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잔해를 줍다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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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 소바주의 거친 생명들은 그러나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식물들은 씨를 뿌리며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간다.- p. 179

 



마치 소설을 그대로 재현해낸 듯한 사진이다.

가운데의 소녀가 흑인이었다면 말이다.


 소설 속 소녀는 피임이나 저항하는 법을 제대로 깨우치지도 못한 채 오빠의 친구들 중 일부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임신하게 된다. 주인공은 아이의 아버지가 어느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를 여성의 입장에서 보호해 줄 어머니는 오래 전 돌아가셨고, 그녀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부터 임신했는지 확인도 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관망하고 있는 중. 오빠들은 그 남자와 결혼하도록 강제시킬 수도, 무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장남은 농구대회에 나가고 싶은 자신의 열망 때문에 에쉬의 상태에 대해 어렴풋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듯하다. 결국 종잡을 수 없는 거친 성격의 차남 스기타 때문에 그녀의 진실이 폭로되지만,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분노에 휩싸여 그녀를 카트리나 한복판으로 밀어버린다. 사실 그녀가 임신을 맨 처음 깨닫기 전부터, 카트리나의 대비에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는 아버지와 그에게 휘둘려서 명령에 복종하는 오빠들과 아직 철부지라서 이런저런 말썽을 부리는 남동생 주니어 때문에 정신이 혼비백산하다. 



사실상 힘도 재력도 깡도 없는 주인공은 아기 아버지가 딴 여자와 자기 눈앞에서 쎄쎄쎄를 해도 메데이아처럼 깽판을 쳐놓을 여유조차도 없단 이야기다.

사실 요즘엔 요한묵시록같은 재앙이 닥쳐도 성경에서 나오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비슷한 강도의 재난을 겪을 순 없을 것이다.

둘 다 슬픈 현실이다...


 스토리는 상당히 잘 짜여져있다. 하지만 이게 허구가 아니라 저자의 실제 이야기에 기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재난이 일어난 이후부터는 결말이 어수선하다. 카트리나를 여성화하고 주인공을 여성으로 만들어 메데이아라는 신화 속 주인공을 중심으로 통일시키려 했던 건 이해하겠다. 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메데이아가 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아무래도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카트리나 속으로 몸을 던진 차이나에 그녀를 비유하려 한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또렷한 메시지가 하나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에 카트리나가 일으킨 재난에 꽃혀서 그 비유를 깜빡한 듯하다. 이것저것 사회적인 메시지를 넣을 궁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마지막엔 이 책의 중심을 이루는 한 가지 메시지만을 또렷하게 넣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메시지는 '무슨 일을 겪더라도 마지막 일격만은 내리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반드시 때는 온다.'인 것 같고.

 최근 재난영화가 상당히 많이 상영되는데, 특히 토네이도라거나 바람에 의한 재난영화가 참 많다. 그런데 대부분 줄거리를 대충 훑어보면 알멩이는 참 없어보이더라. 시각으로 보는 것보다 덜하겠지만 이 책은 스릴감도 있고 내용도 꽤 알차니 굳이 재난문학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보는 걸 추천한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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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5 - 대산세계문학총서 025 대산세계문학총서 25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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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님들, 삼청님들! 내 말 좀 들어보소. 머나먼 이곳까지 와서 요괴 정령을 때려잡는 게 버릇이 되었소. 제사 음식을 좀 얻어먹으려 해도 평안히 자리잡고 앉을 데가 없구려. 그래서 세 분 어르신들의 자리를 빌려 조금만 쉬었다 가려 하오.
삼청님들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계셨으니, 잠시 동안 이 지저분한 뒷간에 들어가 계시구려.
당신들은 여느 때도 집에서 궁색한 것 하나 없이 잘 잡숫고 청정 도사 노릇을 해오셨으니, 오늘은 다소 더러운 제물을 자셔야 하는 운수를 면치 못하시고, 냄새 지독한 원시천존, 영보도군, 태상노군 노릇도 한번쯤 해보시구려!- p. 156

 


 


이전에 4권 리뷰를 쓸 때 중국에서도 서유기를 서브컬쳐화하려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실상은 등장인물들이 훈남으로 편집되어 나온 최유기가 더 인기를 끌었지만 중국에서도 서유기를 대중문화 속으로 끌어오기 위해 제법 노력을 하긴 했었다.

그 중에 하나 그럴싸한게 서유기지대요천궁이라는 이 영화인데, 제법 특촬물같이 생겼고(...)

중국의 내노라하는 영화배우는 총출동시킨 3D 영화이다. 2014년에 속편도 나온다고 함.


