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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게임
아다치 모토이치 지음, 성지선 옮김 / 바다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어떤 책에서 멋있게 수염을 기른 노인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어린아이가 그 노인에게 잘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는지 이불 밖에 꺼내놓고 자는지를 물어봤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인 자신마저도 수염을 이불 안에 놓는지 밖에 놓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랜다. 그래서 결국 그 노인은 밤새 수염을 이불에 넣다 뺐다 하느라고 잠도 설쳤다는 이야기이다.
쇼지와 사에는 마치 옛날이야기의 정령들처럼 홀연히 책에 등장해 유희를 부리고, 그 유희에 말려든 인간들이 덫에 걸려드는 장면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러다가 마치 그들이 책에 쓰여지지 않았던 것마냥 홀연히 사라진다. 단지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요정들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웃고 떠들며 그 비극을 즐길 수 없었다는 것 뿐. 그저 아무 말 없이 폐쇄된 방 안에서 TV스크린을 보며 이렇다 저렇다 상황을 평가할 뿐이다. 처음에 나온 이야기는 뭐 그럭저럭 넘어간다치고 두번째 이야기는 정말 섬뜩한 이야기였는데, 읽는 동안엔 그닥 섬찟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쇼지 특유의 무감증에 전염된 것일까? 덕분에 보는 사람의 마음도 다소 가벼웠다. 화려하게 치장된 비극적인 쇼를 보는 기분이었다. 딱딱한 문자보다는 예산을 철철붓고 CG를 적절히 녹여 만드는 요즘의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뭐랄까, 결국 이 러브게임의 창시자인 쇼지와 사에는 못된 년놈들이다. 사랑의 진실된 모습을 찾으려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 진실들을 낱낱이 들어낸 주제에 결국은 계속 살기로 결심했다니. 괘씸하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모습에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둘은 세상에 있는 모든 커플들처럼 사랑을 찾으려 하고, 사랑에 아파할 줄 알고,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수많은 희생을 치러서야 그 둘은 자신들에게 걸맞는 결말을 찾았다. 아니, 찾으려 한다.
이 책은 사랑이 어떻다는 결말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단지 손을 맞잡은 모든 커플들의 내부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그 의문을 제시할 뿐이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사랑이야기가 있고, 온 세계의 사랑이야기를 담아낼 책은 없다. 그 전부를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은 남들 이야기 중에서도 최대의 프라이버시, 사랑이야기를 듣는 걸 최고로 치는지도 모른다. '스캔들'이라거나 '우결'같은 방송이 아직도 망하지 않고 계속 방영되는 걸 보면, 스크린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관음증 증세는 꽤 오래 버티려나 보다. 아울러 '진짜 사랑'을 찾으려는 어리석은 방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