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 전3권 겨레고전문학선집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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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 도를 아는가?"
"그 무슨 말씀인지요?"
"도를 안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세. 도는 저 강시울에 있느니."
"그러면 누구나 먼저 언덕에 올라간다는 말씀인지요?"
"그런 말이 아닐세. 이 강물은 두 나라의 경계선으로서, 경계란 물이 아니면 시울이 될 것 아닌가? 도대체 천하 백성들이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저 강물 시울 짬과 같은 것일세. 도를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저 물시울 짬에서 찾아야 될 것이네." - p. 30
 
   

  인상깊은 구절을 보면 어려워보인다고 불평하시겠지만, 이 구절은 두고두고 보고 깊이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기 위해 옮겨적은 것이다. 무지한 본인은 이 구절을 아무리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말들은 세세한 묘사와 치밀한 설명으로 인해 대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간다. 말 위에서든 집 안에서든 항상 붓과 벼루를 챙겨 들고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것을 생생히 적었다고 듣긴 했지만, 여행동안 봤던 책이나 자신이 책에 직접 달아준 주석목록까지 빠짐없이 적은 걸 보면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 이 정도면 집요한 성격이라고까지 묘사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고등학교 수업에서 열하일기의 일부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책을 접하니 일단 그 두께에 압박감이 들고, 책을 펴보면 눈앞에 펼쳐보이는 듯한 청나라의 정경에 숨을 죽이고 읽게 된다. 박지원은 정말 보통 인재가 아니다. 시대를 앞질러서 생각하는 분이시다. 조선이 망한지 꽤 시간이 지난 이후이고, 그동안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분석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어느정도 박지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째 이 분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도대체 연암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눈치이다. 아무래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관습에 오랫동안 매여있으니 모를만도 하겠지. 연암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신 것 같고. 답답해서 그저 헛웃음밖에 안 나오셨겠지. 그는 유리창을 마주할 때 진정한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벗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우울증과 예민함을 최대한 이용하되 그는 그 속에 휘말려들지 않으려는 무의식의 방어를 사용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추측하건대 아무래도 그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찾은 모양이다. '울어야 할 자리', 혹은 '울어야 할 때'라는 말이 요동반도에 도달할 때뿐만 아니라 여러 이야기 속에서 연속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신중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오랜만에 어린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호질>을 읽었는데, 느낌이 매우 새로웠다. 청나라의 벽돌가마와 우리나라 소나무가마를 비판할 때도 자원낭비에 대해 개탄한 것을 보면, 박지원은 환경주의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진보한 물질들을 선호하면서도 골동품을 살펴볼 줄 아는 안목이 있고, 그러면서도 환경을 생각한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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