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서는 기쁨 - 우리 인생의 작디작은 희망 발견기
권영상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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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상이라는 분이 아무래도 동화계열에서는 유명한 분이신가보다. 본인 말로는 배운 게 없다며 겸손하게 이야기하시지만 가정폭력에 관련된 교과서를 쓰는 데 동참하셨고, 선생님도 겸해서 일하시는 듯하며, 무엇보다 이 분이 쓴 동시와 동화가 엄청나게 많다. 이로 인해 호기심이 일어 리뷰단에 참여했더랜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김정현 씨의 아버지 시리즈를 보는 듯하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말이 너무 심하지만, 왜 동시에다 자꾸 아버지이야기를 집어넣는 것인지...-_- 설마해서 권영상 씨의 다른 시들도 찾아봤는데, 드문드문 아버지 이야기가 등장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아버지인 화자의 이야기이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감정이입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공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속초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계시는 우리 아버지를 보면 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아이들이 철 든 어른만큼이나 아버지에게 짠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본인은 어머니타령이 나오는 동시도 싫어한다. 가정의 소중함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를 거쳐 배워야 할 일이고. 그보다 동시에선 놀이의 소중함과 또래들과의 관계나 무엇보다 자연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껴야 할 터인데.. 
 뭐 그렇다고 시대착오적인 분은 아니신 듯하다. 아내대신 가정일을 도맡아하는 후배를 보면서 놀라기도 하지만 같이 안타까워해주시고, 자신의 반발감을 최대한 죽이려고 애쓰신 흔적이 역력하다. (실상 그 술자리에서 어떤 분위기를 풍기셨는지 본인은 모르지만.) 무엇보다 '뒤에 서는 기쁨'은 중년의 아버지들에게 주는 메세지같기도 하다. 삶을 아둥바둥 이끌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끔 뒤에 서서 자신의 결과물이 스스로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만족하라고 가르친다. 결혼도 안 했고 아직 어머니아버지의 딸일 뿐인 나는 여유를 가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여하튼 한 선생님으로서, 동시를 짓는 시인으로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 아버지로서의 권영상 씨가 나타나는 산문집이다. 오빈리일기만큼의 감흥은 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신통치 않은 시인은 아니었다. 한 번 이 분이 쓴 동시를 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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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마게 푸딩 - 과거에서 온 사무라이 파티시에의 특별한 이야기
아라키 켄 지음, 오유리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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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사무라이가 시대를 넘나들어 현대에서 푸딩과 케이크 등을 만들게 되었다는 다소 4차원적인 내용이다. 그러므로 소설의 전개와 현실감을 따지시는 분이라면 일단 기대를 버리고 보시길. 책으로 요리를 알고 싶어하시는 분도 포함. 여기에서 요리에 대한 교훈을 굳이 얻자면, '뭐든지 처음 시작하는 느낌으로 음식을 만들어라' 정도? 여담이지만 본인이 아르바이트했던 가게에선, 사장님이 일을 팽개치셨다. 음식을 만들던가 서빙을 하던가 뭐 하나라도 해야 하는데 손도 안 댄다. 그저 팔짱 끼고 가만히 아르바이트하시는 분들을 지켜보시다가 뭐라도 실수하려고 하면 잔소리잔소리... 당연히 그 가게는 얼마 안 가서 망했다. 스포일러일 듯한 발언이지만, 야스베도 계속 그런 식으로 가게를 운영했으면 거지꼴이 되었을 듯.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요소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였다. 사실 학교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주제로 강의를 들어왔었기 때문에 그 점에 주의한 요소도 있다. 소설 <아웃오브아프리카>의 저자 아이작 디넨센은 어떤 선언문에서 바느질을 예로 들어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설명한다. 여자는 바느질을 해서 아이들의 옷을 고쳐주지만, 남자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바느질 솜씨를 숙련시켜 성공하려 한다고. 현 시대에도 남자와 여자의 속성이 그닥 다르지 않다는 데에 놀랐다. 아무렴 히로코가 야스베보다 요리를 잘 하지 못했을까? 인스턴트식품만 좋아하는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몰랐을 뿐, 그녀도 음식을 만든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야스베가 자신의 성공에 여념이 없어 집을 떠나고 아이를 소홀히 하는 데 분개한다. 그러나 야스베는 신세를 갚기 위해서 집안일을 시작하고, 유독 케이크를 잘 만드는 데 정신을 집중하다가, 대회에도 출전하고, TV에 출연하고, 레스토랑을 차리기 시작했다. 여성의 인권을 신장한다지만 세계는 아직도 아직도 성취를 중요시하는 남자중심의 사회인지라 당연히 성공한 남자는 인기가 있다. 만일 야스베가 계속 집안에서만 음식을 만들었다면 사람들에게, 심지어 히로코에게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유독 케이크 류의 빵을 잘 만드는 남자 "셰프"가 인기있지 않은가? 
 그러나 계속 이런 흐름을 탔으면 이 소설도 양성평등주의의 비난을 면치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야스베는 180년의 시대를 거슬러 2006년으로 타임슬립해버린 사무라이, 즉 졸지에 직업이 사라진 남자이다. 히로코는 아들 한 명을 두고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싱글맘, 즉 혼자 생계를 꾸리는 여자이다. 둘의 의견 차이는 책 중간중간에 등장한다. 뭐 야스베의 시대에는 여자는 집안일만 해야 했고 히로코의 시대에서는 여자도 일을 해야 하니까. 나는 이 대결(?)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야스베는 현대여성이 에너지와 의욕이 없다고 비난하고, 히로코는 그 말을 듣고서 놀랄만큼 그의 말을 잘 받아들인다. 히로코는 성공한 야스베에게 음식을 직접 만들지도 못하고 집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야스베는 처음엔 화를 내지만 나중에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변화한다. 서로 완벽하게 상호작용하는 남성과 여성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말로 리뷰가 길어졌다. 아직도 칼과 총과 전쟁이 최고라 생각하는 남자들이 세상에 많다. 한 입 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천상의 푸딩'이 절찬리에 팔렸으면 한다. 

