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Garo Tv Collection 2 (가로 TV 컬렉션)(한글무자막)(Blu-ray)
Section 23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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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 드레스 따윈 입어서는 안 된다!

좀 고어 이미지가 강하다. 예전 중세 시대 가로 애니가 여성 차별로 가로의 대를 이었다면 여기선 제대로 가로의 고어를 표현한다는 느낌이다. 이 애니가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이건 가로 시리즈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던 전개다. 바로 여성을 차별하는 남성들이다. 물론 가로에선 여성을 지켜주는 남성들이 돋보인다. 그 대신 여성이 창녀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드물게 선한(?) 여성은 창녀가 아니었다. 사실 느와르물이나 액션물 대부분이 그렇지만 가로는 좀 심했던 편에 속한다. 그런데 이 애니에선 여성이 마녀가 되어 직접적으로 싸운다는 인상이 강했고, 여주인공도 수녀에게서 유도를 배웠다는 파격적인 전개를 보인다. 게다가 남성이 여성을 지분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특히 아재 꼰대들이 쓰는 언어라던가가 자세하다. 이게 굉장히 신선해서 감독이 누군지 자료를 찾아봤는데, 한국분이시더라. 상당히 놀랐다. 아마도 요새 한국의 페미니즘 논란을 보면서 그걸 애니에 반영시킨 게 아닌지. 무튼 이건 피 못보시는 분들은 스킵하는 게 좋겠다.

아무튼 진짜 이번에 물건 건졌다고 생각되는 애니다. 가로 시리즈 한 번 못 봤다 해도 대충 마계라던가 마법아이템이 뭔지만 알면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으므로 난 다른 사람들도 일단 보길 강추한다. 혹시 가로 시리즈에 흥미가 생겼다면 가로 맨 처음 드라마만 보시길. 중세버전 애니도 있는데 사실 그닥 추천 안 함.

 

 

 

아니 그나저나 여동생한테 다신 드레스를 입어서는 안 된다 뭐야 시불 미친 드레스 입고 말고를 니가 웨 재단? 니는 신부라서 결혼 안 한다 치고 여동생 결혼 해야 될 거 아냐 사이코새꺄;;; 이 다음에 오빠가 여동생에게 본색을 드러내서 결국 메챠쿠챠 되던데, 와 솔직히 가로 시리즈에 나오는 호러 중 제일 불쌍한 호러였다; 기억에 남을 듯.

 

전형적 히키코모리 프로그래머라는 설정을 만들어놨다.
기존의 과학자는 밀실에서 혼자 무언가를 만든다는 설정이 강했고, 과학자들이 연계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통해서 히키코모리를 타파할 수 있으며 애초 히키코모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강했다.
그래서 가로에서 만든 게 프로그램 엘도라도. 말 그대로 프로그래머들이 오감을 지배하는 네트워크에 틀어박혀서 몇 년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기업의 의지대로 시스템에 적힌 대로 행동하는 조직의 기계적 인간이 된다는 설정이다. 그 기업에 사람이 하나 둘 잡아먹히는 것도 모른 채.

물론 가족 중요하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러나 아이들은 노는 질보다는 당장 놀아줄 가족과 양이 필요하다. 시스템과 교육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노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함리 인성 좋은 아이들과 같이 노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걸 모르는 부모가 너무 많은 듯; 이걸 개인이나 기업이 혼자서 다 떠맡는 것도 무리지만. 그래서 이 애니의 세계관에선 일반인의 행복을 가로가 다 떠맡고 있지만, 어차피 같은 마계에서 온 이상 타락할 가능성도 높아 가로의 기업화 또한 없어져야 할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가로 초반부터 등장했던 숙제를 잘 부각시킨 듯하다.

 

 

 

액션신에서 딸릴 줄은 몰랐다. 가로는 무거운 금색 갑옷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민첩한 게 생명인데. 갑옷의 LED(???)에 신경을 쓴 탓인지 움직임이 굼뜨다. 그리고 가로는 마계기사인데 왜 육탄전에 쎈 거냐. 중세 시대 가로에서의 호쾌함도 없어서 그냥 난투라는 느낌만 준다. 차라리 마녀 누님이라도 등장시키면 또 몰라;; 뭔가 9.11 테러라던가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사회적 이슈는 자꾸 나오는데 이러면 가로로서의 정체성이 자꾸 덮이는 문제가 있다. 이래서는 마계기사 가로라기보단 그냥 황금갑옷 입은 인간들의 싸움밖에 안 된다. 최종보스도 이러다 가로의 주먹에 떡되고 끝나는 거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처음부터 반전도 너무 뻔해서 재미는 지속적으로 떨어져가는데 액션신까지 이 꼴이면 어떻게 하려고? 차라리 슴가 모핑하는 정성을 가로 민첩성에 들여라; 그렇지만 중간보스와의 액션은 나중에 차량 액션으로 무마된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 타고 검이나 총 쓰는 거 매우 좋아하더라... 그래도 어쨌던 꽤 재미는 있었다.

