 차를 마시고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 있던 일을 다 적습니다
차는 천천히 식어갑니다 열은 원래 흩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저 사람은 집을 떠나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불이 꺼집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쓴다면 겨울밤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이 걷는 모습이 나오겠지요

불 꺼진 가로등 아래로 걸어가는 저 사람
써 놓고도 구분이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걷고 있습니다

오늘은 죽어야지,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잘 걷습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몸이 굳어 갑니다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이 시는 끝이 날 겁니다

그러나 몇 개의 문장은 자꾸만 쓰이고, 자꾸만 걷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겨울밤은 자꾸만 추워지고

몇 개의 문장을 더 쓰면
몇 개의 문장은 더 쓰이지 않고

그래도 사람은 걷고 시는 계속되고 겨울의 밤입니다
차가 따뜻하군요

이 시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페북에서 자살하겠다고 글 올렸다가 사과하거나 글 삭제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나는군요. 

 

 희지의 세계라는 제목이 미지의 세계 웹툰에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웹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 웹툰이 모종의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지자 책으로 발간된 것들조차 모조리 회수되었다.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황인찬조차 의도하지 못한 멋진 실수였다. 페미니스트를 자칭했던 문단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실패함으로서 멋지게 성공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미지의 세계 웹툰은 결국 세상에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웹툰 작가도 피해자인 10대 여성도 가해자인 남성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를 주제로 삼은 시집으로서 너무나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가.

 첫번째 시집에서 실연에 대한 깊은 절망이 묻어났다면 두번째 시집에선 사회를 이바지하기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 점에 대해선 나와 정말 똑같은 케이스인 듯하다. 단지 그는 이야기를 꺼낼 뿐이다. 그것도 남들이 침울하다고 기피하는 이야기를 자꾸만 꺼내고, 그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사회를 바꾸는 히어로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꺼냄으로서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없다. 어차피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늙어가고, 선생님을 욕하던 사람이 결국 선생님이 되며,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시에는 서툰 점이 귀엽기도 하다. 어쩌면 자신에게는 이별에 관한 시가 주제에 맞는다고 체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황인찬만 소설과 이야기에 주목한 시를 쓴 건 아닌데 평론가 분이 너무 오바하시는 것 같다. 이전에 리뷰했던 글로리홀이라는 시집에서도 소설을 써라 소설을 어쩌고 하는 연작 시리즈가 있고, 이후에 리뷰할 김언의 시집 제목도 소설을 쓰자이다. 아무래도 시짓기를 가르치는 선생님 중에서 습관적으로 '시를 쓰라고 했지 언제 소설 쓰라고 했냐?' 식으로 꾸중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이래서 사람이 훈계를 적당히 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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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 서점원이 찾은 책의 미래, 서점의 희망
다구치 미키토 지음, 홍성민 옮김 / 펄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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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런데, 여기서는 원래 사려던 것도 아닌 책을 늘 두세 권씩 사게 되네요. 하하하."

 

  

예전에 백수 3개월 생활했을 때 어느 동네 서점에서 일하려 한 적이 있다. 확실하게 거절당했다.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도 미혼의.

 

 결혼하면 그만두고(어차피 내가 그만 안둬도 자기들이 막 해고할 거면서), 힘들다고 질질 짜고, 최저시급 정확히 따지고 들고, 섹드립만 했다하면 씍씍대는 여자이니까.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기업 서점에 이력서를 냈다. 취직해서 잘 지내고 있다. 물론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는다 욕먹고 기타 갖은 수모를 당하지만 어쨌던 입사지원 때 여자란 이유로 면접부터 거절당하진 않았다. 처음엔 그 동네 서점에도 라노벨 알아보러 좀 다녔는데 지금은 발길을 끊었다. 이유 없이, 그냥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원인은 있었다. 동네 서점이라. 동네 도서관도 그렇듯이 난 동네 서점을 좋지 않게 본다. 아니, 더 안 좋게 본다. 그들은 이윤까지 따지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나 알라딘이 대기업이라 욕먹지만 그들이 낫기도 하다. 슈발 있는 욕 없는 욕 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차별없는 취직을 시켜주잖어.

 

 

  

일단 단점부터 까고 시작하겠다.

 아무리 장사에 잇쇼겐메이를 강조하는 일본이라지만 서점에서 책 파는 거 가지고 카리스마라니 무슨 곰방대 피는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여성에게도 카리스마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저자는 전혀 책 파는 여성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알라딘 관계자도 지적했지만 그 외의 편협한 의견이 너무나 많다. 서점은 문화공간이 아니라는 둥, SNS로 자신의 서점이 취직하기엔 일이 너무 많아 별로라 하는 서점직원들의 지적이 짜증난다는 둥. 한 마디로 그가 마초이자 꼰대라는 데서 이 서적은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꼬우면 자신도 SNS를 하며 적극적으로 서점의 인터넷 홍보를 전개하면 된다. 그깟 자존심 때문에 트렌드를 거부하다니 분명 장사하는 사람으로서는 마이너스이다.

 역시 여기서도 열정페이가 문제다. 서점직원에게 서점을 방문하는 고객의 로봇을 만들어주게 한 것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자신이 로봇 만드는 법을 직접 연구해서 만들어주는 방법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단 말인가? 그리고 가능한 한 정직원으로 사원을 뽑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서점 일이 어렵더라도, 하물며 '커피 값을 줄이더라도' 직원의 임금에 대해 신경을 써준다면 직원들이 SNS에서까지 불평을 했을까? 서점 직원이라면 서점에 들어오는 모든 신간에 대해 파악을 해야 하는 건 맞다. 특히 서점에서 강조하는 책이라면 예의주시를 해야지. 하지만 노동을 집까지 끌고 들어온다는 문제도 분명히 있다. 오버워킹과 과로사는 최근 노사 모두가 걱정하고 신경쓰는 문제인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고 젊은이들만 탓하고 있으니 정말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과 서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글쎄, 반경 3미터 정도는 거리를 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귀하다. 나도 아무 지식없이 서점직원 일에 뛰어들었다가 잡지도 제대로 반품 못해서 출판사 직원들에게 한소리 많이 들었고, 매장을 청결하게 가꾸면서 내 방식대로 진열하는 방법을 너무 힘들게 연구했다. 이 책은 내가 몸과 정신에 상처입고 치받아가며 공부했던 걸 굉장히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디서 서점일에 대해 제대로 배우기 힘든 상황에 처한 서점 직원은 의외로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서점 직원이란 직업을 미화하는 책이 많은 게 현실이고... 적어도 이 책을 접하면 서점 직원들에게 막말하고 편견을 뒤집어 쓴 채 접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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