 P.S 영화도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에서 보면 야스베는 못생긴 40대 중년인데 니시카도 료가 주인공을 맡는다고 한다.....욕해봤자 료 팬들에게 역공당할테고. 차라리 안 보는게 낫지. 때려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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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불공정 경제학 - 당신이 절대 모르는 경제기사의 비밀
김진철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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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신문을 읽고 싶은 사람 중에서 순전히 경제에 대한 지식을 알고 싶어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닥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나 자신에 대해서 변명을 약간 보태고 싶다. 경제신문을 보면 모르는 용어가 잔뜩 쓰여져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서 살짝 쫄았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모르는 채로 그냥 발 뻗고 잘 수 없는 나는 경제학에 대해서 몇 권의 책을 빌려보았고, 결국 경제학 책 몇 권 봤다고 경제신문에 실려 있는 내용을 아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경제에 대해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놨다는 책에서도 비결제시는 천자만별이었다. 어떤 분은 닥치는 대로 경제학 책을 사서 읽으라고 하는가 하면, 어떤 분은 경제분야 자체가 몇 초 차이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으며 따라서 너무 많은 지식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본인의 어머니는 20년 주식경력으로 경제에 도가 트셨지만, 어디까지나 '여자의 직감'을 신봉하시는 분이시라 나와는 경제에 대해 접근하는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다르시다. 무엇보다 주식은 저마다 자신만의 체계를 만들어 뛰어들어야 하니까. 물론 어머니에게 주식통장을 맡기긴 했지만, 독립하면 내가 혼자서 주식을 꾸려나갈 계획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경제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다.
 서론이 길다. 그렇게 경제기사를 '제대로' 읽을 줄 알게 된다면 떡고물을 좀 더 쉽게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김진철 씨는 "경제신문을 보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신문을 보는 서민들이 있다."라는 구절로 이 책을 시작하신다. 이건 너무 따끔하다 못해 아픈 것 아닙니까 ㅋ 당신이 절대 모르는 경제기사의 비밀을 꼬집으신건 좋은데, 경제신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문들을 제대로 보는 법을 가르치신다. 특히 본인도 소문으로 들어서 어렴풋이 인지하고만 있던 신문광고의 비밀을 속속들이 꼬집고 찌르고 파헤치신다. 글쓴이가 하고 싶던 말을 속시원하게 털어놓은 칼럼성격이 강했다. 그렇다고 글쓴이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전문용어를 줄줄이 풀어놓은 글은 아니다. 박정희 시대 기자들의 밤문화와 줄기세포 소동을 거쳐 천안함 사건까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예로 들어 언론의 여러가지 실수들을 본인같이 뉴스를 전혀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마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어렵게 생긴 표지와는 달리 글을 매우 쉽게 풀어놨다는 소리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이 글을 쓴 목적이 너무나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일단 소셜네트워크의 개방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며, 트위터 등 여러가지 매체들을 활용하여 직접 기자가 되라고 말한다.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대중들의 언론의식을 아직도 모르는 기자들을 꼬집어달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자폭같기도 하다. 얼마나 신문매체가 하락하고 있으면 그런 말까지 나올까 싶다.