키타 슈헤이의 음악감각 상승에 경의를 표한다;;; 가로가 잼 프로젝트 음악에 의해 떠서 잼 프로젝트 음악을 상당히 고집하는 특성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점점 음악이 맛이 가기 시작했다. 그걸 짐작했던 건 중세 시대 가로. 아무리 봐줘도 가사랑 음악이랑 이건 뭐 난장판... 결국 이 가로 베니싱 1기 오프닝은 처참해서 봐주지 못할 정도가 되었는데 2기 오프닝은 과감하게 바꿨더라. 근데 이게 잼 프로젝트를 이겼다(...) 이제 잼 프로젝트는 마도구 성우로써 먹고 살게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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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2 - 바닥난 인생길 위에서 다시 예수를 만나다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2
데이비드 그레고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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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때나 죽나요? 하늘아버지께서 데려갈 준비를 마치셨다면 모를까."



 

주인공이 다시 예수님을 만난 장소는 길가의 고속도로이다. 왠지 1권에서 주인공이 예수님께 식사를 초대받은 곳이 고급 레스토랑이어서 엘리트 같다는 공격을 받았던 건지(주인공도 초반에 그 사실을 지적한다.), 이번엔 꽤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오히려 1권보다도 더 예수같다는 분위기를 풍기긴 한다.


교회에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십일조였다. 이 이상 배를 불릴 수 없는 교회도 있을텐데 어째서 재산의 10분의 1을 내는데 그렇게 집착할까? (성서에서의) 예수는 일단 빚도 내고 갚을 거 다 갚은 다음에 십일조를 내라고 하지만, 이 책의 예수는 '세금 다 뗀 다음에 십일조를 내야 할까, 아님 세금 안 냈을 때 십일조를 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서 십일조의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하다. 굳이 돈을 내고 싶다면 자기 형편이 되는 부분에서 양심껏, 아님 목사님에 의해 감명을 받은 만큼 성의껏 지불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신이 있다고 굳게 생각한다면 자기 억제는 필요없다. 다 아는 분이 보고 계시니 조심하자고 생각하게 될테니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느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지 말아달라고 빌었다. 이는 성경에도 나오며 이 책에도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자체를 두려워 했다기보다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는 행위가 곧 신에게서 버려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그는 조물주이자 아버지에게서 버려지는 고통, 온 우주에서 내쫓기는 고통에서 피하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다시 성경기록을 확인해보면 나무에 매달린다는 것은 신으로부터 저주받는다는 뜻이었다. (신명기에 나온다.) 즉, 예수는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신의 아들이었던 것. 예수는 인류의 죄를 모조리 뒤집어쓴 채 하느님의 분노를 모두 받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껏 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하느님께서는 어떤 죄를 지었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죄와 죄를 지은 사람을 미워해도 하느님만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건 용서한다는 의미와는 많이 다른데, 실제로 이 책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가 닉과 트럭운전사를 용서했다는 대목은 없다. 오히려 예수는 트럭운전사가 다시 교회를 다니면서도 포르노를 보는 이율배반적 행위를 계속할 것이라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베푸신다. 우리는 받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어찌보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상당히 관심이 없으신 듯 보인다. 당연하다. 하느님은 다른 사람보다 어떤 사람을 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자 그에게 가장 미움을 받는(!) 예수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분은 당신의 삶 속에서 우리를 지켜볼 뿐이다. 이 책의 비유에서라면 마치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지켜보듯이 말이다.

이 책에 단점이 하나 있다면 계속 영원을 따진다는 것이다. 그게 있는지 없는지 난 솔직히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솔직히 죽을때도 천국이 영원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나. 그걸 파헤쳐보고 과학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게 정말로 종교가 해야할 고집이 아닐까 싶다. 따지고보면 불교 빼면 거의 모든 종교가 영원성을 따진다. 그런데 불교도 중생들 다 구제해서 파티를 벌인다면 언제 끝나고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나. 얘기도 안 하고. 기왕 천주교에서 독립한 종교인데 좀 더 쿨해지면 안 되나.

 

어느 집회에 참석했다가 들었는데, 메탈리카나 R.E.M은 물론이고 사이먼 앤 가펑클의 히트곡들도 하나같이 악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앞에서 거룩해지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천 음악을 담은 음반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조리 없애버렸어요. 나중에 '2006년에 일어난 CD 대학살 사건'이라고 제 역사책에 기록될지 몰라요."
"맙소사! 사이먼 앤 가펑클은 제법 괜찮은 음반인데...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면 다니 다운받을 수 있을 거예요, 알고 있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예수를 바라보았다. '희안하기도 해라. 내가 지금 예수님과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 이야기를 나누다니! 갈릴리 언덕에선 상상도 못했던 일일걸?'