 아무튼 영화 포스터를 보면 마치 주인공이 한 명만 등장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온통 손오공의 얼굴로 도배가 되어있다. 사실 돌에서 영기를 받고 태어난 출생과정도 있고 천궁에 가서 받아먹은 것도 수련받은 것도 많은지라... 그는 요컨대 불경을 가지러 가는 삼장 팀 중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먼치킨이다. 게다가 천궁에서 악명을 떨쳐 유명인사가 된 지라 말 한마디만 척척 하면 인맥동원을 할 수 있으니 소설을 보다보면 그를 매우 부러워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설정상으로 손오공 혼자 여행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전에도 오공이 근두운 하나면 쏜살같이 갔다올 수 있을 것이라 불평을 해본 적 있지만 천궁의 높으신 분들이 만류하면서 이야기했던 게 있다. 첫번째로 삼장과 그 일행 3명이 모두 갔다와야 하며, 두번째로 도보여행을 하면서 온갖 시련을 겪고 성숙해져야 불경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손오공은 5권에서는 인신공양을 해야 하는 마을 주민들을 침착하게 구조하고 사이비교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왕에게 따끔하게 한 소리 하는 등, 촐랑거리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제법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밥을 훔칠 때랑 마지막에 기술 선택을 잘못해서 적에게 무기를 바치다시피 빼앗긴 건 제외하고;;;)

 특히 불교를 탄압하는 사이비교를 농락할 때의 행자들이 행동하는 장면은 꽤 재미있었다. 비록 불교가 참된 종교이고 도교는 아니라는 태도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현대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사이비교의 정체를 까발리고 농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구X파라던가 X원파를 이야기하는 건 아닐지도?



다음엔 최유기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보려 한다.

강 속에 살고 있는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관세음보살이 머리칼도 풀어헤치고 옷도 반 정도 헐벗은 채로 과수원에 들어가 그물을 짰다는데 언뜻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최유기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정말 맘에 든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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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03 ANNE - 첫사랑 그린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3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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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누구나 내가 길버트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요?"
앤은 토라졌다.
"그건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그렇게 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그 때문이죠. 앤, 그렇게 기를 쓰며 부정할 것 없어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p. 230

 


 


빨강머리 앤 만화에서만 보는 말라깽이 주근깨 소녀 앤만 생각하지 마시라.

이렇게 놀랍게 아름다운 얼굴에 나이스 바디(?)로 성장한 모습의 앤도 있다.

저기 멀리서 얼쩡거리는 남자는 당연히 길버트 블라이스겠지 ㅋㅋㅋ


 아마도 학문을 좀 더 배우고 싶지만 남들의 이목도 신경쓰는 대부분의 평범한 지식인 여성들의 고민이 이 앤에게 담겨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풍부한 상상력과 이해심 그리고 언어력을 갖춘 남자를 원하는데 좀처럼 그에 맞는 사람은 접근하지 않고 왠 어중이떠중이들이 거래를 제시하는 것처럼 '난 돈이 많아 그러니 나랑 결혼하지 않겠는가' 이딴 식으로 프로포즈 하지 않나. 게다가 모처럼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본능은 그 사람에게 속박되길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연애하고 있고 좋아하긴 하는데 결혼은 왠지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 겪어본 적 있는가? 앤은 그런 남자도 겪어본다. 그녀는 슬슬 지쳐간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검은 눈동자를 지닌 지나치지 않게 나쁜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눈을 조금만 낮춰보라 권한다. 물론 자신의 옆을 오랫동안 얼쩡거리는 착한 성품의 길버트 블라이스가 있지만, 그는 정확하게 현실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인물이며 단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앤의 상상력을 귀담아 들어줄 뿐이다. 결국 길버트가 타지에서의 대학생활로 건강을 해치고 앓아눕게 되자, 그녀는 길버트를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그와 결혼한다. 길버트의 상상력 부족을 눈감아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사람의 인연은 사람으로 인해 연결되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난 결혼에 있어서 결정적인 운명이 있다는 주장을 믿는 편이다. 그런 남녀는(물론 남남이나 여여일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고, 두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특유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되더라도 여전히 특정한 사람과 옷깃 한 번 스치기도 미묘하게 힘든 세상이다. 결국 철벽같던 앤의 이상형 때문에 힘들게 돌아서 갔지만 결국 앤과 길버트는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앤이 결혼해서 자식을 다섯이나 낳은 후를 그린 외전도 두편 있던데, 모두 그런식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년,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 전부터 '결국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된다'라고 우리 엄마는 누누히 나에게 강조해왔었다. 이 소설의 작가도 우리 엄마와 생각이 같은 듯하다.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는 대부분 조그마한 시골마을 애번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지만, 이 3권에선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작가는 여기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캐번디쉬 공동묘지와 공원을 빼고는 그 경치좋은 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캐번디쉬 공동묘지마저 완전히 '몽고메리의 무덤'으로 이름이 바뀌어 관광명소가 되었으니, 몽고메리 씨는 무덤 속에서도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일까.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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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타 베를링 이야기
셀마 라게를뢰프 지음, 강윤영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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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리움의 새인 멧비둘기를 다룬 옛 노래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멧비둘기는 맑은 물을 마시지 않는다. 제 발로 물을 휘저어 흐리게 만든 뒤에야 부리를 축인다......' 그녀의 우울한 천성도 멧비둘기를 닮았다. 그녀는 인생의 샘물에서 깨끗하고 맑은 행복을 가로 마시려 하지 않았다. 우수에 뒤섞인 삶이 그녀에게는 가장 잘 맞았다.- p. 409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 정리.


