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은행에 들러 돈을 빼오다가 무언가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나는 전력으로 질주하여 10분만에 다시 현금출납기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책은 분실되고 없었다. 내가 워낙 기억력이 없어서 이런 일을 3번이나 겪었지만, 겪을 때마다 태평하게도 이런 생각이 든다. ’없어진 그 책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 어쩌면 폐품장에서 쓰레기들과 같이 불태워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어르신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게 하려고 남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줏어갈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만큼은 후자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돈을 주고 이 책을 다시 샀다. 본인이 잃어버린 책을 다시 사는 일은 드물다. 이 책이 비록 2만원이 넘어간다고는 하지만, 사실 저 돈보다 더 한 값을 하는 책이다. 그리피스라는 이름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졌을 테니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여자의 무시무시할 정도의 방대한 지식에 깜짝 놀랐다. 대강 이 책에 올려진 그녀의 지식에 대해서 정리해보자면, 그녀는 일단 저널기자이다.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매우 경멸하고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당당하게 성경을 진흙더미에 집어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경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언어학에도 해박하며, 문학에 대해서 자신의 유식하고 독특한 견해를 표방한다. 그녀가 글을 쓰는 방식을 보면 영락없이 그녀가 인문인이자 문학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느낌과 사상을 솔직하게 펼쳐내기 때문에, 야생 땅의 지형이라거나 생태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본인은 이 책이 쓰여진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실 그동안 마음에 드는 여행기라던가 여행에세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 책만이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대지를 자로 측량해서 지도와 백과사전을 만들려는 백인들을 혐오한다. 이 책에서도 억지로 원주민들을 부둥켜안고 미소짓는 사진이라던가 대륙을 설명하는 지도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원주민과 부시맨들과 소통하는 법을 능숙하게 터득하여 자신만의 글자로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려 약에 매달리고 항시 몸이 아파 치료사들을 찾아다니는 나약한 여성이지만, 동시에 관광객 가이드의 안내를 믿고 단신으로 인도네시아의 탄압을 받는 해방연합군 본거지로 숨어들어간 용기있는 여성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야생’적인 그녀의 글에 나처럼 열광적으로 빠져든 사람들이 있으리라 긍정적인 희망을 가져본다. 책의 인용구절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매우 웃기다. 그리고 야하다. 

   
  바다는 알로 뿌예지고 생식의 즙으로 거품이 일며 섹스로 걸쭉해진다. (...) 이 바닷물 속에서 오래 수영을 하고도, 적어도 광대어와 장완흉상어의 새끼를 임신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놀라울 정도다.- p.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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