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집 창비시선 34
강은교 지음 / 창비 / 198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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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아니면 예전에 읽었던 김남조의 시집이 너무 내 생각을 뒤덮고 있는 탓일까.
 한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에 잘 집중이 되지 않았고,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그로테스크한 것도 아니고 그로테스크하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그 묘한 거리감.
 젠장. 나중에 이 분의 허무수첩이나 한 번 읽어보려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쭉 이 분의 시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내 취향과 맞지 않는 듯.
 아니면 내가 성장하면서 변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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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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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방망이 깎던 노인'과 같이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만 봐오던 유명한 수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 어른이 되니까 그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수필에서도 아쉬운 점들이 보인다.
 아무리 자기 딸을 사랑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대학생된 딸에게 로렌스의 소설을 보지 못하게 만들다니... 잔인하다ㅠㅠ!
 그것도 약과다. 아들은 아예 있다는 소리도 안하다가 수필 끄트머리에서야 존재감을 보였다!
 (본인은 줄곧 소영이라는 외동딸 한 명만 둔 줄 알고 있었음.)
 세대차이에서 이루어진 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구절이 계속 머릿속에 빙빙 돌아서 읽는 내내 개운치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장난스런 자기비하에 이어지는 자기 아내에 대한 외모비판...ㄱ-
 눈살이 찌푸려진 이유는 내가 개그콘서트를 안 보는 이유하고 같은 것일까 ㅎㅎ.
 어린시절의 상처를 담담히 혹은 원망스럽게 담아낸 저자의 모습이 쓸쓸하고 아프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유머넘치는 글들도 왠지 모를 다정함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이 글을 쓰셨을 때도 중년쯤 되셨을 텐데, 어째서 자꾸만 천진난만한 소년이 쓴 글을 들춰보듯 읽게 되는 것인지.
 그래도 외국 꽤나 드나드시는 교수님이라 그런지, 꼭 우리 학교 영어학개론 교수님의 글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특히 프로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맹목적인 존경에 넘치는 말투가 닮았다. 정말 프로스트는 누구던 좋아하는 시인인 듯.
 본인은 자연과 순수가 묻어나는 프로스트의 시보다는 생활고에 찌들고 사랑에 병든 존 던의 시가 좋지만.
 어쨌던 휴학한 이후 오랜만에 영미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 기쁘다.
 괜시리 블로그에 끄적거리다 중단했던 영미시 해석을 재개하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다.
 진지한 이야기도 여럿 등장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부담없이 깔끔하게 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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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라는 여자와의 섹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화니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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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류의 단편 소설이다. 원제는 '어디에나 있는 장소,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나'이다.
 '유년의 기억'이라는 제목도 그랬지만, 도대체 저 평범한 원제를 섹스라는 글자 하나로 평범치 않게 만들어버린 사람이 누구일까ㄱ- 
 어째 양억관씨가 번역할 때마다 제목이 바뀌는 걸 보면 그분 짓 같기도 하고.
 무튼 이 단편소설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들은 하나같이 어느 장소와 어느 주인공을 테마로 시간을 굳혀버린다. 장소도 여러가지고, 주인공은 주로 여자이지만 남자도 드물게 있다.
 그 속에서 주인공들과 주인공이 겪어온 과거들이 조명을 받지만, 평범하다면 너무 평범한 주인공들이라 어느새 잊혀져버린다. 제목을 봐선 무라카미 류의 의도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광수씨 뺨치게 파격적인 소설로 유명하며, 독특한 캐릭터들을 만들어내지만 이런 소설을 만드는 재주가 있는 줄은 또 처음 알았다.
 지극히 평범한 일본의 이야기들을 돋보기를 들이댄 것처럼 확장시켜 범상치않게 만들어놨으며,
 마지막 소설 '역전'의 끝에선 허탈한 동감의 웃음을 지어낼 줄 안다.
 본인의 인상에 가장 남는 소설은 '공항'과 '피로연회장'이었다.
 한 쪽은 무라카미 류답지 않은 잔잔한 해피엔딩이었으나(정말 의외였다.),
 나머지 한 쪽은 사랑을 시작한 중년여자의 처절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여러가지 의미로 한 번 읽어보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남자 이야기가 등장한 건 매우 뜬금없지만. 그는 역시 여자의 이야기를 쓰는 편이 훨씬 잘 어울린다.
 남성의 내면엔 여성이 있고 여성의 내면엔 남성이 있다는데, 그는 내면의 여성으로 글을 쓰고 나는 내면의 남성으로 글을 읽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왠지 맘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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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전집
김남조 지음 / 서문당 / 199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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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집에 들렀다가 할 일이 없어서 책꽃이를 뒤져보았더랜다. 그랬더니 발견된 것은 오오 희귀본. 김남조시선집이라면 재출판되었지만 에세이집은 무려 절판이더라. 남자친구의 말로는 작가의 도장까지 직접 찍혀있는 책이랜다. 왠지 책이 엄청 비싸보이고(???) 무튼 엄마의 허락으로 책을 가져가서 열심히 읽었다.  역시 혈육은 속일 수 없는 듯, 어머니가 20대 시절 책 뒤에 시구로 소감문까지 써 놓은 이 책은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홍백의 장미와 새파란 장미가시가 만발한 느낌이랄까. 하나하나 화려한 묘사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간결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시였다.
 특히 본인은 '사랑초서'와 '촛불'이라는 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사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듯하다.