 예스타 베를링: 화주를 너무 많이 마신 이유로 파계. 에케뷔를 다스리는 소령 부인의 권유로 기사가 되었으나 나중에 동료기사들과 함께 그녀를 배신하게 됨. 기사들과 같이 에케뷔를 통치한다고는 하는데 튀는 외모와 한창 어린 나이, 그리고 목사시절 때 갈고닦은 여러가지 재주로 인해 실상 거의 핵심인물이 됨.


 에바 도나: 어머니가 메타 백작부인. 오빠(후에 엘리사벳의 남편이 됨)의 가정교사로 예스타 베를링을 만나고, 그는 한겨울 에바가 병이 났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의사를 데려온 대가로 메타 백작부인에게 에바를 달라 요구함. 메타 백작부인은 강력하게 결혼을 밀어붙였으나 정작 에바 도나는 파계한 예스타가 맘에 안 들어 고민하다 자살.


 안나: 자신도 부자이나 결국 돈에 눈멀어 어떤 늙은이와 결혼하려 했던 여자. 그녀와 전에 결혼하려했던 가난뱅이 남자가 예스타를 시켜 그녀를 찾아오게 했는데 예스타의 설득을 듣고 오히려 안나는 예스타를 사랑하게 됨. 사랑의 도피를 하기 위해 기사들의 성으로 향하려 했으나 숲속 늑대들의 성화로 인해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원래 예스타가 보내주려 했던 가난뱅이의 집으로 돌아감. 영주 신트람이 악마와 계약했음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된 인물.


 마리안: 연극배우.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나 냉철한 이성을 가진 여성. 연기와 춤에 맞수를 겨루는 예스타 베를링에게 호감을 뒀으나 분노한 아버지로 인해 한겨울에 집에서 쫓겨나고 예스타가 자기 집으로 데려왔으나 천연두를 앓고 얼굴이 망가짐. 아버지가 성까지 와서 기다리는 걸 보자 마음이 약해져 잠깐 집으로 왔는데 예스타는 이에 배신감이 들어 결국 관계가 깨짐. 시를 썼으나 부치지 못하고 결국 옛날부터 자신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남자와 결혼하여 나름대로 잘 살게 됨.


 엘리사벳 백작부인: 예스타의 마지막 연인. 이탈리아에서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내다 온 여인인지라 순진하고 착하기만 함. 여태 여자들에게 딱지맞아서 거칠디 거칠어진 예스타도 그녀를 조심스럽게 다룰 정도. 소령부인의 처지를 보고 세상의 불의에 분개하여 예스타에게 탄원하고 그로 인해 예스타와 친구사이가 되었지만 예스타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들은 걸 계기로 예스타를 사랑하는 자신을 깨닫고 메타 백작부인과 무식한 남편에게 시련을 달라고 자청함. 이에 호된 시집살이를 당하고 결국 생명의 위기까지 느껴 그녀는 본능적으로 집을 나와 도망친 후 떠돌아다니며 빌어먹어 산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아이까지 밴 상태였는데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백작부인과 남편이 그녀와의 결혼을 부인한 상태였다.

 

 안나, 마리안, 엘리사벳 그리고 예스타 베를링. 이들은 어떻게 실연을 극복하고 살아갈까?가 바로 이 책의 테마인지도 모른다. 사실 피끓는 젊은 청춘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실연인지도 모른다.

 


근데 매우 솔직히 말해서 엘리사벳 나오고 나서부터 이런 내용임.