 


예수도 인정한 사이먼 앤 가펑클. 사실 메탈리카던 무슨 음악이던 간에 남의 취향에 오지랖 참 많다 싶음. 목사님도 아들딸들 낳으실 텐데 왜 선정적인 가사(?)는 싫어하시는 걸까 싶기도 하다. 악마적인 리듬(?)의 기준도 애매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음악을 찬송가나 가스펠만 듣는 사람들도 주변에 몇 있긴 하더라. 인생 뭔 재미로 살까? 사이먼 앤 가펑클이 예언자와 신을 노래하는 모습은 그냥저냥 그 자체로 다른 이들이 CCM 가수라고 라벨을 붙여줘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하튼 자기 맘에 안 들면 전부 악마적이라고 쏘아붙이는 것들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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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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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관심의 초점을 개인의 비극에 맞추고 "오죽했으면..."이라는 반응에서 드러나듯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을 동정하고 끝나도록 만듭니다. (...) 처음에는 "대안을 내놓아라", "그게 왜 문제냐"라는 기자들의 반박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반면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편집국 내부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는 의견을 전해주었고 국민일보, 매일경제 등 지면을 통해 이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를 표한 언론들도 나타났다.

사실 주간경향 2권 밀려봤다.
페북 충실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원에서 집으로 올 때 잃어버렸다. 찜질방에서 술처먹을 땐 책을 챙겨오고 정신 멀쩡할 땐 잃어버리는 나님;;;
무튼 역사저널 그날 2권도 다 봤겠다 볼 게 없어서 반투명인간을 쉬엄쉬엄 읽으면서 3권을 빌리지 않고, 대신 중간에 읽으려고 이상한 정상가족을 빌렸다. 묘하게 이 책은 우리동네 국립도서관엔 없고(두 군데나 있는데도 그렇다.) 시립도서관에만 있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나도 한창 이 책 빌린 사람한테서 예약해서 봤다. 이렇게 발암책이었음 한 번 생각해봤을지도 모른다. 공부할 땐 과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도 잘 오지 않고 무엇보다 SNS에서나 블로그에서 열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에 해를 끼친다;;; 그래도 의외로 통계자료가 많아 레포트를 쓰는 데에 많은 참조가 되었다.

요즘은 흔하게 쓰지만 나는 예전부터 부모와 아이의 동반자살이란 어구에 의문을 표한 적이 있다. 나도 유치원 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기에 나같은 애가 드물다는 걸 더욱 잘 안다. 아이들은 대게 죽음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살에 대한 관념이 투박하다. 그리고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가 자살하려는 걸 말릴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에 극도로 예민해졌던 나는 일가족 동반자살을 다룬 인터넷 신문기사들에 그런 의도의 댓글을 달아왔었다. 요즘에는 드물지만, 뉴스에선 자주 그런 표현이 쓰이는 듯하다. 혹시나 어딘가에서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단호하게 제지해라. 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이라고.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남이다. 힘없는 자를 죽이는 행위는 명백히 살인죄이다. 오죽했으면 이딴 말 들으면 솔직히 그 말한 사람을 좀 때리고 싶다. 부모면 애 주변 환경을 개선시키려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죽여...



 



 


우리나라에서 이주여성과 그 아동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우리나라 여자들하곤 결혼할 수 없는데 부모님을 위해 후손을 만들어야 하니 국제결혼을 찾겠다는 사람 꽤 있었다. 그냥 너는 여자와 결혼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가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응 난 애 안 낳을 거니까', '출산장려 정책 하에서 아동학대 이야기가 나오는 거 아니냐', '몇몇 사이코들만 애를 학대하고 그러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넘어간다는 것이다. 무슨 섹스 안 하고 애 안 낳겠다고 혈서라도 썼냐...? 니가 애를 낳고 안 낳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니 옆의 애가 폭력을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 애가 니보다 더 머리가 좋은데 폭력을 당해서 나중에 공무원이나 정치가가 되어 니 국민연금과 노후자금을 보장해줄 가능성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고. 폭력에 의한 스트레스는 정서지능, 문화지능을 낮출 정도로 상당하고 이는 실험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웃긴 건 몇몇 사이코들이 애를 학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장애인아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장애가 있는 애라면 나도 가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생각까지 서슴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아이를 키우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동학대의 소식이 나오면 자신의 아이를 절대 때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결론이 왜곡되어 나왔을 수도 있다. 아무튼 간에 그런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비혼하겠다는 사람들이 제일 위험하다. 청년들이 위기라고 하지만 아이들, 특히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위기에 놓여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원래 이슈가 덜 되는 법이다.