온 세상
삶 전쟁
빈집엔
죽어야 할만치 피가 달가운
여자
-사랑초서 中 24-
 

떫은 사랑일 땐
준 걸 자랑했으나
익은 사랑에선
눈멀어도 못다 갚은
송구함뿐이구나
-사랑초서 中 53-
 
물 속
천길 만길에
금두레박을 타고 온 이는 없다
찬물 찬물 밑바닥에
추워서
눈먼 여자
찾아준 이는 없다
너밖에는
-촛불 中 9-

 
 특히 '촛불'의 저 구절에는 페이지 끄트머리에 '물 속~찾아준 이는 없다'까지만 적혀있고, 다음 장에 '너밖에는'이라고 적혀있다.
 페이지를 딱 넘겨서 그 단어를 봤을 때의 감동이란!
 일단 처음 출판된 책이 오랜 세월 속에서 다시 발견되었을 때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한자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귀절들, 그리고 아까 위에 올려놓은 조그마한 센스(?) 등 개정판에선 없는 재미가 새록새록 솟아났다.
 이래서 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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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17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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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과 시니컬로 가득 차 있다고 자부하던 내가,
 "뭐야 이거 왜 이리 스토리가 어두워"라고 생각할 만큼 엄청나게 암울했다.
 한나라당의 부정에 가득 찬 과거를 알면서도 투표하는 우리들만큼이나 모순에 가득 찬 소설이었다.
 빅브라더와 골드슈타인은 결국 당과 이데올로기 속에서 숨쉬고 있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 속에서 그들도 불멸의 형태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카이사르와 부루투스건, 히틀러와 처칠이던, 아무튼 그 무엇이건 간에 흑과 백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책에서도 밝혀지듯이, 흑이라고 반드시 악한 건 아니다. 백이라고 해서 반드시 선한 것도 아니다!)
 오브라이언이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히 솔직한 그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지만 결국 미워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아니, 오히려 본인도 윈스턴처럼 어렴풋한 존경심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국 윈스턴뿐만 아니라 나마저도 저런 사람이 회유하면 홀딱 빠지겠구나 싶을 정도로.
 결국 오브라이언도 윈스턴도,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정치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저자의 자화상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오브라이언이 한 말은 구구절절 굉장한 명언(?)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정곡을 찌르며 오싹함을 느끼게까지 하는 말은 "히브리인과 비슷한 사고"였다.
 바알로 불리건 오시리스로 불리건 전부 이단으로 몰리는 다른 조국의 신들처럼, 혁명도 결국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조지 오웰은 예언해버린 것이었다. 하긴 '자유'라는 단어도 없어졌다는데 무슨 혁명이 존재하겠는가.
 결국 이 책은 소름과 오싹함도 남겨줬지만, 내가 '회개'라는 단어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번역자 분 번역 한 번 잘 하셨다 굿잡!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겐 유감스럽지만 역시 본인은 회개나 전도라는 말 듣기 싫어서 교회 안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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