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인형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왜 사랑하는 데 노력이 필요한가. 그것은 직감처럼 느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의: 위의 이야기는 제 20대 초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대 전반과 중반 대부분을 차지했던 남자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 며칠 혹은 몇달 후에 남자 아이는 다른 여자 아이를 사귄다. 놀랍게도 혹은 이전부터 남자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어렴풋이 예감하며 몸을 떨었던 그 여자 아이와 사귄다. 조용히 SNS를 뒤졌거나, 아님 나와 남자 아이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친구 관계가 넓다고 공공연히 과시해 오던 어떤 친구에게서 듣고 싶지 않았는데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남자 아이가 그 여자 아이에게 질렸을 지도 모르고, 그 여자 아이의 눈이 좀 더 높아져서 결혼은 걔보단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남자 아이와 사귀었을 때처럼 말이다.

 

 

  

내부자들 영화에서 사실 하나 더 주목한 게 있는데 차마 어머니에게 고백할 수 없던 건 창녀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머니가 그 부분이 너무 끔찍하다며 몸을 부르르 떠셨기에 함구해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녀는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 영화에 반전을 일으킨 것도 그녀였고 몸을 바쳐 희생한 것도 그녀였으며 그 모든 일이 다 끝나고 그녀의 사랑하는 이병헌에게 동영상을 넘긴 다음 쿨하게 해외로 떠나간 것도 그녀였다. 얼굴도 예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불태울 수 있으며 전국에 혁명을 일으키고 운전도 잘 하는 그녀. 그녀는 영화의 말미에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안녕 내 사랑. 모든 연애가 그렇게 쿨하게 끝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거리의 여자가 되고 꼬리가 길어야만 여자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현실이 슬프다. 이 책에서는 그런 성공을 거둔 사람이 프린세스 안나밖에 없다는 것도. 청부로 사람을 죽였으니(그것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아가 아닌 허세밖에 없는 핑크를 신뢰해서.) 그 지배의 쾌감도 어차피 짧겠지만.

  

무튼 내가 이 단편소설집 중에서 그나마 좋았던 소설은 포도 상자 속의 뮤리다. 내가 왠만하면 충격과 공포의 반전 소설 좋아하고 힐링 이런거 싫어하는데 아... 프린세스 안나가 너무 독하고 지독하고 군인한테 강간당하던 소설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도 너무 끔찍하고 진짜 ㅋㅋㅋ

 리제로 작가 사망하면 캐릭터가 불쌍해서 애도한다더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 수아 누나 ㅋㅋㅋ 왜 캐릭터로 오우야 묵직한 미사일을 만들어서 펙트 공격하고 있어 차라리 죽여줘 쓰발 ㅋㅋㅋ 왠만하면 읽은 직후에 리뷰 쓰는데 이건 좀 생각을 정리하고 나중에 차분하게 썼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하고 우리나라에 배수아라는 작가가 있다는게 감사하고 100페이지 남짓 되는 책 읽고 인생 다 산 거 같다 생각되는 건 처음이다. 진짜 늙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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