이상한 건 체벌을 하는 사람들 중에선 부모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정하는데, 학대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강력히 부정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부모로부터 학대를 경험한 사람 들 중 70%가 똑같이 자신들의 자녀를 학대하다보니 그런 걸 부정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결과, 아무래도 99.9% 체벌은 학대가 맞는 것 같다. 인간이 체벌을 효율적으로 통제한다는 게 가능한가?

체벌은 문화적 가치가 될 수 없다. 아시아 문화에서의 체벌은 야만과 다름없고 특히 우리나라가 그렇다. 우리나라 역사가들은 조선시대 초기에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자 자신의 권리를 다른 사람이 침범하지 않게 하려고, 다시 말해 왕권을 보전하기 위해, 가부장제가 포함된 성리학 제도를 굳건화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한다. 체벌은 절대 조절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함께 같이 문화는 기득권자가 하층민을 조종하기 위해 만든 비정상적 문화다. 이기주의를 찬성하는 게 아니라 개인주의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와 서양 문화가 다르다고 주장할 때가 아니다. 잘못된 문화는 버려야 한다. 대학교에서 수업 듣다가 체벌을 옹호하는 듯한 교수의 말을 듣고 빡쳐서 쓴다. 확실히 대학교가 어디냐에 따라서 교육의 질이 달라지나보다. 가대에서는 교수나 학생이나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체벌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주변에도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해 또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미투 운동이 일다보니 페미니즘으로 비유를 들어 이야기하는 게 진행이 빠르겠다 싶은지 책에선 성추행을 예로 들어 아동학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동과 어른 사이는 신장 차이라던가 힘 차이가 현저하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하도 체벌을 긍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우리 부모님도 긍정하신다.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어머니 쪽이 외할아버지에게 물려받으심..) 그러려니 한다.

자식을 부모가 원하는 대로 이끄려는 태도에서부터 체벌긍정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줘도 된다는 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자각시켜주는게 무진장 어려운 것 같다.

내 지인들도 간혹 집과 연락을 끊고 독립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들이 스스로 집을 나왔는지, 아님 정 견딜 수 없어서 나왔는지, 아님 부모가 자녀에게 빌어 먹으려다가 오히려 청년실업 등으로 자녀들이 어려워지니까 나왔는지 그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립한 자녀에게도 자주 전화해서 돈을 내놓으라 협박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이 봐서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나마 부모와 연을 끊지 않았다면 체벌에 대한 문제는 자주, 확실히 이야기하여 체벌도 학대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그 부모와 만날 수도 있는 아이가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리고 청년보다 노인들이 일자리에 취직한 경우가 많다고 자주 뉴스에 뜨는데 이건 무슨 의도인지;;; 물론 노인들이라면 무슨 알바라도 하려고 하겠다. 취직도 잘 안 되니까. 그러나 청년들은 무슨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으니 소화시키려고 백수하면서 대기업 입사 공부하는 줄 아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일자리 퀄리티는 떨어질테니 처음부터 높은 직위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는 게 아닌가. 나는 이런 것도 아동청소년에 대한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동학대의 '추억'이다. 육체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폭력은 쓰지 않는 게 맞다.

나도 사실 체벌을 받으면서 자랐고,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 부모님의 체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란 사람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빨간머리 앤 동화책 앞면에 다이애나에게 주는 편지를 썼을 때 체벌했던 것, 유산균은 세균이 아니라며 체벌했던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항상 아파트 밖으로 나를 끌고 나와 나무를 꺾어서 집으로 같이 들어간 뒤에 때렸으며, 친구와 놀다 집에 늦게 들어가면 친구를 때리기도 했다. 그 때문에 단짝친구와의 관계도 소원해졌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아닌데라고 느끼기 시작한 게 5년동안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였다. 나와 가치관이 상당히 다른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의 성적 차별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부모님을 잃고 싶지 않아서, 내가 살기 위해서 권위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이다. 나에게 스트레이트로 폭언을 하는 친구들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았다.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친구 관계도 싹 정리하고 나서 좀 시간이 지난 다음 나는 그 이야기를 부모님과 같이 나눴으며,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다음에서야 부모님도 내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와 자유롭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시며,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난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부모도 인간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왜 '정상적인' 부모도 '정상적인' 아동에게 학대를 할 수 있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인터넷 입양이라니 이쯤 되면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무슨 강아지 고양이 입양시키는 것처럼 사진 찍어서 키울 역량이 안 되니 데려가라고 하는 거냐.
키우기 힘든 건 알겠지만 상상되는 비주얼이 넘나 비참해 보이잖어. 게다가 입양부모한테 파양 교육하는 행태는 뭐냐. 입양하는 부모에게 애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굳이 배워야 한다면 입양가정에서 학대 벌어질 때 대처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여러가지로 무슨 동물 다루듯 하는 것 같아 소름끼치고 맥이 빠진다.