 될 수 있으면 기자지망생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다. 경제학 전공서적들에 실린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신문을 보려 하던 건데, 영문 모를 용어들이 산발하면 신문 자체를 읽고 싶지가 않다. 김진철 씨에 의하면 기자가 공부를 할 시간이 없고, 그냥 보도자료 자체를 베껴쓰다보니 그런 기사가 나오는 거라고 하는데 언뜻 이해는 간다. 번역에서도 번역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있는 번역본과 생각없이 사전에서 베낀 듯한 번역본은 얼마나 큰 차이가 나던가. 개인적으로는 본인처럼 돈 벌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정곡찔린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다만 너무 한X레를 밀어주는 듯해서 약간 찝찝했던 구석이 있었는데, 저자 소개란을 보니 한X레 기자... 아. 이래서 기자의 소속을 보라고 그토록 강조하고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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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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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힘들거라고요. 지금보다 더 힘들거라고요. 이보다 더 힘든 건 없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더 힘든 상황이 올 거라고요. -아내에게 버림받은 강찬에게 찬강이 위로를 보내는 장면. p.188

 

 '연리지'라는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결국 본인에게는 여자가 죽고 남자가 질질 짜는 3류 영화에 불과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둘은 정말 지독히 서로를 필요로 했다. 결국 죽어가는 여자에겐 살아가는 남자가 필요했고, 살아가는 남자에겐 죽어가는 여자가 필요했다. 연리지처럼 뒤엉켰다가 수액을 철철 흘리면서 떨어졌기에, 그들은 진짜 아픔을 겪을 수 있었다. 결국, 영화 속 그 커플들은 서로를 이용해서 진정한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보단 행복하게 되었다. '사랑한다면 연리지처럼..'이라고 자신의 어느 칼럼에 제목을 붙인 나무의사가 있었다. 사랑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기에, 그렇게 이기적이 되는 것일까.  

 일단 이 소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느낌은, 오한이었다. 작가는 혹시 어떤 남자를, 아니 어떤 남자와 같이 자신마저 식물인간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면서까지 그렇게 꽁꽁 묶고 싶었던 것일까. 거리는 1미터 남겨둔 채, 감정과 생각을 텔레파시처럼 나눌 수 있지만 몸은 1미터를 앞두고 떨어져 있는, 하지만 '그 거리에서 일밀리미터도 멀어질 수 없는' 남자와 여자. 강찬과 찬강. 서로 뒤바뀌었으면서도 같은 이름마저 너무나.. 도착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나무가 되기를 선택한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엔 그저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연결되어 있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연인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하루만이라도 특정한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모든 걸 바치고 싶어하는 사람이 본인 말고도 더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불행의 극치를 달리는 그들에게 알 수 없는 질투심을 느끼는 독자들도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소연과 상혁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있는대로 뿌려댈테니, 양해해주시길.