결말은 상큼하게 마무리되지만 '여자와 남자는 애초에 친구가 될 수 없다'가 이 작가의 모토인 듯 흠...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이런 작품을 썼더라면 희대의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너무 낭만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지만 사실 읽어보면 군데군데 나오는 잡설은 우리나라 판소리랑 비슷하며 엘리사벳과 신트람은 극도로 대비되어 권선징악을 이룬다. 뭐 엘리사벳도 말실수를 하기도 하고 신트람도 귀여운 악동같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영미문학관에서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음악과 같은 흐름 때문에 상당히 스릴있고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영미문학관을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무튼 에바 도나와 빗자루를 팔던 소녀는 자살했을지라도 안나와 마리안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산다. 예스타 베를링과 엘리사벳 백작 부인도 부부로 같이 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과거를 속죄하기 위해서 살아갈 뿐이며, 자신들의 삶에서 행복할 요소는 배제시켜버린다. 남녀간의 격정적인 사랑은 간혹 욕망으로 발전하여 죄악을 만들 위험이 있지만, 인류를 향한 사랑은 고귀한 세상을 만들어줌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주는 소설이다. 책이 굵어서 도전을 망설였던 사람이라면 이 참에 다시 펼쳐서 읽길 바란다. 중간부분에서부터 진도가 굉장히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마주보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커플이 나오는 앞표지,

그리고 '만 번의 키스와 만 삼천 통의 연애편지'를 거론하는 뒷표지가 인상적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책의 진수를 표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게 느껴진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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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향연 2 - 개정판 얼음과 불의 노래 4
조지 R. R. 마틴 지음, 서계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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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브리엔느가 검을 빼 들려고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칼집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 마법의 검 없이는 싸울 수 없었다. 세르 자이메가 그걸 그녀에게 주었었다. 그녀는 렌리 경을 지키지 못하고 난 후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녀는 마음이 아팠었다.
"내 검. 제발, 난 내 검을 찾아야만 해."- p. 594

 



이전에는 세르세이가 그래도 이 배우를 써도 될 만큼의 상식은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난생 처음으로 원작인물에 비해 배우가 아까운 건 처음이었다.

종교에 무기를 쥐어준 것이다.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100년도 더 전에 이 제국을 다스리던 왕이 모든 종교에 무기를 버리라고 반협박을 했었다고 한다. 세르세이는 토멘을 주축으로 하여 새로운 제국을 만들거라고 하는데, 원작의 분위기를 생각해볼 때 스타니스와 그 분위기 장난 아닌 마법사를 의식해서 자신의 종교에도 무기를 쥐게 했던 것 같다. 본인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이고. 하지만 스타니스는 스타니스고, 라니스터는 라니스터다. 스타니스가 아무리 그 멜리산드레에게 홀렸다 한들 왕권에 대한 자신의 근본적인 철학은 놓고 있지 않다. 그 여마법사도 사실 자신이 국가를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심은 없는 것 같고. 게다가 스타니스의 충신 다보스의 복귀에 따라 다른 옛 군신들도 기가 살아나면서 내부에선 스타니스파와 멜리산드레파가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다보스가 살아있는지는 몰랐다 하더라도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결국 그녀는 나라를 왕당파와 종교파로 나누어버리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게 되며, 성스러움과 순결을 종용하는 종교파에 의해 과거의 방탕이 드러날 위기에 처한다.   

 이번엔 유독 자이메와 세르세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전개였다. 결국 자이메는 설득이 안 되는 세르세이를 포기한다는 선택을 하는데, 그래도 자이메가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냥 패륜관계였다면 모르지만 애를 셋씩이나 둬놓고 지 불리할 때 자신만 새 인생을 살겠다니 무책임하다고나 할까. 세르세이가 도움을 청하는 편지는 읽지도 않은 채 불에 태워버리고, 자신한테 남은 마지막 아들 토멘까지 데리고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른 여인의 등장, 세르세이가 자신 말고 다른 남자들과도 잤다는 사실, 부하들이 자신의 패륜을 알아버렸다는 생각때문에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새 출발을 했다지만 브리엔느도 변심한 듯하고 여러모로 이 인간의 끝이 행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나저나 4부 프롤로그와 마지막에 나오는 페이트라는 아이, 전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오던데 엔하위키에서 보고 소름끼쳤다;;; 자켄이란 놈 대체 뭐하는 작자이고 이렇게까지 하는 목적이 뭔지 궁금하다. 다면신의 신전은 스파이 역할을 하는 기관인가? 그럼 배후는 누구인가?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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