가끔 생각한다. 어차피 재수없게 대대로 학대를 가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거 선천적 특성은 어쩔 수 없지만 후천적 특성은 최소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가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근데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만 학대를 가해야 입양이나 위탁이 될랑말랑이니 정말 살기 힘들단걸 느낀다. 좋은 입양가정이 될지도 너무 케바케고. 우리나라는 레알 그냥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버텨서 한시바삐 1인가족 되는 게 답인 듯.

계속 일본의 여성차별을 비웃었지만 우리나라도 사실 가족에 대한 비정상적인 사랑에 대해선 일본보다 더하지 덜하진 않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최대의 과제는 비정상적 가족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설득시키는 것이라 본다. 그 다음 과제는 구성원 하나라도 합치길 원하지 않는 가족은 붕괴시키는 것. 진보쪽에서도 아무리 가족이 빻은 말을 하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대놓고 여자한테 설거지 시키고 부모가 학대를 해도 투덜대긴 할 망정 거길 탈출할 생각을 안 하더라. 솔직히 좀 놀랐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는 것 같지도 않고. '방심하면 안됨 학대는 심해지는 게 정석이고 맞다가 죽을 수도 있음;;;' 이렇게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다들 자기 자신에게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미 우리나라는 다들 체벌을 받은 이상 이미 폭력을 겪었다고 보면 된다; 한 번 맛보면 놓을 수 없는 게 폭력임.

몇번씩 이야기하고 울면서 취중진담 식으로 만류하기까지 하다가 결국 손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많다. 취직하면 제대로 설득해서 피해자들을 폭력에서 탈출하게 하고 싶다. 사실 이게 사회복지사를 시작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내가 교사는 아니라서 말은 짧게 할 거지만 그럼 학교의 체벌은 어떨까? 지금은 그렇지 않을테지만, 처벌할 때 뺨을 마구 후려갈긴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일본음악을 듣고 있었고, 지적할 때마다 날 노려보는 게 재수없어서라고 했다. 결국 선생님도 요새 아이를 사산한 적이 두 번이나 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니 화풀이를 한 것이라 인정했다. 유교 관련 교육을 일부러 받으러 가서 회초리를 맞고 그곳에서 같이 배우는 아이들에게 뺨을 맞기도 했다. 그때 그곳의 선생들은 법적 처벌보다는 다시 뺨을 때린 가해자들을 목도로 패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가해자를 다루는 최악의 형태다. 체벌을 하지 않는다는 선생님들 대부분이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부모가 아니잖아요." 나는 그것도 비겁한 변명이라고 본다. 술을 마신 채로 아이를 때린 선생님도 봤다. 일단 체벌은 무조건 화풀이다. 일단 공무원이지 않나. 공무원이 민원인을 때리는 거 봤나?



 

비하로 쓰려던 건 아닌데 페북에 누구누구 아주머니 어쩌고 올렸다가 그 분이 엄청나게 화를 내서 진땀 흘린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열심히 일해보려고 욕심내서 직장에서 언니라고 부르다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지적당했던 적도 있다. 가부장제와 가족주의는 도처에 있다.

 

남편은 뭐 하느냐", "아이는 몇 살이냐", "결혼을 안 하는 이유가 뭐냐",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 등등 가족에 대한 질문들은 소위 '결혼적령기'를 지났으나 비혼 상태인 성인, 미혼모, 성소수자, 무자녀 가족 등 다수의 사람들에게 폭력적이다.


남편 뭐 하냐 트루냐; '뭘로 트집잡으려고?'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아 왜 그렇게 남에게 관심이 많음 짜증나게;
당신들이나 잘 살라고 해두고 싶다.
그나저나 안희정은 예전에 범죄 해결 방법으로 마을공동체 회복을 건의했다더라. 공동체 만들어서 하렘 만들려고 했나보다. 역시 난 가족의 해체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파괴는 또 다른 창조다. 이런 점에선 이 책과 내가 가는 길은 다른 것 같다. 아, 동성혼은 인정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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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1270호 : 2018.04.03
위클리경향 편집부 지음 / 경향신문사(잡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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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세월이 흐를지라도
결코
용서하지도 말고
결단코
잊지도 말자



 


사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다정히 대해주지는 못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하는 마음이 필요하겠다.