 소연은 말 그대로 '상처입은 짐승'같은 캐릭터이다. 그녀에게 반한 자원봉사자 상혁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구애를 하지만, 그녀는 심한 말을 하면서 매정하게 뿌리칠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너무나 화가 났었다. 그러나, 책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나서 본인은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것은 내 이야기였다. 상처입어가는 과정도, 성격도 완전히 다르지만 그건 확실히 내 모습이었다. 싹싹하고 일처리에 능숙한 간호사캐릭터는 아니지만 간호조무사를 배우고 있고, 남자에게는(특히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무섭게 쏘아붙이는 내 모습은 한 마디로 위선적이고 역겨웠다. 소연은 결국, 상혁이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를 파괴한 것이었다. 소연은 자신의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그 불덩어리를 견디지 못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심하고 풀어놓은 것이었다. 그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상혁은 끝내 그녀의 신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의 분노가 무서워서 숨어버리고, 소연은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버린다. 그들은 결국 몸으로는 하나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소설이라서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좋아하는 사람의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그 분노가 그렇게 쉽게 풀어질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정녕 그녀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원한을 풀고 새 인생을 시작하려면, 요양원을 떠나야 했다. 상혁과 상혁의 어머니가 있었을 때, 자존심이고 뭐고 무릎꿇고 싹싹 용서를 빌어야 했다. 설령 자신이 요양원에 남더라도 아이만은 요양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줘야 했다.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요양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결국 그녀는 마지막까지 용기가 없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혁에게는 차마 용서를 빌 용기도 없고, 요양원도 아이도 풀어줄 수 없어서 자신이 다 가지고 가야 했던 것이다. 그 다정함, 그 친절함 속에 분노의 불씨가 아직 남아있으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뭐 상혁을 볼 낯도 없고 보기 싫다고 하니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 그러나 상혁의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 그녀의 말에서부터 왠지 나도 심기가 뒤틀렸다. 그녀를 좀 더 용기 있는 여성으로 표현해 줄 수는 없었을까?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다 감동적이었지만, 나는 소연과 상혁의 결말만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말해두고 싶었다.

 강찬의 이야기에서까지 스포일러를 뿌리고 싶진 않지만, 이 한마디만 하고 싶다. 모든 불행은 인과응보로 인해 생긴 것. 이 책에서는 '권선징악'같은 흔한 스토리를 쓰지 않고서도 그 사실을 아주 서정적으로, 그리고 지독하게 냉정히, 담고 있다. 결국 '용서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용서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용납할 수가 없다, 아니, 용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소연처럼 '어쨌거나 쿨하게', 나에게 그 모든 고통을 가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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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어빈 얄롬 지음, 이혜성.최윤미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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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인심리치료보다 집단심리치료가 아주 좋은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위험상황이 많고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단점때문에 그 가치가 가려진다고 해야 할까. 뭐어 그건 일대일심리치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만. 사실 어빈 얄롬의 ’카우치에 누워서’라는 심리학 책을 노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처음 집게 된 책은 이것이었다. 쇼펜하우어와 집단심리치료의 만남은 사실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게조차도 너무나 키워드가 안 맞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형적인 소설 방식을 따라가고 있지만 심리치료라는 가상현실과 쇼펜하우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조합시켰다. 또한 줄리어스라는 유대감 높은 심리상담가와 필립이라는 감정이 결핍된 철학상담가의 대립도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흥미가 있었던 장면은 팸과 필립의 만남이었다. 여기까지는 스포일러이므로 생략. 여성과 남성에게 얽혀있는 감정을 매우 잘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겨내려 노력하는 남성에 대한 편견이 팸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아무튼, 심리치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그동안 쇼펜하우어를 부정적으로만 보았었는데, 프로이트가 그의 이론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일단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부터 정독해봐야겠다. 쇼펜하우어에게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파격적이라고 생각한다 ㅋ 하지만 그가 치료되었다면 과연 지금 허무주의라는 개념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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