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을 길들이다 과학과 사회 10
베르나르 칼비노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간호조무사를 할 때 굳이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는다면, 환자가 아파할 때 억지로 차분한 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점이었다. 아파하던 사람들이 사망했을 때는 그 안타까움이 더했다. 차라리 마지막 순간에 아프지 않고 죽었다면 더 편했을텐데... 나 자신도 몸이 정말 아픈 적이 있었고 초등학교 땐 수차례 입원했었으니, 입원환자 모두의 통증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통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그 통증에 대한 유럽의 발표대회 연설문을 매우 짧게 써서 낸 책이다. 그냥 의학에 관련된 책이라 하니 간호조무사 일을 하는 데 도움이 좀 될까 싶어서 얼른 신청한 책이지만, 느낀 점이 많았다. 통증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간략한 그림과 일목요연한 설명이 처음부터 내 관심을 끌었다. 더 읽어 나갔다. 

 그들은 신체의 통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통증, 특히 의학계에서 아직도 신체적 원인을 정확히 해명하지 못하는 두통까지도 고려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환자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의사들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간호조무사로 일할 때 환자의 아프다는 호소를 무심코 넘긴 적이 없었나, 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하는 순간이었다. 주사를 투입할 때도 고통을 주지 않는 의료원이 최고의 의료원이라는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문득 떠올랐다.

 무엇보다 의학 발표의 장에서 철학과 종교의 견해를 끌어들인 게 놀라웠다. 게다가 그들은 통증을 없애야 한다는 기존의 새로운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다수결 의견 통일' 체제와는 매우 다르게 자신들과 전혀 상반된 의견마저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충 철학과 의학 중 어느 쪽에서 더 심하게(그러나 조심스럽게) 반대했는지는 짐작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의 말은 옳았다. 고통으로도 쾌락을 느낄 수 있으며, 쾌락까지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자신을 소홀히 한 지난 날을 반성하는 계기를 겪을 수 있다. 물론 끝없이 통증을 느끼는 불치병이나 만성통증환자에게는 모르핀을 투여해야 하겠지만.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통증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이 나눌 수 없는 통증이 있다. 그 통증을 존중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통증을 무서워하는 자들이 아파하는 환자를 수수방관 하는 것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격증을 따고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된다면 환자의 통증을 최대한 고려하겠다. 그리고 이 회의를 시작으로 일반인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통증전문서적이 출판되기를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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