사회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진 사람은 그들의 선택으로 생각하자. 그러나 그들이 그런 선택을 취했던 과정은 고려할지라도, 그 결과는 결단코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약한 여성들을 괴롭히면서 진보가들이 받아야 했던 고문과 재판에는 팔짱을 끼고 쳐다봤던 고은 등의 기회주의자들을 꼭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선 여성들을 짓밟을 수밖에 없다'라는 글을 쓰는 여러 남성들도 그 심판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나중에 죽어서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은 지옥을 간다는 이론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제대로 이 치욕을 당신들에게 되돌려줄 날이 올 것이다.

안희정 사건 등으로 인해서 다른 뉴스가 덮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뉴스가 미투 운동을 제치고 떠올랐던 게 더 이상합니다. 저는 지금 홍준표의 막말들이 덮이는 걸 보며 쾌감 최대치. 그런데 이젠 안 전 지사가 더민주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미투로 안 전 지사가 몰락한 것은 친문진영 내에 그나마 남아있던 책임총리제를 지지하던 입장의 몰락을 위한 결정타였다. 그와 동시에 대통령 연임제를 선호하는 '부산친노'가 순식간에 개헌팀을 장악했다는 이야기까지. 과연 그럴까?

어차피 나는 안 전 지사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들어서(...) 근데 요즘엔 총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듯하다. 10년 전만 해도 총리에게 권력을 주는 건 일본처럼 보수의 영구집권화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때 무당이 권력을 잡았다보니;;; 민심 중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그래도 총리에게 권력을 주면 이 꼴은 나지 않겠지'라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어쨌던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집중되었으니 어떻게든 억눌러보자는 건데... 내가 보기엔 어쨌던 문재인은 개헌을 꼭 통과시켜보고 싶은 것 같다. 최소 개헌을 만드는데 협력한 인물들을 보면 지방선거 노리고 급하게 꾸민 팀은 아니다. 저 많은 보수들을 아닥시킬 카드를 쥐고 있는 건지(홍준표가 저렇게 급하게 마이더스의 손이 된 것도 어쩐지 좀 이상하다고 본다.), 아님 그냥 허세인지. 어찌될지 지켜볼 일이다.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시간이 없으니 그냥 진보적인 대통령이 되었고 박근혜 세력이 아직 정신을 추스리지 않은 이 혼란기에 아예 법을 싹 바꿔서 뿌리를 박을 생각인 듯하다. 그렇지만 선거 연령을 정해버리면 페친들 말대로 더 연령을 낮추고 싶을 때 기회가 나타나질 않는다는 문제도 있을 듯하다. 어쨌던 난 개헌해서라도 빨리 바꿔야지 만약 또 보수 대통령이 당선되면 선거연령 낮출 기회는 다시 물 건너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개헌에 대해서 찬성이긴 한데... 공무원 노동3권 등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아지는 듯하다 ㅠ



 


곽상진 교수님은 좀 잘못 알고 계신 듯한데 청와대에서 동성혼을 인정했다니... 기독교에서 계속 반발을 하니까 수그러든 행동을 보인 건 인정 안 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양성이란 단어가지고 그렇게 폭넓게 해석하는 건 무리다 싶고.


그리고 공무원 노동3권에서 현역군인 등을 제외한다는 법칙도 마음에 걸린다. 기본권을 명시하는 건 좋지만, 예외범위가 정해지기 시작하면 제외하는 범위가 한정없이 늘어나는 거 아닌가 싶다. 그 외엔 쭉 읽어봤는데 괜찮은 듯 싶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우리 사회 인식 수준을 봤을 때 A-는 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국민들 수준보다 너무 앞서나가면 통과가 안 될까봐 마이너스시킨 듯하고.



 


좀 지적할 게 있어서 써본다.
내가 완전 문과인데다가 이제 점점 문과화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일본의 과학기술사 사전에서 일본의 기록이 없는 이유는 외국의 사례만 올려서가 아닐까?'를 생각할 정도의 머리는 돌아간다. 일본에서는 딱히 SF가 아니더라도 문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저서에서 물리학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자세히 저술되어 있다. 그리고 최형섭이란 분은 대단한 분이시라 생각하지만,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설계한 사람을 기념우표에 담아서 올린다는 게 좀 마음에 안 든다. 사람은 죄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 않나?


크릴이 애완동물 밥에 사용된다는 말을 듣고 좀 충격을 먹었다. 크릴은 이산화탄소를 상당히 줄여주고 다양한 남극 생물들의 먹이가 되어주는 소중한 생물이다. 이 크릴이 멸종된다면 다른 남극 생물들이 멸종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정도이다. 애완동물을 기르면서 절실히 느끼는 문제가 애완용품의 환경오염도다. 강아지 눈약에 방부제를 엄청 쓴다던데, 이 눈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방부제가 어떻게 제작되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환경오염이 진행되는지를 우린 잘 모른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볼 테마인 듯하다.

최근 내 내부에 편견이 많구나 싶은 상황을 두 번 느꼈다. 한 번은 고학력자들에 대한 반감, 또 한 번은 프로그래머에 관한 편견이었던 듯하다. 다 그저 그렇게 넘어갔지만 어쨌던간에 차별적 발언에 예민해짐을 자주 느끼고 있다. 듣는 것도 거북스럽지만 나 스스로도 편견을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게 소름끼친달까? 이래서 문학을 틈틈히 보면서 감수성을 깨우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하고 느낀다. 특히 미투 이후로 과거에 대해서 돌아보고, 그때는 행동이나 말을 이러저러하게 했어야 했구나 맞춰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는 충고가 아니라 실천에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인간이 무언가에 bias될 수 있는 건 당연한지라, 그 지점이 지적될 때 되짚어볼 노력이 수반되는가 아닌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더라는 의견도 있었다.

 

유커 특수를 기대했던 평창 동계올림픽도 빛을 보지 못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평창올림픽 티켓을 직접 구매한 중국인 관광객은 1만96명으로 집계됐다. 당초 20만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이 올림픽 기간 중 강원도를 찾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관광객은 크게 못 미쳤다. 2만10명이 올림픽 경기장을 다녀간 일본에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중국 관광객 유치에 실패하면서 양양국제공항 역시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고, 준비했던 크루즈 역시 한 편도 띄우지 못했다.



 


언뜻 보면 당연하기도 한 게, 그렇게 대놓고 중국인이 관광오면 무서워하고 욕하고 그러는데 그런 곳으로 일부러 여행을 온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다른 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선 중국인이 관광을 오지 않으니 치안은 걱정할 것 없겠다같은 인종차별 발언하는 사람들 자주 봤다. 심지어 중국인들을 하도 많이 봐서 공부도 안 했는데 중국 말을 알아듣는 상인까지 있던데, 여기선 이제 중국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더라. 여기서 사는 중국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대신 아랍 근처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 듯하다. 너무 한 쪽 인종만 많아져도 문제다. 고층건물 지어댄다고 해서 지역이 개방적인 게 아니다. 이렇게 지역 사회에서 관광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지역정치에 자율권을 주는 게 시기상조라 보는데... 다행히도 문재인은 아직 중앙집권이 유효하다고 보는 시각인 듯하다.

 

실제로 작가는 성장하면서 접했던 무수한 영화, 만화, 게임, 도서, 음악의 전방위적 대중문화에서 원작의 영감을 얻었고 그 중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수많은 유명 캐릭터와 브랜드의 각축장인 이 영화 속에서 미국 외에 유일하게 부각되는 국가는 일본뿐이다.



 

ㅋㅋㅋ 그러게 누가 90년대에 만화를 모아놓고 불쇼하랬냐? 아무튼 우리나라는 미친 개독교들 제압하지 않는 이상 절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 올라갈 일 없다. 서브컬쳐 모임에서도 꺼려하는 햄버거 히어로물들이나 관심있어하지.


그러나 최근 미국이 사상검증도 하지 않고 멋대로 친일파 작품을 올릴 우려가 커진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우익 애니에 물들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더러 있다. 아마 우익애니에 의한 교육 효과로 보여진다. 일본 기업에 취직해서 헬조센 어쩌고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는데, 무분별한 애니시장 수용으로 인해 앞으로 점점 더 일본 우익 사상이 퍼질까 우려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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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Gundam Turn A: Collection Part 1 (턴 에이 건담: 컬렉션 파트 1)(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RIGHT STUF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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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남자들은 여왕인 나를 따르기만 하면 돼!

달과 지구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일단 지구는 한번 인간들의 전쟁 때문에 살지 못할 곳이 되는 흑역사를 겪은 적이 한 번 있다. 이 큰 사건 때문에 인류는 달에서 사는 종족과 지구에서 사는 종족으로 나뉘게 된다. 그 둘 사이의 갈등은 극심하다.
달에서는 디아나 소렐이 독재정치를 펼친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흔히 그렇듯 디아나 소렐이 너무 어린데다가 군과는 어울리지 못하다보니 충돌이 격해지는 면이 있었고, 이는 디아나 소렐이 달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주민들의 편을 들면서 더욱 심해진 듯하다. 그렇다고 지구도 군이 중심을 잡지 못한 건 아니다. 비행술 등으로 실력을 쌓아왔던 지구군은 달에서 사는 사람들이 지구인들의 풍습에 혐오를 느끼고 갑작스럽게 기습을 행하자 수어사이드 부대 등 과격파를 무대의 중심으로 세우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이에 열광하거나,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한편, 지구엔 디아나 소렐과 외모가 굉장히 비슷한 여성이 있다. 광산기업 출신인 키엘 하임은 달에서 살다가 내려온 문레이스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정신적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에 내몰리자 좌절한다. 그러나 자신과 이념과 사상이 같은 디아나 소렐과 또래 친구처럼 어울리게 되고, 자신이 디아나 소렐처럼 변장하는 장난을 하다가 우연히 문레이스의 고뇌를 이해하게 된다. 테러도 겪었다. 그러나 제법 침착하게 대처하면서 그녀는 군의 수령에게 나름 리더십을 인정받게 된다. 그렇게 키엘 하임은 지구의 가장자리에서 디아나 소렐 행세를 하면서 건국선언을 하게 된다. 디아나 소렐을 상당히 흠모하던 주인공이자 건담 파일럿 로랑은 그런 키엘 하임을 보면서 점점 흔들리게 되는데..
사실상 샤아라는 캐릭터는 없어진 셈으로서 이는 우주세기 건담의 절대평화 사상이 깨지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세기 건담의 약점이라 지적되었던 여성의 낮은 권위를 군주통치로라도 극대화했다는 장점은 이를 훌륭하게 커버하고 있다.

 

 

달에서 왔다는 것과 은발미녀(...)인 걸 빼면 그냥 정의감이 넘치는 평범한 소년이다. 단지 달주민들은 대체로 강인하다는 시사상식 같은 걸 물려받아서 생활력 있다는 설정인 듯. (일단 지구에 있는 고용주에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어도 상관없다는 깡다구가.) 그나저나 모빌수트에 탈 때 등에 찍히는 낙인이나 디아나 소렐이나 어딜 봐도 철혈이다. 옛날의 문물을 모방해서 더 발전해 나간다고는 하지만, 이래선 옛날 문물이 더 발전되어 있는 수준이잖아. 대표적으로 OST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당시 뉴에이지가 유행했던 때라 그런지 클래식에 많이 섞여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평범한데 오프닝 엔딩 배경과 음악으로 인해 분위기가 괴이해지는 느낌. 그래도 중간까지 가다보면 자쿠 비하 드립(...)이라던가 3배 드립이 자주 나와서 우주세기 건담팬들을 즐겁게 해준다. 근데 왜 정작 샤아 캐릭터는 없고 왠 장수풍뎅이 도련님만 나오냐.

 

 

와중에 남성비핰ㅋ 드립 무엇 ㅋ 시발 우리나라 페미니즘 인식도가 옛날 일본의 드립만도 못하다니 자괴감이 든다. 하긴 요샌 이혼 후 여자만 100일 후 결혼하라는 법이 통과되는 걸 보면 일본도 끝장난 거 같긴 한데.

 

 

아니 지구에선 스토리 단단하던 게 왜 우주가서는 쓸데없는 소리하고 마지막엔 붕 뜨냐 턴엑스는 또 뭔데 엑스는 턴해도 그게 그거 아니냐? 그리고 턴엑스에서 광선 나오면서 대화하는 장면 나올 때 난 그물인줄 알았다 ㅋ 시청자도 대화에 끼게 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점.

 

 

어찌보면 우주세기가 아닌 건담에서 가장 우주세기 건담에서 나올법한 캐릭터가 소시에 하임 아닐까 싶다. (물론 건담 시드 데스티니의 신도 있으나 처음부터 너무 미쳐 날뛰어서 두번째로 밀려남. 샤아에게 주먹 날린 카미유도 최소 무릎꿇어라 할 땐 꿇었지.) 자신이 느낀 감정과 딱 정반대로 행동하는 타입이 카미유 같기도 하다. 우주세기에서라면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미치거나 우주 혜성(...)이 되었을 텐데 아무래도 지구 위다 보니 살아는 있을 듯하다. 근데 왜 자꾸 로랑과 맺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보이냐... 로랑은 딱 봐도 갈등을 끝맺는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말도 안 되는 복수극 꾸미는 게 너무 어긋났다. 최소 키엘이 그만두라고 할 때 딱 그만두고 로랑의 뺨도 때리지 않았다면, 로랑이 그 다음부터 소시에에게 갑분싸하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뭐 다 지 팔자지. 평범한 인물이 전쟁 겪고 꼭지 돌면 어찌 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캐릭터. 그리고 턴에이 건담이 일본 전쟁 찬양물이 아니냐 비판 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지고보면 소시에와 소시에 친구가 전부 떠안고 있다. 어찌보면 불쌍한 캐릭터이기도 한데, 그래도 정은 안 간다 ㅋ

난 턴에이 건담이 우주세기 건담 원작자의 의도를 충실히 따랐다고 본다. 아예 문제의 근원이 되는 샤아도 없애버리고, 아동물에다 주인공이 적절히 성장하고(...) 원작자는 이런 건담을 우주에서 날아다니게 하고 싶었던지라 여전히 안타까움은 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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